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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그르칠라” 암호화폐 과세 ‘뿔난 2030’…눈치보는 여야

중앙일보 2021.04.29 05:00 종합 12면 지면보기
암호화폐 과세 등을 둘러싼 젊은 층의 분노가 확산하자 정치권도 대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사진은 2018년 5월 6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가상화폐거래소 앞에서 우산을 쓴 시민이 오가는 모습. 연합뉴스

암호화폐 과세 등을 둘러싼 젊은 층의 분노가 확산하자 정치권도 대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사진은 2018년 5월 6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가상화폐거래소 앞에서 우산을 쓴 시민이 오가는 모습. 연합뉴스

 
암호화폐(가상화폐) 과세 논란이 연일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내년부터 암호화폐 거래로 얻은 이익이 연 250만원을 넘으면 기타소득으로 보고 20%의 세금을 물린다는 게 정부 방침인데,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보호는 내팽개치고 세금만 뜯어간다”는 비난 여론이 확산하자 정치권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 27일 “조세 형평성상 과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여당 일각에서 과세 유예론이 분출했던 것과는 결이 다른 발언이다. 야당은 이런 당정의 틈을 파고들어 공세를 폈다. “투자자 보호는 외면하고 세금만 매기는 도둑심보 정권”(27일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라면서다.
 

4년간 손 놓은 정부, 뒤늦게 불 끄는 정치권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6회국회(임시회) 제1차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은 위원장은 이날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을 정부가 다 보호할 순 없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6회국회(임시회) 제1차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은 위원장은 이날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을 정부가 다 보호할 순 없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암호화폐 논란에 처음 불을 댕긴 건 은성수 금융위원장이었다. 은 위원장은 22일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가상화폐는 인정할 수 없는 화폐로,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을 정부가 다 보호할 순 없다”며 “(젊은층이)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얘기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그 잘못된 길을 누가 만들었느냐”며 은 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고, 이날 오후 4시 기준 14만명 이상이 서명했다.
 
암호화폐를 둘러싼 홍역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2017년 비트코인 가치가 1500% 이상 치솟자 투기 과열을 우려한 정부는 그해 12월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투기 과열을 방지하고, 암호화폐를 이용한 환치기(불법 외환거래) 등을 엄단하겠다는 ‘가상 통화 관련 긴급 대책’을 부랴부랴 내놨다. 2018년 1월 박상기 당시 법무부장관이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까지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폭탄 발언을 하자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암호화폐 논란이 잠잠해지자 당국은 제도 정비에 슬그머니 손을 놨다. 지금까지 통과된 암호화폐 관련 법은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과 소득세법 뿐인데, 특금법은 자금세탁 방지, 소득세법은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이라 투자자 보호와는 거리가 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2017년 암호화폐 광풍 이후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관련 문제들이 해소되지 못하고 누적됐다”고 지적했다.
 
정치권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암호화폐 거래소 인허가 제도 도입, 암호화폐 이용자에 대한 설명 의무 부과 등을 골자로 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2017년 발의했지만 별다른 논의 없이 폐지됐고, 지난해 6월 다시 법안을 내놨지만 1년 가까이 계류 상태다.
 

2030 투자자들 분노에 촉각 세우는 여야

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와 전국청년당 간담회에서 윤호중 비대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와 전국청년당 간담회에서 윤호중 비대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하지만 올해 암호화폐 광풍이 다시 불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20·30세대가 불만을 쏟아내면서 정치권이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정부가 방치한 암호화폐 시장에서 표출되는 젊은층의 분노를 야당이 담아내지 못하면 대선을 그르칠 수 있다는 당내 인식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여당 일각에선 과세 유예론이 흘러나왔다. 양향자 민주당 의원은 26일 페이스북에 “준비 없이 과세부터 하겠다면 시장 혼란만 커질 것”이라고 적었고, 노웅래 의원도 “과세 시기를 주식 양도세 도입 시기인 2023년으로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익표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가상자산 시장에 뛰어든 사람이 아니라 불법행위를 단속하겠다는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국민의힘은 지난 26일 가상화폐 태스크포스(TF) 만들어 암호화폐 논란 대응에 나섰다. 사진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 모습. 오종택 기자

국민의힘은 지난 26일 가상화폐 태스크포스(TF) 만들어 암호화폐 논란 대응에 나섰다. 사진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 모습. 오종택 기자

 
암호화폐 이슈에 둔감했던 야당도 논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표를 몰아준 젊은층의 분노가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국민의힘은 26일 ‘가상화폐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대응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당내 경제통 의원들도 정부 때리기에 나섰다. 추경호 의원은 27일 “투자자 보호를 외면하면서 수익에는 세금을 물리는 건 이중잣대”라고 비판했고, 류성걸 의원도 “암호화폐 투기 열풍이 청년세대의 절망감에서 비롯됐다는 걸 정부가 인식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다만 두 의원 모두 암호화폐의 불안정성이나 투기 광풍 등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추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정체 모를 일부 코인 상품에 대한 투명한 공시나 거래소 감독 등 체계적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고, 류 의원은 “암호화폐는 화폐로 볼 수 없다. 비정상적인 투기 현상을 바로잡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암호화폐 논란이 내년 대선에서 20·30세대 표심을 좌우할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정치권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국내에만 약 400만명이 암호화폐 거래에 뛰어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선 직전인 내년 초부터 암호화폐 과세가 시행되면 분노 여론이 널뛸 수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누적된 부동산 분노 민심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등을 계기로 지난 보궐선거에서 터진 것처럼, 암호화폐 분노도 어디로 튈지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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