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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꿈은 삶의 아픔을 치유하는 약

중앙일보 2021.05.06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83)

꿈은 조물주가 인간에게 베푸는 무상의 선물이라고 한다. 잠을 소중히 여기고 꿈을 잃지 않도록 스스로 위로를 베풀어 주자. [사진 pixabay]

꿈은 조물주가 인간에게 베푸는 무상의 선물이라고 한다. 잠을 소중히 여기고 꿈을 잃지 않도록 스스로 위로를 베풀어 주자. [사진 pixabay]



잘만하면 이자는커녕 평생 꾼 원금도 탕감한다고


빌려준 걸 피도 눈물도 없이 셈한다고
소문난 시간의 신도
땅에 묻혀두면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돌려준다는 말씀도
 
새와 물고기가 말한들 풍문은 풍문일 뿐
허허로운 구석이 있다는 걸
 
지금은 밤잠에 들어 꿈잠에서 사랑을 만나야 할 시간
 
직접 만나보고 달리고 놀라야
삶은 곳이 아니고 때가 아니고
휘어진 흐름대로 늘 함께 미소 짓는 안녕
 
꿈잠에서는
잘만하면 이자는커녕 평생 꾼 원금도 탕감한다고
 
사랑과 무지개와 빛이 구름처럼 潤며드는 일
나였던 그 아이들은 어느 밤에서 질문을 할까
 
해설
최근에 젊은이들 언어 사용법을 관찰하면 뜻밖에도 유머를 잘 쓴다는 것에 놀란다. 얼마 전부터는 상스럽지도 않으면서 품격 있는 유행어가 나와 나이 들었어도 따라하고 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최근에 신문에서 ‘윤며들다’라는 단어를 만났다. 그 진정성이 수긍되면서 기분 좋게 느껴졌다. 얼마 전에 74세의 윤여정 배우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그가 남긴 어록과 생활 태도에서 감동한 젊은 세대가 그를 본받고 싶은 나머지 새롭고 멋진 조어를 만들어 냈다. ‘윤며들다’는 나도 모르게 윤여정 배우의 태도에 스며들었다는 존경의 표현이다. 나이 든 누군가를 닮고 싶다니. 더군다나 손가락질받는 자기가 한 행태는 모르는 체하고 남 탓만 하며, 내가 이렇게 살아왔으니 너희는 따라오면 된다고 강요하는 꼰대들의  ‘라떼는 말이야’가 얼마나 낯 뜨겁고 부질없는지 비교가 된다.
 
어떻게든 ‘윤며들다’라는 단어를 한번 사용하고 싶었다. 윤여정 배우의 삶에서 드러난 진정성에 나도 동참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潤(윤)며들다’라고 살짝 비틀어 보았다.
 
“육십이 되어도 인생을 몰라요.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요, 나 67살이 처음이야. 내가 알았으면 이렇게 안 하지. 처음 살아보는 것이기 때문에 아쉬울 수밖에 없고, 아플 수밖에 없고, 계획을 할 수가 없어. 그냥 사는 거야. 그나마 하는 건 하나씩 내려놓는 것, 나이 들면서 붙잡지 않는 것.”
 
67세 된 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인데, 울림이 유난히 크다. 나에겐 과장된 자의식이 없다. 살아가기 위해 그저 살아내고자 주어진 일을 성실하고 열심히, 온전히 해내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그랬기에 부족한 면도 감추지 않고 드러낼 수 있었다. 또한 이에 걸맞게 타자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따끔한 지적을 할 수 있었다. 마당 깊은 선사가 사랑하는 제자에게 화두를 던져줄 때 아마 이렇게 하였으리라.
 
배우 윤여정이 영화 '미니리'로 미국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은 뒤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

배우 윤여정이 영화 '미니리'로 미국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은 뒤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남기는 말도 울림이 있다. “엄마가 너희를 두고 나갈 때 놀러 나간 것은 아니야, 너희를 사랑해 열심히 일했단다. 덕분에 이 상도 받게 되었어. 모두 너희 덕분이야.” 자식들에게 필요한 제때의 사랑을 전해주지 못해 미안한 감정을 이 이상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그런데 다 잃는 것 같아도 또 사람은 얻어. 어떤 경험이라도 얻는 건 있게 마련이야.” 작품이 성공하지 못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가 마음을 전환하는 태도다.
 
