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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총리, 여친 위해 3억 인테리어” 팽 당한 충복 다 까발렸다

중앙일보 2021.05.01 05:00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더벅머리가 괴짜인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AFP=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더벅머리가 괴짜인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AFP=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궁지에 몰렸다. 정치 생명이 위험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달 6일(현지시간) 런던 시장 등을 선출하는 지방선거를 1주일도 남기지 않은 시점이다. 세계 최초로 백신 접종을 시작하는 등 백신 확보에서 승기를 잡았던 공이 과에 침식되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  
 
최근에 그를 강타한 의혹만 세 개다. 첫째는 “경제 봉쇄를 하느니 시체를 수천구 쌓아버려”라고 했다는 의혹, 둘째는 이 시국에 총리 관저를 3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리모델링했다는 것, 셋째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가전업체 다이슨의 회장에게 문자를 받고 세금 문제를 해결해줬다는 의혹이다.  
 
영국 여론은 들끓고 있다. 대표적 유력지 가디언은 지난달 29일 “뻔뻔하고 파괴적인데다 공격적인 보리스 존슨이 권력을 유지하는 건 대체 왜인가”라는 칼럼까지 실었다. 권위지 이코노미스트 역시 지난달 28일 ‘부정직함과 보리스 존슨’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총리는 그냥 잘한다 잘한다 격려를 해주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적었다. 더는 비판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영국식 유머다. 반(反) 존슨 정서는 대서양 건너에서도 팽배하다. 미국에서도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존슨 총리의 권력은 잔인함에 기반한다”는 칼럼을 실어 존슨을 비판했다. 더벅머리에 괴짜라는 이미지를 넘어 이제 그의 정치력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2019년 브렉시트 반대 시위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를 풍자한 거대 풍선이 윈스턴 처칠 동상 위를 날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19년 브렉시트 반대 시위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를 풍자한 거대 풍선이 윈스턴 처칠 동상 위를 날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발단은 그의 한때 충복이었던 도미니크 커밍스의 해임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인 건 영국도 마찬가지다. 커밍스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를 총괄 책임을 맡았고 한때 ‘실질적 비서실장’이라고도 불렸던 인물이다. 2015년부터 존슨 옆에서 그림자 보좌를 해왔다. 그런 그가 총리실 권력 싸움에서 패배했고, 브렉시트도 마무리됐으니 존슨이 토사구팽시켰다는 게 BBC 등 영국 언론의 해석이었다.  
 
팽 당한 커밍스는 칼을 갈았다. 존슨 총리를 연타한 의혹 세 가지 중 가장 먼저 불거진 것은 다이슨 관련 내용으로, BBC에서 보도했다. 총리실은 당시 “커밍스가 BBC에 문자를 누설했다”고 역 의혹을 제기했는데, 더 큰 역풍을 맞았다. 커밍스가 자신의 블로그에 연이어 ‘시체’ 발언과 ‘3억원 인테리어’ 관련 의혹을 올렸기 때문이다.  
 
존슨 총리와 그의 심복이었던 도미니크 커밍스 보좌관의 모습. 2019년 당시 좋았던 한때다. 지금은 철천지 원수가 됐다. AFP=연합뉴스

존슨 총리와 그의 심복이었던 도미니크 커밍스 보좌관의 모습. 2019년 당시 좋았던 한때다. 지금은 철천지 원수가 됐다. AFP=연합뉴스

 
존슨 총리 본인도, 주변 각료도 “봉쇄 조치를 하느니 시신을 수천 구 쌓아두는 게 낫다”는 발언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BBC 등 기타 매체들이 속속 “발언이 사실임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그 배후에 커밍스라는 게 현재 영국 총리실이 있는 다우닝가(街)의 인식이다.  
 
더 큰 문제는 다우닝가 총리 관저 인테리어 비용이다. 존슨 총리가 20만 파운드(약 3억 10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들여 관저의 커튼과 벽지 및 가구를 바꿨는데, 이 비용의 출처가 문제가 있다는 것. 커밍스는 블로그에 “존슨 총리는 내게 이 인테리어 비용을 비밀리에 보수당 거액 스폰서가 부담하도록 하자고 했지만 나는 그 생각이 비윤리적으로 불법적이고 어리석다고 생각해서 거절했다”고 적었다.  
 
존슨 총리를 옹호하는 입장도 없지 않다. 총리 관저가 워낙 낙후된 데다, 미국과 프랑스가 자국 대통령에게 세금을 들여 제공하는 서비스에 비교하면 영국 총리는 터무니없이 처우가 좋지 않다는 시각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국가 지도자의 시간은 금쪽같은 자산이므로 미국ㆍ프랑스는 자국 대통령에게 셰프부터 미용사까지 제공한다”며 “그러나 영국 총리는 사생활 부분에선 그만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고 적었다.
 
영국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 앞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AP=연합뉴스

영국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 앞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AP=연합뉴스

 
그러나 존슨 총리만 이런 처우를 받은 게 아니다. 역대 영국 총리는 영국 정치 문화의 특성상, 다우닝가 10번지의 다소 소박한 공관에서 근무해오는 걸 영광으로 여겼다. 다우닝가 10번지 건물은 1684년에 완공됐으며 방이 약 100개 있으며 직원 200여명이 근무한다. 영국 정치의 심장부이지만 넓거나 세련됐다고는 할 수 없는 노후 주택이다.   
 
이런 관저의 인테리어가 맘에 들지 않은 인물은 존슨 총리의 여자친구이자 최근 그의 아이를 출산한 캐리 시먼즈다. 홍보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면서 영국 유력지 인디펜던트 창업 가문 일원인 금수저다. 잡지 태틀러는 최근 인테리어를 싹 바꾸길 원한 인물이 캐리 시먼즈였다는 주장을 전했다. 태틀러에 따르면 시먼즈는 “(전임 테리사) 메이 총리의 인테리어는 존 루이스 식으로 끔찍하다”며 “상류층의 안식처 정도로는 바꿔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존 루이스는 영국 중산층 중에서도 비교적 주머니 사정이 괜찮은 이들이 애용하는 백화점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약혼녀 캐리 시먼즈. AP=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약혼녀 캐리 시먼즈. AP=연합뉴스

 
문제는 상류층 인테리어를 위해선 거금이 필요했는데, 영국 총리는 이 비용을 직접 부담해야 했다는 점이다. 가디언은 27일 “20만 파운드 중 5만8000파운드를 존슨 측이 보수당에서 빌린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이 자금은 보수당의 돈줄 역할을 하는 후원자 데이비드 브라운로우가 제공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정치 문화에선 총리가 사적인 취향을 위해 공금을 횡령한 것과 같은 무게감을 갖는 폭로다.
 
비난은 거세고, 정적들은 날을 세우고 있다. 존 애시워스 노동당 의원은 BBC 인터뷰에서 “존슨 총리는 거짓말을 했다”며 “그 자체로도 나쁘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관련 조사에 착수했다. 선거를 코앞에 둔 존슨 총리로선 달가운 상황이 못 된다. 
 
이코노미스트는 “총리는 과거 국가 지도자라기 보다는 내각 동료 중 1인자(primus inter pares) 정도의 의미만 있었고, 존슨 역시 그 정도로만 대접하는 게 낫다”며 “존슨은 가뜩이나 2번의 이혼에다가 애까지 적어도 6명은 있어서 돈도 없을 텐데, 그가 어떤 가구를 샀는지 궁금해하는 건 소용없다”고 꼬집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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