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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터클한 쇼 비즈니스, 배우들의 피·땀·눈물 덕이죠

중앙선데이 2021.05.08 00:20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뮤지컬 ‘시카고’ 주연 아이비·최재림

최근 배우 서예지의 사생활이 논란이 됐다. 연인이던 남자 배우들을 은근히 조종했다는 ‘가스라이팅’ 의혹과 함께 학력 위조· 학폭 의혹까지 더해져 순식간에 ‘의혹 백화점’으로 떠올랐다. 온라인에는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 덕에 데뷔 시절부터 그가 출연한 영상들이 역주행을 시작했고, 최근 개봉한 영화 ‘내일의 기억’은 예매 1위에 올랐다.

‘록시’역 다섯 번째 아이비
“7분 원맨쇼 땐 춤도 추기 전 땀이 나
발산하면 할수록 받는 에너지 많아”

‘빌리’역 첫 합류한 최재림
달인급 복화술 솜씨 깜짝 인기몰이
“무대 위서 인생 갈아 넣는 게 배우”

 
이런 현상이 새로운 건 아니다. 뮤지컬 ‘시카고’가 그리는 세상도 다르지 않다. 1975년 ‘쇼비즈니스의 제왕’으로 불린 전설적 안무가 겸 연출가 밥 포시가 선정적인 황색 저널리즘에 좌우되는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쇼비즈니스 생리에 빗대어 질펀하게 ‘셀프디스’한 작품이 ‘20세기 뮤지컬의 상징’이 되어 지금까지 ‘브로드웨이 최장수 미국뮤지컬’ 기록을 세우고 있는 이유다. 국내에서도 2000년 초연 이래 21년간 13차례 공연되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뮤지컬 ‘시카고’에서 코믹한 표정으로 복화술 장면인 ‘위 보쓰 리치드 포 더 건(We Both Reached for the Gun)’을 시연 하고 있는 아이비(왼쪽)와 최재림. 전민규 기자

뮤지컬 ‘시카고’에서 코믹한 표정으로 복화술 장면인 ‘위 보쓰 리치드 포 더 건(We Both Reached for the Gun)’을 시연 하고 있는 아이비(왼쪽)와 최재림. 전민규 기자

주인공 ‘록시’와 ‘빌리’가 이 아이러니의 대변자다. 스타를 꿈꾸는 순진한 쇼걸과 기막힌 언론플레이로 살인범을 스타로 만드는 변호사가 펼치는 어처구니없는 블랙코미디를 찰지게 연기하는 배우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2012년부터 다섯 시즌째 ‘록시’역을 맡고 있는 아이비(39)와 이번 시즌 처음으로 ‘빌리’역에 합류한 최재림(36)의 ‘케미’가 남다르다. 10년 가까이 ‘록시의 대명사’로 통해온 아이비는 “이번 시즌 새삼 잠이 안 올 정도로 캐릭터를 고민했다”고 했고, 최재림은 ‘예수님이 나에게 줄 5000달러가 있었다면 인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빌리 그 자체였다.

 
“보기엔 안무가 돋보이지만 사실 연기가 힘든 작품이거든요. 스토리 전달이 중요하다는 걸 저도 나중에 깨닫게 돼서, 어떻게 해야 록시의 인생을 관객들에게 진짜로 들려드릴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아) “제가 이유 없이 자신만만한 건 아니고, 모든 배우가 피나게 연습했거든요. 공연 전에 이미 숙련도 100%를 넘어서 이제 그냥 공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최)

  
“화제성은 금세 사라지는 법”

 
뮤지컬 ‘시카고’ 공연 모습. [신시컴퍼니]

뮤지컬 ‘시카고’ 공연 모습. [신시컴퍼니]

‘시카고’는 오직 사람의 힘으로 끌고 가는 무대다. 여느 대극장 작품처럼 스펙터클한 무대 장치나 화려한 의상 및 가발 따위는 없다. 무대 한복판에서 끈적한 재즈 선율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관능적인 군무를 추는 댄스팀, 시작부터 끝까지 올블랙 의상 한 벌로 버티는 배우들이 전부다. 그래서 허들이 높은 작품이지만, 이번 시즌 록시 경쟁률이 200대 1이었을 정도로 모든 배우에게 ‘꿈의 무대’로 통한다.

 
“특수효과로 사람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작품이 아니라 정말 배우가 가진 모든 걸 보여주는 작품이라 도전 의식이 커요. 그게 잘 되면 무대 위에서 정말 멋지게 빛난다는 걸 아니까요. 시카고에서 록시나 벨마를 한다는 건 노래·춤·연기가 다 되는 배우라는 걸 증명하는 셈이거든요.”(최)

 
오프닝인 ‘올댓재즈’부터 모든 장면이 하이라이트인 데다 오랫동안 공연되면서 과거 영상들이 박제되어 있기에 배우들은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비교된다. 7분 넘게 혼자 무대를 소화해야 하는 록시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아마 뮤지컬 역사상 여배우에게 이만한 원맨쇼는 없을 걸요. 관객들 기대치가 높은 장면인데, 처음엔 저도 같은 가수 출신 옥주현 선배가 이 역할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뒤라 부담이 컸죠. 저의 옛 영상을 보면 열정만 앞서 오버하는 게 보여서 다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로 창피해요. 이제야 좀 진짜 내 얘기처럼 정성껏 들려드리게 된 것 같은데. 정말 집중이 필요한 장면이라 춤추기 전부터 땀이 나요. 제가 땀이 잘 안 나는데, 이번엔 등이 다 젖을 정도죠.”(아)

