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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3000원 공깃밥=1000원…수년 지킨 '국룰' 깨진다

중앙일보 2021.05.01 00:15
1000원, 3000원.

작년 장마·태풍 탓 쌀값 38% 급등
"막걸리 이젠 4000원 받으라더라"

"김 사장, 공깃밥 1500원 받을 건가"
주변 가게와 손님 눈치 보며 고심

식당에서 파는 공깃밥과 막걸리 값이다. 이 가격은 지난 수년간 ‘국룰’이었다. 그 국룰이 최근 무너지고 흔들리고 있다. 쌀값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국룰은 공식화되진 않았지만, 사회 통념상 그렇게 알고 있다는 ‘국민 룰’의 줄임말이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식당은 막걸리가 4000원으로 올랐음을 급하게 알려주는 듯 종이에 숫자를 적어 가격을 수정했다. 김홍준 기자

서울 서대문구의 한 식당은 막걸리가 4000원으로 올랐음을 급하게 알려주는 듯 종이에 숫자를 적어 가격을 수정했다. 김홍준 기자

자영업자들의 일터이자 서민들이 한 끼와 한잔을 해결하는 터전, 가게와 밥집 몇 곳에서 ‘국룰’의 무너짐과 흔들림을 전달한다.

 
# 4월 1일
“오늘부터 막걸리 한 통에 4000원 받으세요.”
지난달 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한 음식점. 오토바이에 막걸리를 싣고 온 남성이 음식점 사장 양모씨에게 일러줬다. 양씨는 “1000원에 들어오던 막걸리가 1300원으로 올랐다”며 “기존대로 막걸리 한 통에 3000원을 받고 싶어도 다른 식당과의 형평성 때문에 4000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장수주식회사는 15년 만에 장수막걸리의 출고가를 올렸다. 편의점에서는 2021년 4월 1일부터 1300원에서 1600원으로 올려받기 시작했다. [뉴스1]

서울장수주식회사는 15년 만에 장수막걸리의 출고가를 올렸다. 편의점에서는 2021년 4월 1일부터 1300원에서 1600원으로 올려받기 시작했다. [뉴스1]

막걸리 가격이 쌀값 급등에 따라 덩달아 치솟고 있다. 사진은 땅에 떨어진 진달래를 막걸리에 띄운 모습. [중앙포토]

막걸리 가격이 쌀값 급등에 따라 덩달아 치솟고 있다. 사진은 땅에 떨어진 진달래를 막걸리에 띄운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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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장수막걸리는 이처럼 지난달 1일부터 가격을 올렸다. 출고가 기준으로 120원 인상이다. 편의점에서는 장수생막걸리를 1300원에서 1600원으로 올려서 팔기 시작했다. 서울장수 관계자는 “원재료인 쌀 가격은 물론 포장재·유통 비용까지 올라 15년 만에 가격을 올렸다”고 밝혔다. 

 
업계 1위인 서울장수에 이어 1일부터 다른 업체들도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한다.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이동주조1957 이동생막걸리는 1700원에서 2100원으로, 인천탁주의 소성주 생막걸리는 1300원에서 1500원으로,  부산합동양조의 생탁막걸리는 1500원에서 1800원으로 오른다. 
 
막걸리 가격 인상 흐름은 이어질까. 국순당 측은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나 (가격 인상은) 확정된 바는 없다”고 답했다. 지평주조 관계자는 "가격 인상 계획은 없고 유통채널을 늘려 매출 확대로 상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재료비가 2.5배 오른 상황에서 값을 올리지 않고선 감당할 업체가 없을 것”이라는 분위기다.  
 
# 4월 19일
“국제 곡물 가격 상승, 해상운임 급등까지 설명해 주더라.”
지난달 19일.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 근처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이모씨가 “막걸리 업체 관계자가 가격 인상 요인을 조목조목 말해주고 갔다”며 전한 얘기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태국·베트남·인도 3개국의 2019년 3월 쌀 1t당 수출단가(FOB 기준)는 평균 368달러. 올해 3월은 473달러로 뛰었다. 2년 새 29%가 오른 것이다. 해상운임도 치솟았다. 컨테이너 운송 15개 항로의 운임을 종합하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30일 전주 대비 120.98포인트 오른 3100.74를 기록했다. 2009년 10월 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해 4월과 비교하면 2200포인트 넘게 올랐다. 한국막걸리협회 관계자는 “쿼터제로 들어오는 수입쌀의 17~18%를 막걸리 업체가 쓴다”고 밝혔다.
  
국내산 쌀은 이미 지난해 12월 한 달 평균값 6만원대(20㎏ 소매가)에 들어섰다. 이후 올해 1~4월 4개월간 평균 가격은 6만80원이다. 지난해 5만3638원보다 12%, 평년(5년간) 4만6898원보다 28% 높다. 지난달 28일 기준 도매가격은 5만8700원으로 평년 4만2523원보다 38%나 뛰었다. 
2020년 쌀 수확량은 1968년 이래 최저치인 350만7000t이었다. 쌀 공급이 줄면서 쌀값은 소매가격(20kg 기준) 6만원대를 돌파했다. 사진은 전북의 한 창고로 수확한 쌀을 쌓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2020년 쌀 수확량은 1968년 이래 최저치인 350만7000t이었다. 쌀 공급이 줄면서 쌀값은 소매가격(20kg 기준) 6만원대를 돌파했다. 사진은 전북의 한 창고로 수확한 쌀을 쌓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쌀값 상승의 원인은 지난해 54일에 이르는 역대 최장 장마와 마이삭·하이선 등 태풍에 의한 작황 저조다. 통계청이 밝힌 지난해 쌀 수확량은 350만7000t으로, 평년보다 12.6% 줄었다. 보릿고개 시절인 1968년(319만5335t) 이래 최저치다.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이 57.7㎏으로 역대 가장 낮았음에도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쌀 수급 안정을 위해 올해 비축미 37만t을 풀었다. 

