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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남의 퍼스펙티브] 졸업장의 가치 따져보고 대입 진로 정해야

중앙일보 2021.05.03 00:33 종합 25면 지면보기

진로 선택과 기회비용

퍼스펙티브 5/3

퍼스펙티브 5/3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퇴원하려면 병원비를 납부해야 퇴원증을 끊을 수 있다. 장례식장이나 화장장을 사용하는 데에도 돈이 든다. 이렇듯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제생활 아닌 것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나는 경제는 잘 모르지만…”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고교 졸업생 10명 중 7명이 대학 진학하지만
졸업해도 취업 힘들어 비용 대비 효과 의문
대학 진학도 기회비용 고려한 경제 분석 필요
지혜로운 진로 선택이 개인·사회 손실 최소화

199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널드 코스는 경제학을 “인간 선택의 과학”이라고 정의했다. 그런가 하면 경제학의 기본 틀 확립에 큰 발자취를 남긴 앨프레드 마셜은 그의 저서 『경제학 원론』(1890년)에서 “경제학은 인간의 일상생활을 연구하는 학문이다”라고 말했다. 자칫 딱딱하게 여겨질 수 있는 경제학이 사실은 일상생활의 지침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주장들을 듣다 보면 새삼 친근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살면서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면 대개는 그 대가로 다른 무엇을 버려야 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고 표현하고, 무엇을 선택하기 위해 포기한 것을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라고 말한다.
 
공무원 준비로 인한 손실 연 17조원
 
어느 학생이 영화를 보려면 입장료가 1만원이고, 그 시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2만원을 번다고 하자. 이 학생이 1만 원을 내고 영화를 보기로 선택하면 그 시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벌 수 있는 2만원은 포기한 셈이다. 영화가 재미있고 유익했다면 별문제가 없지만, 본인이 시간만 낭비했다고 느낀다면, 이때 이 학생이 입은 경제적 손실, 즉 기회비용은 입장료 1만원뿐 아니라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벌 수 있는 2만원을 포함해서 3만원이 된다.
 
요즘 우리 사회의 현안인 청소년의 진로 문제에 기회비용을 고려한 경제적 분석을 응용해 보면 어떨까 한다. 우리나라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2020년 72.5%(전문대 포함)로 10명 중 7명꼴로 대학에 진학한다. 문제는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어렵다 보니 졸업을 늦추거나 졸업 후에도 취업 준비를 더 한다는 사실이다. 설사 취업을 한다고 해도 머지않아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 준비에 열을 올린다며 ‘공무원 시험 열풍’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이렇듯 지나친 공무원 시험 준비로 인해 초래되는 사회적 손실이 연간 17조원이 넘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대학을 나와 좋은 일자리 얻고 중산층이 되겠다는 꿈은 점점 멀어진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하거나 자신의 소질을 계발하는 경우의 경제적 효과는 어떨까?
 
왜 대학 졸업과 취업이 잘 연계되지 못하는 걸까? 혹시 전공 선택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버드대 하워드 가드너 교수의 다중지능이론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언어, 논리 수학, 공간, 음악, 신체 운동, 대인 관계, 개인 내적 지능 등 다양한 지능이 있기 때문에 각자 능력에 맞는 진로 선택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애초부터 전공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 보도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졸업생들이 새로운 전공을 찾아 전문대학에 입학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사회 변화 못 따라가는 느림보 교육
 
그렇다면 대학에서의 배움에는 문제가 없는가? IT 분야 같은 경우는 2~3개월 단위로 기술 수준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배우기 쉽지 않은 교육 영역이다.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부의 미래』에서 “10마일로 기어가는 교육 시스템이 100마일로 달리는 기업에 취업하려는 학생들을 준비시킬 수 있겠는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러다 보니 구글처럼 직원 채용 요건을 ‘학사 학위 혹은 그에 상당한 실질적 경험을 갖춘 자’로 하거나 아예 학사 학위를 요구하지 않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사실 미국에서는 대학 밖에서 클라우드 컴퓨팅, 사이버 보안, 네트워킹 분야 등의 자격 취득이 활발한 편이다. 대학 학위 취득보다 적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도 연봉은 더 높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능력만 잘 갖추면 대우가 후하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매우 크다. 대학들이 투자를 많이 해 놓고도 정작 졸업생들의 취업은 저조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학교 교육 80~90%는 장래 쓸모없어
 
더구나 요즘에는 첨단 디지털 기술로 대변되는 미래 사회에 관한 논의들이 많다.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는 그의 저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것의 80~90%는 아이들이 40대가 되었을 때 필요 없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지금도 진로 선택 문제가 심각한데, 아직 생겨나지도 않은 장래의 직업 선택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 나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까? 절대 쉽지 않은 화두다.
 
지금이야말로 청소년 진로 문제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특히 대학 진학이나 전공 선택에 대한 인식도 기회비용을 고려한 경제적 분석이 필요한 때다. 청소년의 진로 선택이 보다 지혜롭게 이루어짐으로써 사회적 손실이 최소화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AI 시대엔 겸손·공감·배려 더 중요해져
세계경제포럼(WEF)은 2016년 보고서를 통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전 세계 어린이의 65%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일자리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미래 세대는 로봇이나 인공지능(AI)이 잘하는 분야와 잘하지 못하는 분야를 잘 분간하여 일할 기회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다. 겸손·공감·배려 등 인성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야말로 미래 우리 인간이 비교우위가 있는 분야가 아닐까? 그렇다면 인성을 어떻게 기를까? 어릴 적부터 깨우치고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교보생명 창업자 고(故) 신용호 회장의 학력은 ‘무학’으로 소개된다. 초등학교에도 입학한 적이 없다는 의미지만, 오해의 소지가 많은 표현이다. 초등학교 입학 시점에 병치레를 하게 되어 가정과 서당에서 공부한 것이지 결코 배움이 없다는 의미의 무학이 아니다. 서양 교육제도가 들어오기 전 우리 교육은 밥상머리, 서당, 향교, 성균관 등에서 이루어졌다.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인성, 예절 교육 등을 우리는 밥상머리 교육이라 부른다. 굳이 서양의 교육과 비교한다면 홈스쿨링(home schooling) 이라고나 할까? 지금이야말로 초·중·고·대학에서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진 우리 전통 교육의 장점을 되살릴 때라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로를 개척하는 역동적 역량인 ‘진로 탄력성’(career resilience)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급변하는 진로 환경 속에서 직면하는 역경이나 장벽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직 생기지도 않은 직업을 위해 어떤 스펙을 쌓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교육은 학교만의 책무가 아니다. 가정은 물론, 민간 교육기관이나 SNS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비영리 청소년 교육기관인 JA코리아도 청소년들에게 경제·금융 교육과 더불어 인성과 코딩 교육을 함으로써 청소년 각자가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진로 개척을 돕고자 한다.
 
오종남 SC제일은행 이사회 의장·전 IMF 상임이사·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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