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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틀린’ 정명훈, '좋은 음악이란?’ 질문 던지다

중앙일보 2021.04.29 13:12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정명훈의 피아노 독주회. [사진 크레디아]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정명훈의 피아노 독주회. [사진 크레디아]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거리두기로 앉은 객석이 꽉 찼고 무대에는 정명훈(68)이 등장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40여년간 전세계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그가 이날은 피아니스트였다.

무대 위 실수와 깊은 음악성이 있었던 피아노 독주회

 
피아노 의자에 앉은 그는 어깨와 팔을 스트레칭하듯 당겨보고 건반에 손을 올렸다. 첫 곡은 하이든. 후기 작품인 60번 소나타를 고른 정명훈은 거침없는 뉘앙스와 위트로 연주를 마무리했다. 작은 실수가 곳곳에 있었지만 음악적으로 무사히 매듭 짓곤 했다.

 
문제는 두번째 곡 베토벤 소나타 30번에서 생겼다. 서정적인 1악장에 대비되는 빠른 2악장은 피아니스트들의 난관이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시작한 정명훈의 2악장은 뒤로 갈수록 균형을 잃었다. 마지막의 몇마디를 남기지 않고 리듬과 선율이 완전히 무너지더니 틀리다시피 끝나고 말았다. 연주할 악장이 아직 하나 더 남았지만 정명훈이 객석을 향해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떼었다. “이게 참… 손이…. 나중에 다시 말씀 드릴게요.” 손을 한 번 털고는 마지막 악장을 시작했다. 변주곡 형식의 3악장에서도 기술적 문제가 일어났다. 두번째 변주에서 손가락이 조금 엉켰고, 셋째 변주는 일부를 다시 연주했으며 네번째는 악상 진행이 혼란스러운 듯했다.

 
지휘자 정명훈이 홀로 피아노를 연주한 무대는 40여년동안 별로 없었다. 그는 피아노로 먼저 데뷔했다. 197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2위에 입상했다. 독주 무대에는 거의 서지 않다가 2013년 소품으로 음반을 발매하고 이듬해 한국에서 독주회를 열었다. 이번 피아노 리사이틀은 그 후 7년 만이고, 하이든ㆍ베토벤ㆍ브람스의 묵직한 후기 작품으로 구성했다.

 
이달 23일 대구에서 시작된 전국 투어에서 정명훈은 불안한 연주를 보였다. 대구 공연에 참석한 한 음악 평론가는 “베토벤 3악장에서 악보를 잊어버린 듯 손가락이 방황하다 망각이 깊어져 끝까지 혼돈이 이어졌다”고 전했다. 24~27일 대구ㆍ군포ㆍ광주ㆍ수원에 이어진 28일 서울 무대에서 악보를 잊지는 않았지만 기술적인 실수는 분명했다.

 
틀리면서 연주한 정명훈의 무대는 관객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무엇보다 중간휴식 후 2부 연주는 음악적으로 결점이 없었다. 브람스 세 곡의 간주곡, 네 곡의 소품에서 정명훈의 선율은 힘들이지 않고 길게 뻗어나갔다. 화음과 화음의 관계를 파악하는 감각, 낮고 높은 음들을 꽉 차도록 배열한 균형은 지휘자가 아니라면 들려줄 수 없는 음악이었다. 그는 1부의 테크닉 문제를 만회하는 듯 브람스의 까다로운 리듬을 빈틈없이 소화했다. 거침없이 밀고나가는 화음의 향연에는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었다. 앙코르로 선택한 하이든 소나타 13번 4악장에서는 독립된 열 손가락이 결점없이 제 역할을 해냈다.

 
독주회를 앞둔 정명훈은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잘하는 피아니스트 많은데 내가 왜 이걸 하나”라는 질문을 던지고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기 위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청중의 귀는 완벽한 음악에 익숙해져 있다. 전세계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피아니스트 중에 ‘틀리고’ 치는 연주자는 거의 없다. 
 
거의 대부분 잘못된 음표가 존재한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1877~1962)의 연주에 대해 평론가 해럴드 숀버그는 “거장의 회화에 있는 약간의 흠집”이라고 평했다. 요즘 청중도 이처럼 기술적 실수를 포용하고 깊이있는 음악에 감동받을 수 있을까. ‘틀리고도 좋은 음악’을 들려준 피아니스트 정명훈의 무대가 던진 질문이다. 정명훈은 30일 예술의전당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한번 더 연주하고 이번 투어를 마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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