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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이 장면] 화녀

중앙일보 2021.05.02 00:02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 배우의 소감은 김기영 감독에 대한 언급으로 마무리되었다. 50년 전에 자신의 영화 데뷔작을 연출한 감독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자, 크게 보면 한국영화사를 대표하는 예술가에 대한 경의의 의미였다. 1971년에 나온 ‘화녀’. 작품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다시 본 ‘화녀’에서 가장 매력적인 비주얼은 역시 윤여정이라는, 당시 24세였던 신인 배우의 얼굴이었다.
 
이 영화엔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가 있다. 양계장이라는 공간의 그로테스크한 느낌, 찬장에서 꺼내는 커다란 쥐, 거울 뒤의 정사, 이미지들이 거칠게 충돌하는 몽타주 그리고 전설의 계단 신과 “저를 호적에 넣어주실 수 있겠어요?” 같은 대사 등은 지금 봐도 새롭고 기발하다. 여기서 명자 역을 맡은 윤여정은 예상치 못한 표정들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배우로서 어떤 패턴이 생기기 전의 젊은 배우는, 영화 내내 단 한 번도 표정을 반복하지 않고 장면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화녀

화녀

백치미처럼 보이면서도 원초적인 생명력과 거침없는 욕망이 교차하는 명자의 얼굴. 특히 동식(남궁원)을 농락하는 듯한 명자의 표정은, 김기영이라는 감독의 테마였던, 위협적이면서도 압도적인 여성 캐릭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식모로 들어와 집을 장악하고 부르주아에게 경멸의 웃음을 보내는 여자. 새마을운동이 한창 시작되던 남한 사회에서 그는 진정 파격이었을 것이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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