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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 지정 피한 김범석…공정위 “저커버그도 지정해야 하냐”

중앙일보 2021.04.29 12:00
신규 지정한 대기업.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신규 지정한 대기업.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쿠팡이 공식적인 대기업 반열에 들어섰다. 누가 되느냐에 대한 논란이 일었던 쿠팡의 총수는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이 아니라 법인 자체(쿠팡㈜)다. 쿠팡이 외국인인 김 의장이 지배하는 외국계 회사라는 이유에서다.

[2021 대기업 지정]

 
공정거래위원회는 29일 올해의 공시대상기업집단 71개를 발표하며 쿠팡을 대기업으로 신규 지정했다. 자산총액 5조원 이상으로 공시대상기업집단에 든 대기업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라 공시ㆍ신고 의무와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규제를 적용받는다.
 
공정위는 지난 한 해 동안 자산총액이 3조1000억원에서 5조8000억원으로 증가한 쿠팡을 공시집단에 포함시키며 동일인(총수)을 ‘쿠팡㈜’로 지정했다. 공정위는 “그동안의 사례와 계열회사 범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밝히면서 “현행 제도의 미비점도 있다”고 인정했다.
 

“쿠팡 총수는 쿠팡㈜” 근거는

공정거래위원회가 29일 쿠팡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하며 동일인을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이 아닌 법인 쿠팡㈜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29일 쿠팡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하며 동일인을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이 아닌 법인 쿠팡㈜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쿠팡은 미국 국적인 김범석 의장이 미국 본사 ‘Coupang(쿠팡), Inc.’를 통해 국내 쿠팡 계열회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김 의장은 쿠팡Inc의 지분 10.2%를 갖고 76.7%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공정위는 “김 의장이 국내 쿠팡을 지배하고 있음이 명백하다”면서도 그를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우선 기존 외국계 기업의 경우 국내 최상단 회사를 동일인으로 지정해왔던 것이 전례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대표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자회사가 최대 주주인 에쓰오일,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보유한 한국GM 등이 법인을 동일인으로 하고 있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현재 시점에서 김 의장 개인이나 친족이 가지고 있는 국내 회사는 전혀 없다”며 “지금 없는 회사를 새로 만들거나 친족이 설립해서 일감을 주고받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베이조스·저커버그도 동일인 지정할 거냐”

다만 외국인 총수를 규제하는 데 현행 동일인 제도에 한계가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공정위는 “현행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이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외국인 동일인을 규제하기에 미비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개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면 그의 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등의 거래에 대한 공시를 해야 한다. 만약 형사 제재가 필요한 상황에도 외국인이 동일인이면 개인에 사법권이 미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김재신 부위원장은 “예를 들어 만약 ‘아마존 코리아가 (자산총액) 5조원을 넘었다’면 아마존코리아를 재배하는 자는 제프 베이조스가 분명할 것이고, ‘페이스북 코리아’라면 마크 저커버그가 지배하는 게 분명할 것”이라며 “베이조스와 저커버그를 공정거래법상의 동일인으로 지정해서 한국의 국내법의 의무를 부여하고 위반시에 형사제재 대상으로 지정할 것이냐와는 다른 문제”라고 설명했다.
 

‘김범석 지정’ 왜 논란 

기본적으로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아도 쿠팡을 공정거래법으로 규율하는 데는 공백이 없다는 게 공정위 입장이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동일인이 자연인인 공시집단 기업은 동일인의 친족 등 특수관계인에 이익을 몰아줄 수 없다. 그러나 동일인이 꼭 자연인이 아니어도 특수관계인이나 다른 회사를 부당지원하면 안 된다는 조항도 함께 있다.
 
일각에선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으면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최근 성명을 통해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사익편취의 길을 열어주게 될 것”이라며 “만약 이런 나쁜 선례로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일본 국적을 취득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 공정위는 되새겨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면 한국이 미국 정부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 정부가 미국인 투자자(김 의장)를 제3국의 투자자와 차별해선 안 된다는 ‘최혜국 대우’ 규정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동일인 제도’ 과제 남긴 쿠팡

2021 재계 순위와 총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21 재계 순위와 총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공정위는 이날 “이번 지정을 계기로 동일인의 정의ㆍ요건, 동일인 관련자의 범위 등 지정 제도 전반에 걸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진 동일인에 대한 정의 등에 대한 규정이 없어 기업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재신 부위원장은 “외국인도 동일인으로 판단될 수 있는 사례가 발생했으나, 현행 규제가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당장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판단해 규제하기는 집행 가능성과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며 “지정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ㆍ개선을 추진해 규제 사각지대를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쟁법학회장인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총수일가가 2ㆍ3세에 경영권을 승계하는 기존 재벌 기업이 엄연히 남아 있고, 최근 늘어나는 정보기술(IT) 업종의 신흥 대기업도 많아 이들을 하나의 틀로 규제하는 게 효과적인지에 대한 한계점이 드러나고 있다”며 “동일인 개념은 공정거래법 외에도 세법 등 방대한 법률 분야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파급 효과를 고려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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