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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며 풀라"던 文, "욕은 권리"라던 조국…모욕죄 내로남불

중앙일보 2021.05.02 18:20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모욕 혐의로 보수 성향 시민단체 대표 김정식(34)씨를 서울남부지검(검사장 심재철)에 송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통령 모욕죄’ 논란이 커지고 있다.
 
김씨는 2019년 7월 문재인 대통령 등 현 여권 인사들을 비난하는 전단을 국회의사당 분수대 주변에 살포한 혐의(모욕 등)를 받는다. 모욕죄는 피해자 본인이 고소해야 기소가 가능한 친고죄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충무실에서 2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임시 전국대의원대회 축사를 영상으로 전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충무실에서 2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임시 전국대의원대회 축사를 영상으로 전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문 대통령의 고소 여부와 관련해 “2년 전 사건이 발생했을 때 문 대통령의 대리인을 통해 고소가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여기서 ‘대리인’은 문 대통령의 의사에 따라 고소 행위만 대리하는 임의대리인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이 독립적으로 고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지만(225조), 이는 미성년자 등 피해자의 행위 능력이 제한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 사건의 유일한 고소권자다. 김씨를 모욕 혐의로 고소한 건 문 대통령 본인이란 뜻이다.
 

“대통령을 모욕하는 정도는 표현의 범주로 허용해도 된다. 대통령 욕해서 기분이 풀리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지난해 8월, 교회 지도자들과의 간담회)

“국민은 얼마든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다. 그래서 국민이 불만을 해소할 수 있고 위안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닌가”(2017년 2월 9일, JTBC ‘썰전’)

 
이 같은 문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소환하지 않더라도 법조계엔 문 대통령의 모욕죄 고소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적잖다. 모욕죄 개정 또는 폐지는 진보 진영의 오랜 주장이란 점에서다. 과거 모욕죄를 규정한 형법 311조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거나 청구인을 대리한 이들도 대개 진보 성향의 인사들이었다.
 
과거 변희재씨를 모욕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상고심이 진행되던 2012년 1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을 심리해 2013년 6월 다수가 합헌 결정을 내렸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2018년 11월 7일 오전 청와대에서 퇴임한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에게 청조 근정훈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2018년 11월 7일 오전 청와대에서 퇴임한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에게 청조 근정훈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당시 박한철·김이수·강일원 재판관은 “심판 대상 조항(모욕죄)이 과잉금지원칙에 반(反)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모욕죄에 대한 고소·기소·재판에 이르는 형사사법절차의 진행은 행위자뿐만 아니라 이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일반인에 대해서도 위축 효과를 가져온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중 김이수 재판관은 2012년 민주통합당(옛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인물로, 문재인 정부 첫 헌재 소장에 지명됐던 이력이 있다.
 
헌재는 지난해 12월에도 모욕죄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이때도 “심판 대상 조항(모욕죄)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대의견이 있었다. 반대의견을 낸 이들은 모두 문 대통령이 지명(유남석·이미선)했거나 국회가 민주당 몫으로 지명(김기영)한 재판관이었다. 이들은 “다원성과 가치상대주의를 이념적 기초로 하는 현대민주주의 사회에서 모욕이라는 광범위한 개념을 잣대로 표현의 허용 여부를 국가가 재단하게 되면, 언론과 사상의 자유시장이 왜곡되고 정치적으로도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헌재 결정례 등에 따르면, 모욕죄는 고대 로마제국의 신성모독죄와 중세 유럽의 국왕모독죄가 시초다. 전 세계 많은 국가가 모욕죄 규정을 두고 있지만, 최근 흐름은 모욕죄를 완화하는 방향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손태규 단국대 교수, ‘모욕죄 폐지는 가능한가’).
 
문재인 대통령(왼쪽 두 번째)이 2019년 4월 25일 오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문형배·이미선 신임 헌법재판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을 하기 위해 백악실로 이동하고 있다. 왼쪽은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왼쪽 두 번째)이 2019년 4월 25일 오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문형배·이미선 신임 헌법재판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을 하기 위해 백악실로 이동하고 있다. 왼쪽은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실제 영국은 모욕죄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전부 폐지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기존 외국원수모욕죄를 폐지했다. 프랑스의 경우 차별적 특성을 지니지 않은 모욕죄는 징역형을 모두 없애기도 했다. 유엔 인권이사회 등 국제기구는 민법상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단 점을 들어 한국 형법상 ‘명예에 관한 죄’(명예훼손·모욕)를 삭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 설계자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서울대 교수이던 2013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및 모욕죄의 재구성’이란 논문에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는 오히려 모욕을 당할 사실상의 ‘의무’를 지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에 부합한다. 민주주의는 공인에게 비판·검증·야유·조롱을 감내할 것을 요구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대통령에 대한 모욕은 사회상규성이 인정된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같은 논문에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다. 대통령을 욕하는 것으로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전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국회의원 시절 동료 의원이던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와 함께 ‘국가모독죄’(국가원수모독죄) 폐지 형법 개정안에 서명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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