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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87조원 부양책, 백신 접종 속도전…공화당원도 “만족”

중앙선데이 2021.05.01 00:29 734호 6면 지면보기

특파원이 본 바이든 10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9일 전용 헬기를 타러 가던 중 민들레를 직접 꺾어 부인 질 바이든 여사에게 건네고 있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9일 전용 헬기를 타러 가던 중 민들레를 직접 꺾어 부인 질 바이든 여사에게 건네고 있다. [AFP=연합뉴스]

“일단 품위가 있잖아요. 정직하고, 주위 사람을 배려하고. 대통령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 편안한 느낌이에요.”
 

루스벨트처럼 ‘미국 재건’ 총력
팬데믹·불황 해결 위해 ‘큰 정부’ 선언
정치 양극화 탓 지지율 52% 그쳐

정가 “내년 중간선거 위해 승부수”
불법 이민 폭증, 총기 사고 걸림돌

29일(현지시간)로 취임 100일을 맞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미시간주에 사는 킴벌리 데이비스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대선 취재차 미시간에 갔을 때 만난 그는 평생 공화당원이었지만 2020년 대선에서는 민주당 대선후보인 바이든을 찍겠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다. 그런 만큼 진보와 보수 두 갈래로 나뉜 현재의 미국에서 바이든 정부 출범 100일을 그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듯싶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사람 같아 일단 만족스럽다”면서도 “공화당원으로서 큰 정부에는 반대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하는 경기 부양안이 너무 비대하다는 우려도 숨기지 않았다.
 
미 대통령 14명 100일 평균 지지율 66%
 
임기 시작 후 100일이 지난 바이든 대통령의 성적표는 안팎의 긍정적 평가와 달리 ‘평균 이하’인 것으로 조사됐다.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 공동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52%의 지지를 얻었다. 역대 최저였던 트럼프 전 대통령(42%)보다는 높지만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 비교하면 낮은 편에 속한다. 해리 트루먼부터 바이든까지 대통령 14명의 취임 100일 평균 지지율은 66%였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조너선 와일러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지금 미국에서는 가장 선한 사람, 예컨대 예수님이 대통령이 돼도 높은 지지율을 얻기 어렵다”며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로 두 동강이 난 민심 탓에 앞으로는 누가 대통령이 돼도 이 정도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 첫 100일을 평가하는 전통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FDR) 전 대통령 때 시작됐다. FDR은 취임 연설에서 미국 재건을 천명한 뒤 100일간 뉴딜 계획 등 정책의 바탕을 다졌다. 코로나19와 경기 침체라는 두 개의 커다란 위기 속에 정권을 잡은 바이든 대통령도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을 모토로 삼았다. 초대형 인프라 투자와 유급 병가, 보육 지원 등 인적 투자를 통해 FDR과 같은 민주당 진보 지도자의 계보를 잇겠다는 각오였다.
 
FDR이 그랬듯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100일간 100m 달리기하듯 전력 질주했다. 취임 두 달 만인 지난 3월 1조9000억 달러(약 2118조원) 규모의 ‘미국 구제 계획’ 법안에 서명한 것부터 이례적인 속도전이었다. 2조2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일자리 계획’과 1조8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가정 계획’도 뒤를 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더 나아가 코로나 팬데믹과 경기 침체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해법으로 ‘큰 정부’를 선언했다. 예산안을 모두 더하면 6조 달러(6687조원)에 달한다. 지난달 28일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는 “한 세대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규모의 법안”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코로나19 백신 2억2000만 회분 접종 또한 기록적인 성과다. 백신 배포 속도를 끌어올리고 접종 시설을 확대하는 등 총공세를 편 결과 미국 성인의 절반 이상(54.9%)이 백신을 1회 이상 접종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 정가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내년 중간선거에서 이기려면 올해 안에 승부를 봐야 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 공영 라디오 NPR도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어떻게든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현재 모든 정책의 초점은 중간선거 승리에 맞춰져 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남긴 ‘유산’의 덕을 보는 행운도 얻었다. 미국에서 현재 사용 중인 화이자·모더나·얀센 등 세 종류의 코로나19 백신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중에 개발했다. ‘초고속작전’ 계획을 통해 6개 제약회사에 조건 없이 투자한 결과 그중 일부가 먼저 결실을 본 것이다. 그 덕분에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 후 곧바로 백신 주사를 미국인들의 팔에 놓을 수 있었다.
 
대중국 강경책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완전 철수도 트럼프 정책을 그대로 계승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과한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도 철회하지 않았다. 향후 중국과의 협상에서 레버리지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다.
 
트럼프 백신 ‘초고속 작전’ 덕 보는 행운도
 
하지만 난제 또한 만만찮다. 당장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을 깎아 먹는 주요 이슈로 멕시코 국경을 넘는 불법 이민 행렬 폭증이 꼽히고 있다. 잇단 총기 난사와 아시아계 혐오, 경찰의 유색인종 과잉 진압 등도 바이든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투표한 미국인들은 그 무엇보다 ‘정상으로의 복귀(Back to normalcy)’를 염원했다. 당장 트럼프 전 대통령의 즉흥적이며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트윗이 멈추면서 워싱턴에도 ‘평화’가 찾아온 모습이다. 실제로 중요 각료를 경질하거나 정책을 불쑥 제안하던 트럼프발 ‘트윗 발표’는 사라지고 대신 백악관과 국무부·국방부가 주5일 내내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인공 조미료(MSG)가 팍팍 들어간 음식을 먹다가 간을 거의 하지 않은 환자식을 맛보는 느낌이랄까. 어찌 보면 ‘노잼(재미없는)’ 대통령이란 느낌마저 들 정도로 ‘튀는’ 행보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만 78세로 최고령 대통령인 바이든은 나이를 의식한 듯 자신이 남길 ‘유산(legacy)’에 벌써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이와 관련, BBC방송은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3월 말 대통령 역사학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대통령 권한의 한계와 전임자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 등을 논의한 것도 이런 차원에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성공 여부는 내년 중간선거를 기점으로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역대 사례에서도 나타나듯 대통령의 첫 100일간 성적이 괜찮은 것과 임기 끝까지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임기 초반 큰 기대를 받지 않았지만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성공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반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취임 100일 지지율은 높았지만 재선에 실패하고 단임 대통령으로 남았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중요할 것이란 의미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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