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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망동" 김여정 불같이 화내자, 정부는 바로 움직였다

중앙일보 2021.05.03 05:00 종합 3면 지면보기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2일 담화를 통해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맹비난했다. 김 부부장은 특히 "무분별한 망동을 방치했다"며 우리 정부에 그 책임을 돌렸다.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2일 담화를 통해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맹비난했다. 김 부부장은 특히 "무분별한 망동을 방치했다"며 우리 정부에 그 책임을 돌렸다. [연합뉴스]

“북한을 포함한 어떤 누구도 한반도에서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에 대해 반대한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를 “쓰레기 같은 것들의 망동”이라고 맹비난한 담화를 발표한 데 대해 통일부가 낸 공식 입장이다. 의문이 제기된 표현은 ‘북한을 포함한 어떤 누구’라는 부분이다. 입장문의 제목은 ‘김여정 부부장 담화 관련 통일부 입장’이었는데, 긴장 조성 행위의 주체가 북한 말고 또 있다는 식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대북전단 살포 시민단체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달 25∼29일 비무장지대(DMZ)와 인접한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전단 등을 대형 기구에 담아 북한으로 날려보냈다고 밝혔다.
 

김여정 '욕설 담화'에도 저자세 일관 

실제 이날 통일부가 발표한 입장에는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 “경찰이 전담팀을 구성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북전단 살포는 현행법을 위반한 범죄 행위란 점을 강조하기 위한 취지로 보인다. 통일부는 또 “남북관계발전법이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위한 취지에 부합되게 확실히 이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김창룡 경찰청장 역시 이날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엄정 처리하라”고 지시하며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탈북민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 25일부터 29일 사이 비무장지대(DMZ)와 인접한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했다고 30일 주장했다. [연합뉴스]

탈북민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 25일부터 29일 사이 비무장지대(DMZ)와 인접한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했다고 30일 주장했다. [연합뉴스]

김 부부장의 이날 담화엔 욕설에 가까운 거친 표현이 다수 담겼다. 탈북자를 “더러운 쓰레기”로 규정했고, 이들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는 “쓰레기 같은 것들의 망동”이라 표현했다. 또 “남조선 당국은 탈북 놈들의 무분별한 망동을 또다시 방치해두고 저지시키지 않았다”며 정부도 직접 비난했다.
그런데도 통일부는 ‘북한을 포함한 그 어떤 누구’란 표현을 사용, 탈북민 단체를 비난한 김 부부장의 담화에 동조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논란을 자초했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해 북한의 도 넘는 막말에도 지나친 저자세로 일관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北 비난 담화에도 외교부 "긍정적 호응 기대" 

북한에 대한 저자세 기조는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 발언과 관련한 외교부 입장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권 국장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의회 연설을 통해 북한에 대한 ‘단호한 억지’를 강조한 데 대해 “큰 실수를 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부득불 그에 상응한 조치들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며 무력 도발을 시사하는 듯한 메시지를 남겼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의회 연설을 통해 북한에 대한 '억지 전략'을 강조한 데 대해 북한은 즉각 반발했다. 북한은 권정근 외무성 북한 담당 국장 명의의 담화를 통해 "그에 상응한 조치들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며 무력 도발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남겼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의회 연설을 통해 북한에 대한 '억지 전략'을 강조한 데 대해 북한은 즉각 반발했다. 북한은 권정근 외무성 북한 담당 국장 명의의 담화를 통해 "그에 상응한 조치들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며 무력 도발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남겼다. [AP=연합뉴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권 국장의 말폭탄에도 외교부는 “우리 정부는 한·미 양국의 노력에 대한 북측의 긍정적 호응을 기대한다. 정부는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북·미 대화 조기 재개를 통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 달성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만 밝혔다. 그것도 배포용이 아니라 문의하는 언론사에만 알려주는 식의 소극적 대응이었다. 
 
이런 신중한 입장 표명은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말 핵심 과제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 구상에 부정적 여파가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가 완료되며 문재인 정부는 이를 토대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외교력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임기를 10개월 남긴 문재인 정부 입장에선 매 시도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긴장을 조성하는 북한의 과격한 발언에 제대로 된 대응 한 번 하지 못하는 정부 태도엔 아쉬움이 남는다. 남·북 대화를 위해선 북한과의 갈등을 피하고 무조건적인 저자세로 일관해야 한다는 잘못된 대북 접근법이 공식화한 선례처럼 남을 수 있어서다. 2019년 광복절 축사에서 문 대통령의 평화경제 구상 제안에 북한이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할 일"이라고 조롱했을 때도 정부는 "남북 정상 간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합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점잖게 타일렀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더 심한 막말과 비웃음 뿐이었다.
북한 눈치보기에 급급한 태도는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와도 배치된다. 한·미 공조를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의 동력으로 승화하려면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새 대북정책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가 '단호함'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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