 
최재림은 공연 전 공개된 리허설 영상에서 놀라운 복화술 실력으로 화제를 모으며 이번 시즌 ‘시카고’ 돌풍의 주역이 됐다. 변호사 빌리가 순진한 록시를 인형처럼 조종하며 기자들을 속이는 평범한 장면이 달인급 복화술을 구사하는 그로 인해 재평가받게 된 것이다. “저도 예상외의 반응에 놀랐어요. 복화술을 잘하는 건 이 장면의 본질이 전혀 아니거든요. 연기나 캐릭터 해석과 상관없는 잔재주죠. 입안의 구조가 조금만 따로 움직일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또 다른 록시인) 티파니도 잘하던데요. 소녀시대 전체가 카메라 앞에서 복화술로 얘기하는 게 취미라더군요.(웃음)”(최)

 
‘시카고’가 꼬집고 있듯 쇼비즈니스란 끝없는 화제몰이로 굴러가는 법. 두 사람도 업계 종사자로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주인공들에게 공감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제가 잔재주를 부리는 거죠.(웃음) 이제 뭔가 화제가 되면 진실 따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 세상이 된 것 같아요. 사실 뮤지컬 시작하고 3년 차에 비슷한 고민을 했어요. KBS ‘남자의 자격’에 얼굴을 비추니 인지도가 생기고 갑자기 큰 배역이 주어지더군요. 이 화제성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까, 이게 식으면 안 되는데, 두 가지 생각에 고민했죠. 결론은 화제성이란 건 금세 사라지는 법이니, 그걸 걱정할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준비하자는 거였어요. 그래서 잠시 현장을 떠나 대학원에 가서 연기 공부를 했죠. 지금도 참 잘한 결정이라 생각해요. ‘시카고’ 공연이 끝나면 ‘복화술’이란 화제는 사라질 테고, 최재림이란 사람만 남을 테니까요.”(최) “가수일 때는 별생각 없었어요. 화젯거리도 주변에서 다 만들어주더군요. 뮤지컬 하면서 처음으로 록시같은 입장이 된 건데, 결국 자신을 준비시키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도 꾸준히 렛슨받고 있고요.”(아) “저희가 한 동네 오래 살았고 둘 다 군인 집안인데 누나가 워낙 유명했어요. 누나 데뷔작인 ‘키스 미 케이트’부터 보러 갔었는데, 2018년 ‘시카고’ 보면서 아이비가 아니라 뮤지컬 배우 박은혜가 대단하다고 느꼈죠. 와, 저렇게 늘다니 진짜 많이 노력했구나, 미친 듯이 했구나 싶어 정말 멋지더라고요.”(최)

  
“뮤지컬이 인생의 선생님 돼줘”

 
 뮤지컬 ‘시카고’ 공연 모습. [신시컴퍼니]

뮤지컬 ‘시카고’ 공연 모습. [신시컴퍼니]

이번 시즌엔 록시가 두 명 더 있다. 걸그룹 소녀시대의 티파니 영, 실력파 신예 민경아다. 최초로 트리플 캐스팅의 한 사람이 된 아이비에게 극 중 벨마와 같은 위기감은 없을까. “아뇨, 전혀 그런 생각 안 해봤어요. 오히려 세대교체라 할 정도로 굉장히 어린 친구들이 들어왔는데, 제가 아직 끼어있다니 기분 좋은데요. 그 친구들 모습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새롭게 발견하는 게 많아 감사하죠. 제가 벨마 역의 최정원 선배님과 데뷔 때부터 호흡 맞춰 오면서 정말 많이 배웠거든요. 늘 먼저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칭찬과 격려를 해주셨는데, 저도 그런 선배가 되고 싶어 노력 중이에요.”(아)

 
솔로 가수로 활동하다 2012년 ‘시카고’로 뮤지컬에 정착한 아이비는 “뮤지컬이 인생의 선생님이 돼 줬다”고 표현한다. 코로나 때문에 배우들의 일터가 많이 사라져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시국에도 마찬가지다. “전 진짜 세상을 잘 모르는 사람이거든요. 순진하진 않은데 순수하달까. 뮤지컬을 통해 삶이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코로나 탓에 처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 많아졌죠.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는 록시처럼, 저도 그런 사람이고 싶어요. 작품을 통해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는 거죠.”(아)  
 
업계 최고로 통하는 가창력으로 승승장구한 것 같지만, 최재림도 확고부동한 주연이 되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 가장 주목받던 시절 학교로 돌아가 내공을 쌓느라 시간이 더 걸린 셈이다. “관객이 보는 무대 위 한 두 시간은 배우의 20, 30년이 쌓인 모습이에요. 무대 위에서 인생을 갈아 넣는 거죠. 배우란 게 화려해 보이는 만큼 정신적·육체적 소모가 크고, 관객을 만족시키려면 엄청난 자기 관리와 규율이 필요한데, 세상이 이러니 제대로 빛 보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뮤지컬 배우가 어림잡아 2000명이라면 지금 일하고 있는 건 200명 정도일걸요. 힘들고 우울한 시대지만, 무대에서 매번 불꽃을 태우는 배우들을 보시면서 ‘살아있다’는 느낌을 공유하셨으면 좋겠네요.”(최)

 
‘시카고’가 비틀고 있는 쇼 비즈니스 세계도 결국 본질은 사람의 피와 땀과 눈물이고, 그걸 고스란히 보여주는 게 ‘시카고’ 무대란 얘기다. 모든 게 뒤집힌 듯한 세상에서, 이 고전 중의 고전이 유독 빛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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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 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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