“젊었을 때는 아름다운 것만 보이겠지만, 인생에 아름다움과 슬픔은 같이 간다.”
 
“서진이가 메뉴를 추가하자고 했어요. 젊은 사람들이 센스가 있으니 들어야죠. 우리는 낡았고, 매너리즘에 빠졌고 살아온 경험 때문에 많이 오염됐어요. 이 나이에 편견이 없다면 거짓입니다. 그런데 ‘너희가 무엇을 알아’하고 말하면 안 되죠.”
 
“후보에 오른 다섯 배우 모두 각자 역할을 영화 속에서 해낸 것입니다. 사실 경쟁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우리 모두 승리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저는 단지 운이 좋아 이 자리에 서 있고요.”
 
“최고의 순간은 없겠죠. 난 최고 그런 말은 싫어요. 우리 ‘최중’ 되면 안 돼요? 같이 살면 안 돼요? 나도 최고의 순간인지는 모르겠는데 아카데미가 전부는 아니잖아요.”
 
윤여정 그는 어떤 질문에도 겸손하게 그러나 자신이 살아왔던 길을 비추면서 솔직하게 대답한다. 거리낌과 꾸밈이 굳이 필요치 않다. 심지어 질문하는 사람도 쓸데없는 우문을 내뱉었다가는 크게 밑천이 드러날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명한 남자 배우 브래드 피트를 의식하고, 심정이 어땠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이 얼마나 얄팍한지 드러났다. 굳이 페미니즘을 들추지 않아도 멋지게 한 방을 먹였다. 세상에 남녀 이분법만이 있는 게 아니라 진실한 인간이 설 자리가 엄연히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아주 이른 나이에 연기자로 입문해 50여 년을 꿈을 향해 정진한 그의 인생을 아직도 조금이나마 본받고 싶다면 사치일까. 목표를 이루고 아니고는 의미가 없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삶이 뭐인지 물으면서 살아가는 자세만이라도 닮고 싶다.
 
마태오 복음서에 달란트 비유가 나온다. 당시 한 달란트의 값어치는 6000명의 근로자가 받는 일당에 해당하는 아주 큰 금액이다. 당시 유다 지방 1년 치 조세수입이 200달란트였다. 그러니 주인이 한 달란트를 맡긴 건 그 인물의 그릇을 헤아린 결과이지 차별하여 한 달란트만 맡긴 게 아니다. 그럼에도 그 종은 주인을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분이라고 오해하여 돈을 땅에 묻어 두었다. 그는 두렵다고 자신에게 맡겨진 능력을 방치한 것이다. 자신의 게으름을 위장한 핑계를 부린 것이다.
 
윤여정은 어떤 질문에도 겸손하게 그러나 자신이 살아왔던 길을 비추면서 솔직하게 대답했다.[사진 영화 '미나리' 스틸]

윤여정은 어떤 질문에도 겸손하게 그러나 자신이 살아왔던 길을 비추면서 솔직하게 대답했다.[사진 영화 '미나리' 스틸]

 
게으름은 느림이 아니라 삶의 방향성을 잃고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남 탓을 하면서 퇴보하는 것이다. 삶의 타성에 빠져 삶을 관통하는 통찰력을 잃고 남들의 소문에 부화뇌동했기에 그는 영원히 주인이 되지 못하고 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꿈은 조물주가 인간에게 베푸는 무상의 선물이다. 실제로 잠자면서 꾸는 꿈을 통해 인간은 삶에서 받은 아픔을 치유 받는다. 세월이 약이 아니라 꿈이 약이다. 꿈은 의식이 현실보다 더 온전하고 성성한 상태라고 한다. 꿈을 꾸지 못하는 게 오히려 독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걸 가르쳐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황금 시간이라고 한다. 그러니 잠을 소중히 여기고 꿈을 잃지 않도록 스스로 위로를 베풀어 주자.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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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윤경재 윤경재 한의원 원장 필진

[윤경재의 나도 시인] 시를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쓰기를 어려워들 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이든 아니든 시를 쓰면 모두 시인입니다. 누구나 그저 그런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체험이라면 감정을 입혀 쓰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한의사가 연재하는 시를 보며 시인이 되는 길을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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