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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출범 100일 미제만 1000건…'스스로 수사' 언제쯤

중앙일보 2021.05.06 19:12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접수한 고위공직자범죄 관련 형사사건이 출범 100일 만에 1000건을 넘으면서 사건 처리 지연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달 27일 “4월 23일 기준 고소·고발 등 총 966건의 사건을 접수했다”고 밝혔는데, 이레 만에 74건이 늘어 지난달 30일 기준으론 총 1040건의 사건이 접수됐다.
 
6일 공수처 사건 접수 현황에 따르면 지난달 23일을 기준으로 전체 사건 중 고소·고발·진정 등 신규 접수 사건이 84.6%, 경찰이 이첩했거나 인지통보한 사건이 14.1%, 검찰이 이첩했거나 인지통보한 사건이 1.3%라고 한다. 사건 관계인으로 분류하면 검사 관련 사건이 42.2%로 가장 많고 판사가 21.4%,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불상 등이 25.5%, 기타 고위공직자 등이 10.9%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5동 내 공수처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공수처는 검사 13명, 수사관 18명의 인력으로 1040건(지난달 30일 현재)의 고소 및 고발, 진정, 이첩, 인지통보 사건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정식 수사에 착수한 사건은 이날까지 없다. 뉴스1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5동 내 공수처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공수처는 검사 13명, 수사관 18명의 인력으로 1040건(지난달 30일 현재)의 고소 및 고발, 진정, 이첩, 인지통보 사건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정식 수사에 착수한 사건은 이날까지 없다. 뉴스1

공수처는 “접수된 사건 등을 신속하게 분석하고 있으며, 고위공직자비리 척결이라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검찰을 비롯한 법조계에서는 사건 처리가 지나치게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변필건)가 지난 3월 17일 이첩한 이규원 검사의 ‘윤중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혐의를 포함한 검·경 이첩·인지통보 사건의 경우 여전히 기록 검토 중이다. 정작 공수처가 본격 수사에 착수한 사건은 아직 한 건도 없다.
 
앞서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달 19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1호 사건으로 규정하는 사건이 1호 사건”이라고 말했다. ‘1호’란 상징성을 고려한 ‘옥석’을 가려내 수사하겠단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계 인사는 “공수처 검사 13명 중 공소 담당을 제외하면 1인당 100건 안팎의 미제사건을 쥐고 있는 셈”이라며 “1호에 집착할 게 아니라 일단 접수된 사건부터 차분히 처리하는 게 먼저”라고 꼬집었다. 한 현직 검사도 “옥석을 가리는 동안 이규원 사건과 같은 이첩 사건은 결과적으로 뭉개고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변필건)는 지난 3월 17일 이규원 검사의 2019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활동 시절 '윤중천 보고서' 허위 작성 혐의를 인지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인지통보했지만, 공수처는 한 달이 넘도록 사건을 처리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전경. 뉴스1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변필건)는 지난 3월 17일 이규원 검사의 2019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활동 시절 '윤중천 보고서' 허위 작성 혐의를 인지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인지통보했지만, 공수처는 한 달이 넘도록 사건을 처리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전경. 뉴스1

현재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숫자가 정원보다 각각 10명씩 적은 13명과 20명(2명은 임용 포기)에 불과하지만, 이미 사건의 수가 포화 상태다. 이 때문에 공수처가 향후 사건 대다수를 검·경에 대거 이첩하는 방식으로 털어낼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이 경우 공수처가 “수사 완료 후 송치하라”는 공소권 유보부 이첩을 주장하면 기소권을 분점하는 검찰과 사사건건 충돌이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신생기관일 뿐만 아니라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인 공수처가 검·경에 지시하고 명령하는 형태의 유보부 이첩 주장은 현실에 맞지 않고, 각 수사기관 간 대등한 관계를 설정한 법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초임검사들도 한 달에 100건 넘는 사건을 스스로 터는데, 공수처 검사들도 타 기관 이첩에만 골몰할 게 아니라 밤을 새워서라도 스스로 수사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입주한 정부과천청사 5동 입구의 모습.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 4일 검찰이 반발하는 '공소권 유보부 이첩'을 명문화한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을 공포했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입주한 정부과천청사 5동 입구의 모습.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 4일 검찰이 반발하는 '공소권 유보부 이첩'을 명문화한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을 공포했다. 연합뉴스

일각에선 공수처가 출범한 지 갓 100일을 넘겼고 공수처 검사도 임용된 지 한 달이 채 안 된 상황에서 사건 처리 지연을 걱정하는 건 기우라고 반박한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에 짧은 기간 많은 사건이 몰린 건 그만큼 공수처가 필요했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라며 “제 기능을 할 때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이어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하고 털어내는 건 기존 검찰이 하던 특수수사의 관행”이라며 “새로운 고위공직자범죄 수사 관행을 만들어 갈 공수처가 기존 관행을 답습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패경제범죄연구실장도 “헌법재판소가 처음 생기면서 대법원과 갈등관계였던 것처럼 공수처도 검찰과 관계 속에서 유보부 이첩과 같이 법을 집행하는 과정의 다층적 해석이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새로운 수사기관이 국민적 합의와 필요성·정당성에 따라 생긴 것인 만큼 처음엔 신뢰와 지지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김 실장은 “공수처가 초기에 너무 많은 사건을 감당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존립 기반을 다지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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