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34만원짜리가 500만원으로?" 중국의 '인형 투기' 광풍

중앙일보 2021.04.28 17:00

세계 1위 저축 국가

 
중국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저축의 나라'다. 2009년 이후로 중국 국민의 저축률은 매년 40%에서 50% 사이를 오가며 '세계 1위 저축 국가'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 대부분 국민이 자산의 절반가량을 은행에 고이 모셔둔다는 이야기다.
 
'투자'라는 단어가 사람들 틈으로 서서히 스며든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천천히 자본 시장이 개방되고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사람들이 주식에 조금씩 눈을 뜨게 되고,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1선 도시들의 집값을 바라보다 못해 점점 부동산 투자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저축을 줄이고 주식을 사거나 부동산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투자 열풍'이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불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출처=셔터스톡]

[사진출처=셔터스톡]

 
'70허우'는 주식, '80허우'는 부동산에 투자, '00허우'는 운동화, '90허우'는 곰인형에 '투기'?
 
그런데 사람들 마음 속에 바람을 일으킨 것은 비단 투자 열풍만은 아니었다. '투기 광풍' 역시 일고 있다.  
  
가상화폐 규제 이전에는 비트코인이, 얼마 전까지는 팝마트 등의 랜덤박스가, 이젠 '운동화'와 '곰인형'이 사람들의 투기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최근 중국 관영매체 중앙재경(中央财经)은 정가 2000위안(약34만원)짜리 곰인형이 시장에서 3만위안(약500만원)에 거래되는 곰돌이 인형 투기 현상에 대해 보도했다.
2000위안짜리 제품이 3만위안에 거래되는 현상을 보도한 중국 매체 [사진출처=CCTV재경]

2000위안짜리 제품이 3만위안에 거래되는 현상을 보도한 중국 매체 [사진출처=CCTV재경]

 
주로 '90허우(90년대 이후 출생자)'들이 열광한다는 이 인형은 바로 '베어브릭(BearBrick)'이라는 이름의 곰돌이 피규어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것은 인형 자체가 아닌, 그 너머의 '돈 벌 기회'다. 베어브릭 투기 현상의 심화로 사람들이 인테리어나 소장을 위해서가 아닌 '투자' 목적으로 이 인형을 구매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 '베어브릭 거래 플랫폼'에서는 소비자가 약 3천 위안(약 50만원)인 베어브릭의 가격이 6천 위안(100만원)에 거래되는가 하면, 정가 8천800위안(150만원)짜리 베어브릭이 실거래가 11만5천 위안(1천965만원)에 거래되는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드래곤의 뮤비에 등장한 베어브릭 [사진출처=바이두바이커]

지드래곤의 뮤비에 등장한 베어브릭 [사진출처=바이두바이커]

 
이렇게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 저변에는 중국 예능 프로그램들과 인플루언서들의 SNS 등 매체 홍보 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베어브릭 측에서 내놓은 타 브랜드와 콜라보, 연예인 콜라보, 한정판 등 모델은 출시 직후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이러한 '관심'을 타고 인형 가격이 낮게는 수 배에서 많게는 십수 배로 뛴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거래소'의 등장은 수많은 사람이 이 시장에 쉽게 진입하도록 만들었다. 개인 간 거래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인형 거래 플랫폼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더 많은 사람이 이 시장에 유입됐다는 것이다.
  
또한 이 플랫폼들은 사람들의 '투자'를 돕기 위해 할부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제삼자 결제 플랫폼을 통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기도 했다. '투자 기회'를 본 사람들은 돈이 부족해 인형 구매를 주저했다가도, 할부나 대출 등으로 부족한 금액을 보충해 '빚투'를 할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을 팔꿈치로 쿡쿡 찔러 시장으로 진입하도록 유도하는 장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사진출처=정상찬웨]

[사진출처=정상찬웨]

 
같은 '투자 종목'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베어브릭은 운동화와 조금 다른 면이 있다. 베어브릭의 경우에 아이템 속성 자체가 '투기성'이 더 짙다는 것이다. 베어브릭은 상품의 '공식 정가' 자체부터 가격 폭이 매우 크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베어브릭은 권장 소비자가 30위안(약 5000원)짜리가 있는가 하면, 8천800위안(약 150만원)짜리 인형도 존재했다. 운동화의 경우 정식 출고가 자체가 높지 않지만, 사람들의 투기 열풍으로 가격이 오르지만, 베어브릭은 출고 때부터 이미 수십만원, 수백만원인 제품이 존재한다. 대부분 특별제작된 한정판인 이 제품들이 시장에서 또다시 가격이 몇 배 뛰면서 수천만원짜리 인형이 탄생하게 된다.
  
게다가 운동화는 착화하여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능성'이 있지만, 베어브릭은 그렇지 않다는 점도 다르다. 제품의 '희소성', '심미성' 등을 통해 소장가치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미술품'과 유사한 모습이다. 업체 측에서 만든 한정판 '반 고흐' 제품이나, 다른 세계적 예술가들과 협업해 만든 제품들이 마치 '예술품'처럼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 고흐' 특별판 베어브릭 [사진출처=정상찬웨]

'반 고흐' 특별판 베어브릭 [사진출처=정상찬웨]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충이(叢屹) 톈진(天津)재경대 교수는 "어떤 상품의 투기성이 지나치다는 것은 곧 시장에 거품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때 더 많은 자본과 '빚투자금'이 시장에 유입되면 금융 리스크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의 '곰돌이 인형 투기'가 멈춰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취업난과 저임금, 그에 비해 폭등하는 부동산 등의 자산 가격 때문에 젊은이들의 재테크에는 그 선택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왜 이러한 '기이한' 투기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지 그 배경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사진출처=정상찬웨]

[사진출처=정상찬웨]

 
차이나랩 허재원 에디터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