 
한국막걸리협회 관계자는 “막걸리 만드는 데 쓸 비축미를 작년보다 40%만 받게 되면서 3배나 비싼 일반미로 주조하고 있다”며 “포장재 가격도 전년 대비 40% 정도 올랐다”고 밝혔다.
 
# 4월 26일
“막걸리 한 통에 5000원이면 서민의 술 맞나?”
지난달 26일 서울 서대문구 무악재 근처의 한 밥집. 손님 임석영(52)씨는 “간만에 식당에서 막걸리를 시켰더니 33%(3000원→4000원)나 값이 올라 있었다”며 “이미 4000원 받는 ○○막걸리도 분명 값을 올릴 텐데 서민의 술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이곳 사장 김모씨는 “○○막걸리를 5000원으로 올려 받자니,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영업이 안 되는데, 손님이 더 안 올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쌀값이 하도 올라 공깃밥을 1500원으로 올려 받을 거냐고 주변 사장님들한테 묻기도 했는데, 거참…”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식당 음식료 값은 업주가 주변 음식점에 맞춰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쌀값이 4월 평균 6만원대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쌀이 진열돼 있다. [뉴스1]

쌀값이 4월 평균 6만원대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쌀이 진열돼 있다. [뉴스1]

이미 쌀가공식품들은 가격이 올랐다. CJ제일제당은 지난 3월부터 흰쌀 햇반 가격을 1600원에서 1700원으로 올렸다. 동원 F&B는 센쿡을 1350원에서 1500원으로 11%, 오뚜기도 오뚜기밥을 7% 가량 인상했다. 음식점에서는 김 사장처럼 ‘공깃밥=1000원’ 공식 파괴를 놓고 고심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회원수 70만 명이 넘는 자영업자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에서는 ‘공기밥’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에 ‘주변 가게에서 안 올려 고민만 하네여 ㅠㅠ’ ‘잘되는 집 아니면 1000원으로 가는 게…’ 등의 댓글이 달렸다. ‘계란 후라이 포함 1500원’이나 ‘1.5공기에 1500원’처럼 절충점을 제시하는 글도 보인다. 

 
서울 종로의 한 음식점 관계자는 “자영업계 동료로서, 코로나19로 손님은 떨어지고 재료값은 급등한 열악한 상황에서 공깃밥 가격 인상 고민은 이해한다”며 “하지만 500원 인상은 적은 액수처럼 보이나 손님 입장에서는 엄청난 거부감으로 다가설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고양시의 한 한식뷔페 집은 7000원을 받고 있었다. ‘한식뷔페=6000원’ ‘함바집=6000원’ 국룰도 위험한 걸까.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공깃밥 크기, 쌀 소비 줄이려 1973년에 정해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무악동의 한 치킨 가게. 치킨을 주문한 손님이 "막걸리도 혹시 파느냐"고 물었다. 이 가게 사장인 박모씨는 “그냥 사와서 잡숴”라며 옆의 편의점을 알려줬다. 
 
반면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은 막걸리가 떨어지자 근처 수퍼에서 막걸리 3통을 사와 손님에게 4000원씩에 팔았다. 무악동 치킨 가게 박 사장은 “내가 편의점에서 막걸리를 1600원에 사온 뒤 4000원에 팔면 안 된다”며 “정 손님이 원하면 사와서 마시라고 한다”고 말했다. 
순댓국과 스테인레스 공깃밥. 정부는 1960년대 말 스테인레스 공기의 규격을 정해 쌀 소비량을 조절했다. 김홍준 기자

순댓국과 스테인레스 공깃밥. 정부는 1960년대 말 스테인레스 공기의 규격을 정해 쌀 소비량을 조절했다. 김홍준 기자

 
실제 국세청은 "음식업자 등 소매업자가 마트나 편의점에서 막걸리를 구입해 재판매하는 것은 양도·양수 고시 제11조 위반사항"이라고 밝혔다. 탈세 방지 등의 목적으로 주류는 가정용과 유흥음식점용, 주세면세용으로 구분된다. 가정용에는 의무적으로 '음식점·주점 판매불가' 표시가 붙어있다. 막걸리에는 주세면세용을 제외하고는 이런 용도 구분 표시를 생략할 수 있지만, 소매업소간 양수·양도는 안 된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종종 경험했지만, 그러려니 지나갔거나 불법인 줄 몰랐던 막걸리 유통 현장이었다.
  
 
음식점 공깃밥의 ‘공기’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를 쓴 음식인문학자 주영하는 "당국에서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스테인리스 스틸 공기를 이용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1973년 서울시는 표준식단을 제시하고 시범 식당을 정한 후 밥을 공기에 담아 먹도록 했다. 
 
서울시가 제시한 스테인리스 밥공기의 크기는 내면 지름 11.5㎝, 높이 7.5㎝. 76년 6월 서울시는 스테인리스 공기에만 밥을 담도록 의무화했다. 공기는 내면 지름 10.5㎝, 높이 6㎝로 작아졌고, 여기에 5분의 4 정도 밥을 담도록 했다. 이 규정을 1회 위반하면 1개월 영업 정지, 2회 위반에 허가 취소의 행정조치가 가능했다. 중앙정부는 1981년 1월부터 서울시의 스테인리스 밥공기 규격을 전국으로 확대·적용했다. 
 
오늘날, 왠지 공깃밥 하나에도 허전한 분들은 이 당시의 크기가 유산으로 남아있음을 기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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