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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부남" 외쳐도 법사위장 탈락…애초 정청래는 물망 없었다

중앙일보 2021.05.01 05:00
 
정청래 의원(오른쪽)이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이던 2015년 12월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의원시절 박근혜 대통령의 의정활동 내용을 자신의 의정활동과 비교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당시 당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 중앙포토

정청래 의원(오른쪽)이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이던 2015년 12월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의원시절 박근혜 대통령의 의정활동 내용을 자신의 의정활동과 비교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당시 당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 중앙포토

“법사위원장 원칙을 지켜라!”, “정청래 순서다!”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 자신들을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이라고 소개한 여성 예닐곱명이 일렬로 줄지어 섰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을 법제사법위원장에서 탈락시킨 윤호중 원내지도부를 규탄하는 시위대였다. 이들은 “윤호중은 당원들 발등 찍지 마라”, “180석으로 검찰·언론 개혁” 등을 적은 손팻말을 들고 1시간 넘게 구호를 외쳤다.

[여의도 Who&Why]

 
시위 장면은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이 구독하는 대표적 친(親) 조국 채널 ‘개국본TV’가 생중계했다. 국회는 법사위원장이던 윤호중 의원이 원내대표에 당선되면서 임기 1년짜리 법사위원장을 다시 뽑게 됐다. 여당의 원내대표가 된 윤 의원이 사실상 후임자 지명권을 갖는 셈이 된 것이다.  
 

속 쓰린 탈락

정 의원은 민주당 내 ‘문제적 혹은 논쟁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강도 높은 발언으로 진영 내부의 팬들이 꽤 있다. 법사위원장 탈락 전날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는 알부남”이라며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 알고 보면 부끄럼을 많이 타는 남자”라고 적었다. 이는 거
꾸로 '거칠고 거리낌 없다. 적이 많다'는 세평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한 친문 중진 의원은 “정청래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는 편인데, 법사위원장이 그렇게 하면 정국 관리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탈락 배경을 설명했다.
 
정청래 의원이 29일 국회에서 자신을 법사위원장에 앉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지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 의원은 개국본TV가 방송한 이 장면을 캡처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정청래 의원 페이스북

정청래 의원이 29일 국회에서 자신을 법사위원장에 앉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지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 의원은 개국본TV가 방송한 이 장면을 캡처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정청래 의원 페이스북

 
정 의원 본인의 희망과는 달리 윤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처음부터 ‘정청래 카드’를 법사위원장 유력 카드로 고민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미 상임위원장을 한 차례 지낸 박광온(3선) 의원을 어렵게 내정하기까지 우상호·정성호(이상 4선) 의원 등이 물망에 올랐다. 세 사람 모두 정 의원과는 달리 야당으로부터 “대화가 된다”는 평을 듣는 협치형 인사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선수와 나이, 또 정 의원이 상임위원장을 지낸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 의원이 1순위였지만, 이번엔 당 지도부로서도 전략적 판단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정 의원 주변에선 “본인도 1년짜리 법사위원장을 간절히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21대 국회 하반기에 2년짜리 상임위원장을 하면 된다”(수도권 재선)이라는 말이 나왔다.
 

운동권 but 비주류

그래서였는지 정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법사워원장을 내가 못 할 것도 아니지만 볼썽사납게 자리 욕심을 탐하지는 않겠다”며 “쿨하게 받아들인다”고 썼다. 하지만 뒤이어 그는 개국본 회원들이 보낸 난 화분 사진, 응원 초상, 시위 현장 캡처 등을 페이스북에 연달아 올리는 뒤끝을 보였다.
 
정청래 의원이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손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국민의힘 의원들과 말다툼을 하자 동료 의원들이 말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청래 의원이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손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국민의힘 의원들과 말다툼을 하자 동료 의원들이 말리고 있다. 연합뉴스



1980년대 운동권 출신이지만 민주당 내 ‘86그룹’ 주류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정 의원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한 방송에서 자신을 “자발적 왕따”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그는 이인영·우상호·임종석 등 민주당에 수두룩한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간부 출신이나 총학생회장 출신이 아니다. 게다가 서열화된 학벌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80년대 학생운동권에서 건국대(산업공학과)는 중심부가 아니었다는 점이 핸디캡으로 작용했다는 게 동료 의원들의 평가다.
 
