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부는 암호화폐 제도화 안 한다는데…편의점·카페·영화관, 일상 파고드는 코인

중앙일보 2021.05.06 00:02 종합 1면 지면보기
암호화폐를 정식 화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정부의 엄포에도 암호화폐가 결제와 기부 등 일상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한 암호화폐로 편의점에서 결제하는 모습. [사진 다날핀테크]

암호화폐를 정식 화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정부의 엄포에도 암호화폐가 결제와 기부 등 일상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한 암호화폐로 편의점에서 결제하는 모습. [사진 다날핀테크]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암호화폐가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커피를 주문하거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현금 대신 암호화폐로 결제할 수 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할 때도 쓰인다. 암호화폐를 ‘화폐나 금융자산이 아닌 가상자산’으로 한정 짓고 제도권으로 끌어올 수 없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무색하게 한다.
 

온·오프라인 7만 곳서 사용 가능
비트코인으로 1억 기부한 회사도
“투기성 자산일 뿐” 반론도 많아

영역을 넓혀가는 암호화폐가 최근 발을 디딘 곳은 나눔 현장이다. 암호화폐 거래소 지닥을 운영하는 피어테크가 지난달 1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법정기부금 단체에 암호화폐를 기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는 “지닥 거래소에 법인회원으로 가입해 (암호화폐로) 기부받을 수 있는 계좌를 열었다”고 했다. 기부 원칙도 세웠다. 암호화폐의 가격 변동성을 고려해 최대한 빠르게 팔아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쓰기로 했다.
 
암호화폐는 지방세 장기 체납 문제를 푸는 묘책으로도 쓰인다. 서울시는 암호화폐 거래소 4곳에서 지난달 25일 기준 지방세 체납자 963명의 암호화폐 402억원어치를 압류했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 관계자는 “체납자들이 암호화폐로 재산을 숨긴다는 정보에 알아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암호화폐만 돌려주면 당장 세금을 납부하겠다”는 체납자 요청이 쇄도했다. 압류 대상 중 118명은 밀린 세금 약 12억원을 자진 납부했다. 광주광역시와 경남 거제시 등 전국 지자체가 체납자의 암호화폐 찾기에 나섰다.

관련기사

 
세금 징수 수단뿐이 아니다. 암호화폐 자체도 과세 대상에 포함된다. 정부는 내년부터 암호화폐로 벌어들인 이익이 연간 250만원을 넘으면 세금(기타소득세 20%)을 매긴다. 만일 자녀에게 넘기면 상속·증여세를 납부해야 한다. 직장인 최모(52)씨는 비트코인 1.5개를 최근 아들에게 넘겨주려다 증여세 부담에 포기했다. 결제 시장에서도 암호화폐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전자결제대행(PG)업체인 다날의 자회사 다날핀테크가 발행한 페이코인이 대표적이다. 2019년 5월 상장한 페이코인은 프랜차이즈 카페 브랜드 ‘달콤커피’에서 현금처럼 사용됐다. 2년이 지난 지금 카페는 물론 편의점과 서점, 영화관, 피자가게 등 7만 개 넘는 온·오프라인 가맹점에서 페이코인을 쓸 수 있다. 정성엽 다날핀테크 이사는 “최근에는 페이코인으로 결제하는 무인기기(키오스크)를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다”고 말했다.
 
이베이도 ‘암호화폐 결제’ 도입 검토 … “가격 변동성 커 확산 어려워”
 
글로벌 기업도 앞다퉈 암호화폐 결제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글로벌 전자상거래업체 이베이는 암호화폐를 새로운 결제수단으로 검토하고 있다. 페이팔은 3월 암호화폐 온라인 결제서비스를 도입했다. 페이팔은 “페이팔 디지털 지갑에 비트코인·이더리움·비트코인캐시 및 라이트코인을 보유한 고객은 이를 법정화폐로 전환해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미술품 경매에도 암호화폐 결제가 가능해졌다. 세계적인 경매회사 소더비가 경매 낙찰 대금을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가상자산으로 받겠다고 지난 4일(현지시간) 밝혔다. 오는 12일 진행될 영국의 길거리 예술가 뱅크시의 작품 ‘러브 이즈 인디 에어(Love is in The Air)’ 경매에서다. 결제는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와 제휴를 맺고 진행할 계획이다. 소더비는 앞서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 작품을 경매 대상에 포함하기도 했다.
 
이처럼 암호화폐가 일상의 다양한 영역으로 파고들면서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만간 ‘가상자산업법 제정안’(가칭)을 발의할 예정이다. 법안에는 신규 암호화폐 상장 시 발행 규모와 위험성을 자세히 적은 ‘백서’를 공개하고 가상자산 예치금을 금융기관에 별도 보관해 투자자를 보호하는 내용이 담긴다.
 
물론 제도권 편입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암호화폐는 가격 변동성이 지나쳐 안정적인 화폐의 기능을 맡기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현재 암호화폐는 기술이나 내재가치 없이 유명인의 말 한마디에 몸값이 오르락내리락한다”며 “오히려 투기성 자산에 가까워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염지현·권유진 기자 yjh@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