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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규환된 이스라엘 최대 종교행사...주목받는 하레딤[르포]

중앙일보 2021.05.01 05:00
 
지난달 29일(현지시각) 이스라엘 북부 메론산에서 열린 유대교인의 최대 종교행사인 ‘라그 바 오메르’(Lag B’Omer)에서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최소 45명이 숨지는 등 150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이날 행사 인원은 1만명으로 허가됐지만, 이스라엘 전역에서 10만명(주최 측 추산)이 모였다. 메론산은 그간 사고위험이 상존해 1만5000명 이상이 모여서는 안 되지만 소용없었다.
 
SNS 영상을 통해 전해진 행사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수많은 인파가 다닥다닥 붙어 마스크 없이 노래 부르고 춤을 췄다. 좁다란 내리막길에서 결국 끔찍한 사고가 터졌다. 이번 사고는 폐쇄적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의 초정통파 유대교인 하레딤과 관련 있다.
 

하레딤 집단 거주지를 가다

중앙일보 취재진은 사고 당일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의 중심부에 위치한 게울라 지역을 찾았다. 하레딤의 집단 거주지가 형성돼 있다. 히브리어로 ‘구원의 땅’이라는 의미다.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날 낮 기온이 영상 40도까지 올랐지만, 거리엔 흰 셔츠에 검은색 유대교 정장을 갖춰 입은 유대교인이 분주히 오갔다. 과거 성전(聖殿)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슬픔에 검은 옷을 입는다고 한다. 둥근 챙이 달린 모자 아래로 길게 돌돌 말린 귀밑머리가 인상적이다.
 

하레딤은 폐쇄적이다. 평생 일하지 않는다. 전통 유대교 교육기관인 ‘예시바’에서 토라(경전), 탈무드 연구에 일생을 보낸다. 가계살림은 정부 보조금과 기부금으로 꾸린다. 이날 한 건물 외벽에는 ‘인터넷과 영화가 없어야만 행복한 삶’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인터넷을 암(癌)에 비유하는 하레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구다. 인구의 12% 정도가 하레딤인 것으로 이스라엘 당국은 추산한다.
2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 게울라(종교인 마을) 지역에서 검은색 유대교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식료품 가게 앞을 지나고 있다. 임현동 기자

2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 게울라(종교인 마을) 지역에서 검은색 유대교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식료품 가게 앞을 지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집단감염에 취약한 환경 

취재진은 한 예시바를 찾았다. 전형적인 밀접·밀폐·밀집의 ‘3밀’ 환경이다. 대강의실 안에는 어림잡아 200명의 학생이 앉아 있었다. 곳곳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마주 앉은 학생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하지만 거리 두기는 없었다. 벽 쪽으로는 창문이 여러 개 나 있지만 열어놓지 않았다. 와중에 냉방시설은 계속 가동됐다. 비말(침방울)이 수 m까지 날아갈 수 있는 구조다. 만일 코로나19 무증상 감염자가 있다면 얼마든지 집단감염이 터질 수 있는 환경이다.

 
예시바는 휴교가 없다. 매일 문 연다. 봉쇄령이 내려질 때도 예시바에서는 당국의 눈을 피해 수업이 이뤄졌다. 코로나19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고 한다. 취재진이 찾은 예시바 학생 수는 700여명이다. 이 중 50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었다고 한다. 현지 주민들은 그마저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예시바가 아니라도 하레딤 사이에서 한 명의 확진자가 나오면 집단감염이 터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대가족 사회라서다. 방 두 칸짜리 집에 20명 가까이 모여 사는 경우도 있다. 인구밀도가 빈민국처럼 상당히 높다. 
메론산 압사참사 구급현장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메론산 압사참사 구급현장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방역 훼방꾼'으로 불리기도 

그런 하레딤은 코로나19 방역상황에서 한때 ‘훼방꾼’ ‘걸림돌’로 불렸다. 애초에 감염에 취약한 생활을 해온 데다 10인 이상 실내집회 금지와 같은 핵심 방역수칙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레딤은 반드시 10명이 모여야 기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해 9월 봉쇄령 때 하레딤은 “정부가 특정 종교를 무시하고 감염 온상지로 낙인을 찍는다”고 반발해왔다.
  
와중에 대(大)랍비의 장례식에는 봉쇄령에도 불구하고 수백~수천 명이 모여 공분을 샀다. 당시는 실외 20명 모임을 금지할 때다. 이스라엘 전체 코로나19 확진자의 35%가량이 하레딤이라는 분석도 있다. 더욱이 이들은 백신에 대한 불신도 컸다. 지난해 12월 접종 초기 때 또 다른 하레딤 집단 거주지인 브네이 브락에서는 ‘백신 음모론’이 적힌 벽보가 나붙었다. ‘코로나19 백신에는 끔찍한 위험이 깃들어 있다’는 식이다. TV·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하레딤 사회에서는 벽보가 여론을 형성한다. 경찰의 강경 진압에 차량을 태우는 등 저항도 했다.
2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 게울라 지역의 한 예시바에서 학생들이 탈무드를 읽고 있다. 임현동 기자

2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 게울라 지역의 한 예시바에서 학생들이 탈무드를 읽고 있다. 임현동 기자

 

반전된 상황...랍비가 움직였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정부의 꾸준한 설득 덕분이었다. 이스라엘 보건부는 랍비들에게 백신 접종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매번 거절이 돌아왔지만, 끊임없이 소통했다고 한다. 결국 랍비의 마음을 얻었고 하레딤이 움직였다. 예시바 학생 아비 스위싹은 “백신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며 “하지만 (유대교) 율법에 ‘큰 랍비의 말을 들어라’는 구절이 있다. 랍비가 ‘백신을 접종하라’고 했고, 그래서 맞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국의 설득도 이들의 종교 모임까지 막지는 못했다. 라그 바 오메르 참사도 결과적으로 당국의 인원제한을 무시해 발생했다. 이스라엘에서는 현재 이번 참사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일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5월 2일을 사망자들에 대한 애도의 날로 선언하기로 했다. 벤야민 네타냐후 총리는 “모든 사람이 부상자들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레딤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부정적인 여론도 만만치 않다. 행사 인원을 통제하지 않아 사달이 났다는 것이다. 
 
예루살렘=김민욱·임현동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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