‘화력’ 하나만큼은 대학 때부터 남달랐다. 대학 4학년이던 1989년 서총련(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소속으로 주한 미국 대사관저에 사제 폭탄을 던지고 투옥된 사건이 유명하다. 이 일로 국회 외통위원이던 2013년 미주 국정감사에 참여하려다 비자 발급이 거부되기도 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 의원은 친구 5명과 함께 “공안통치 배후인 미국의 내정간섭과 수입 개방 압력 중단”을 요구하며 미리 준비한 ‘포니엑셀’ 자동차 지붕을 밟고 3m 담장을 넘어 대사관저에 침입했다.
 

“왕따” 정치인생

출소 후 보습학원 원장을 거쳐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을 타고 17대 국회에 입성한 정 의원은 폭탄 대신 ‘폭탄 발언’을 투척하며 주목도를 높였다. 한 전직 의원은 “운동권 스타들이 날고 기는 여권에서 일찍이 네티즌 팬덤의 힘을 꿰뚫어 본 사례”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2003년 노사모 일부와 함께 언론·정치 개혁을 표방한 온라인 시민단체 ‘국민의 힘’을 창립해 대표로 활동했다. 그는 지난해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이 새 당명을 검토할 때 “명백한 이름 훔치기”라고 반발했다.
 
지난 2015년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운데)가 국회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정청래 최고위원 발언에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한 '공갈 막말' 사건을 비롯, 정 최고위원은 최고위에서 하는 말마다 논란을 빚었다. 전병헌 최고위원(왼쪽)이 머리를 감싸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5년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운데)가 국회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정청래 최고위원 발언에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한 '공갈 막말' 사건을 비롯, 정 최고위원은 최고위에서 하는 말마다 논란을 빚었다. 전병헌 최고위원(왼쪽)이 머리를 감싸고 있다. 중앙포토

 
17대 의원 시절 친노 그룹과 멀어진 그는 2007년 대선 무렵 '반노(反盧)' 정동영계의 핵심이었다. 2015년 재선 최고위원일 때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걸 두고 “독일이 유대인의 학살에 대해 사과했다고 해서 유대인이 그 학살현장이나 히틀러의 묘소에 가서 참배할 수 있겠느냐”고 맹비난한 적도 있다.
 
20대 총선 당시 공천에서 배제됐다 지난해 재입성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어느덧 친문 강성 지지층의 핵심 스피커가 됐지만, 주변에선 “원래 같은 '정통(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출신인 이재명과 가깝지 않으냐”(전 최고위원)는 말도 나온다. 
 
어느덧 정 의원은 17·19·21대 의원 배지를 단 징검다리 3선이다. 당 안팎 비토세력이 상존하는 탓에 “법사위원장 탈락을 계기로 이젠 좀 중진답게, 과격 발언은 자제하는 게 좋겠다”(민주당 보좌진)는 주변 권유도 있지만 “정치인생의 위기도 기회도 좌충우돌 언행이 가져온 것이어서 쉽게 바뀌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정 의원은 29일 페이스북에 “즐겨 암송한다”며 같은 당 도종환 의원이 지은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올렸다.
 
정 의원이 29일 "반딧불님 감사합니다"라며 페이스북에 소개한 자신의 사진. '흔들리며 피는 꽃'을 지은 도종환 시인은 현재 민주당 내 대표적 친문 중진 의원 중 한 사람이다. 정청래 의원 페이스북

정 의원이 29일 "반딧불님 감사합니다"라며 페이스북에 소개한 자신의 사진. '흔들리며 피는 꽃'을 지은 도종환 시인은 현재 민주당 내 대표적 친문 중진 의원 중 한 사람이다. 정청래 의원 페이스북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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