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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모의 Insight] 데이비드 호크니의 애니메이션을 5월 한 달간 COEX 광장에서

중앙선데이 2021.05.03 17:22
5월 1일 저녁 8시 21분. 서울 COEX K팝 스퀘어의 거대하고 현란한 LED 스크린은 세계적인 회화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84)의 신작으로 2분 30초간 반짝였습니다. 작가가 프랑스 노르망디에 살면서 본 해돋이 장면을 아이패드로 만든 1분 15초짜리 애니메이션 ‘태양 혹은 죽음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음을 기억하라(Remember that you cannot look at the sun or death for very long)’가 2회 연속 상영된 것이죠. 이 작품은 5월 한 달간 이곳에서 매일 저녁 같은 시간(2021년을 맞아 20시 21분에 맞췄답니다!)에 반복 상영됩니다. 서울 코엑스뿐 아니라 런던 피카딜리 라이트, 뉴욕 타임스퀘어, LA 웨스트 할리우드, 도쿄 신주쿠 유니카 비전에서도 같은 시간(뉴욕과 도쿄는 사정상 각각 밤 11시 57분과 오전 9시) 야외에서 상영되는 글로벌 프로젝트입니다.  

전세계 강타한 역병…하지만 누군가에겐 기회다

데이비드 호크니_기간 한정 포스터 (c)David Hockney

데이비드 호크니_기간 한정 포스터 (c)David Hockney

 
이는 영국에 기반을 둔 예술 플랫폼 서카(CIRCA)가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입니다. 1일 저녁 상영 직전에 온라인 화상으로 만난 서카의 창립자이자 예술감독 조셉 오코너(Josef O'Connor)와의 일문일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자 하는 서른 갓 넘은 젊은 미디어 아티스트의 추진력은 돌직구 같았습니다.  
 
서카 설립자 조셉 오코너 촬영 정형모 기자

서카 설립자 조셉 오코너 촬영 정형모 기자

-어떻게 시작했나.   
“작년 이맘때였다. 코로나19로 런던의 록다운이 본격화된 시점이었다. 수많은 뮤지엄과 갤러리가 문을 닫았다. 공공장소에서 예술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평소에 갖고 있었는데, 록다운 시기를 예전에 없던 새로운 생각을 실현하는 기회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  
“런던 피카딜리 라이트를 소유한 랜드섹(Landsec) 측과 얘기했다. 상업 광고를 잠깐 멈추고, 당신의 ‘땅(전광판)과 시간’을 좀 빌려 달라고 요청했다. 갤러리와 아티스트들에게도 협조를 구했다. 그래서 지난해 10월 중국 작가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을 처음 선보일 수 있었다. 2020년 10월 1일 20시 20분에.”(그러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전세계 같은 시간대 상영으로 확대된 것이라고 하네요)  
 
-야외 스크린을 통해 전 세계에서 순차적으로 같은 작품을 보도록 한다는 컨셉트가 재미있다. 
“지금의 상황을 예술가에게 민주적인 기회로 삼고 싶었다. 사람들은 예술은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갤러리 들어가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사람도 많다. 호크니를 모르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일상에서 예술을 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부담 없이 야외에서 호크니의 작품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민주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호크니는 뭐라고 하던가.  
“지난해 말 한 달 동안 함께 토론하며 신뢰를 쌓았다.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에 대해 매우 기뻐했다. 자연을 주로 그리는 호크니에게 봄은 특별한 계절이다. 회화가 아닌 아이패드로 만든 작품을 여든 넘은 작가가 만들어 주었다는 점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매달 작가가 바뀐다고 들었다. 작가 선정 기준은 뭔가.   
“이 2분 30초는 ‘자본주의를 잠깐 멈추는(pausing Capitalism)’ 귀중한 시간이다. 지금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고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결정되는 아주 중요한 시기인데, 그렇다면 예술은 지금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뭔가 유의미한 것을 얘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필요하다. 그런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작가라야 할 것이다.”  
 
-서울 전시는 어떻게 결정됐나.   
“우리 프로젝트의 가치에 공감하고 지원해 줄 수 있는 파트너를 잘 만나는 게 우리로서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서는 그 도시의 문화와 접목되는 것이 중요한데, 서울에 있는 바라캇 컨템포러리와 코엑스 K팝 스퀘어를 운영하는 CJ파워캐스트가 큰 역할을 해주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서카의 홈페이지(www.CIRCA.ART)에 접속해 작품의 사운드를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호크니의 한정판 포스터는 100파운드로, 판매 수익금의 일부는 예술가 및 관련 기관에 전달될 예정이고요. 실제 일출 장면을 촬영해 해시태크(#HOCKNEYCIRCA)와 함께 SNS에 게재하면 호크니가 좋은 작품을 골라 선물을 주는 이벤트도 열고 있습니다.  
 
“지난해 런던에 있으면서 이 프로젝트의 서울 진행을 제안 받았다”는 이화선 바라캇 컨템포러리 이사는 “조셉 오코너의 열정 덕분에 이 프로젝트는 런던의 화이트채플 갤러리와 로열아카데미, 뉴욕의 가고시안 갤러리, 그리고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의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등이 연계하는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퍼져가고 있다. 앞으로 밀라노와 마드리도도 참가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8월에는 한국 작가의 작품을 상영할 예정인데, 서울시립미술관과 함께 논의 중”이라니, 대한민국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이 이 글로벌 찬스를 낚아챌 수 있을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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