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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 희롱하고 1억원 뜯었다…NASA 직원 '랜선애인' 정체

중앙일보 2021.04.28 16:19
'로맨스 스캠' 사례.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로맨스 스캠' 사례.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와! 난 당신이 내 친구 요청을 수락(해) 정말정말 행복해요.”
지난 1월 한 한국인 여성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을 미군이라고 밝힌 남성으로부터 이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한국 친구를 만나서 너무 기뻐. 나는 한국을 너무 사랑한다”는 달콤한 문자도 이어졌다.
 
이후 한 달 가까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급속도로 가까워진 두 사람. 사랑 고백까지 한 이 남성은 어느 날 “돈이 필요하다”며 여성에게 500만원을 요구했다. 여성은 애인의 말을 믿고 돈을 건넸다고 한다. 그러나, 이 남성은 미국 국적도, 군인도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나이지리아 ‘로맨스 스캠’ 조직의 일원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미군 군의관”이라며 여성 돈 뜯어내 

노트북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노트북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이처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만난 여성에게 접근한 뒤 돈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나이지리아 국적 남성 A씨 등 2명을 구속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월 SNS로 인연을 맺게 된 한국인 여성에게 자신을 예멘에서 일하고 있는 미군 군의관이라고 소개했다. 이후 한 달 정도 연락하며 이 여성의 환심을 산 뒤 “한국에 금괴를 보낼 일이 있는데 맡아줬으면 좋겠다. 금괴를 보낼 탁송(남에게 부탁해 물건을 보냄)비만 내달라”며 수차례에 걸쳐 5100만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자신을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 직원이라고 속인 B씨는 다른 피해자 2명에게 돈을 가로챘다고 한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최근 넉 달 동안 피해자 4명(여성 3명, 남성 1명)에게서 1억2000만원을 챙겼다. 경찰 관계자는 “A씨 등은 피해자가 보낸 돈을 인출한 인출책일 가능성이 있다”며 “이들에게 범행을 지시한 사람이 있는지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로운 싱글 노리는 ‘로맨스 스캠’

'로맨스 스캠' 사례.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로맨스 스캠' 사례.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이러한 범죄는 최근 유행하는 신종 범죄 가운데 하나인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이라고 한다. ‘스캠’은 신용 사기를 말한다. SNS나 e메일 등을 통해 호감을 나타내며 신뢰를 쌓은 다음 각종 이유로 돈을 받아내는 사기 범죄인 것이다.
 
범죄자들은 보통 신분·재력·외모 등을 과시하며 연락 상대방의 환심을 산다고 한다. 주로 해외 파병 군인, 의사·변호사 등 상황에 맞는 전문직 신분으로 위장한 뒤 피해자에게 결혼이나 한국 이주를 약속한다. 그러면서 “한국에 생활비나 금괴 등을 보낼 테니 탁송비를 먼저 내달라”며 지정 계좌로 돈을 보내게 해 가로채는 식이다.
 
이들은 의심을 줄이기 위해 위장 신분에 맞는 SNS 계정을 만들고, 일상 사진을 보낸다. 또 ‘국경을 넘는 사랑’ 등과 같은 말을 영어로 SNS 등에 적어 둔다. 피해자가 사랑이나 친밀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구글 번역기로 영어를 한글로 바꿔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영문 독해가 약한 피해자들은 구글 번역기를 썼기 때문에 약속한 물건이 오지 않아도 항의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핑계를 대는 피의자 말에 속아 1년여 동안 돈 수억 원을 보낸 피해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로맨스 스캠’ 범죄는 지난 1월부터 이달까지 경기도에서만 57건이 접수됐다. 김성택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은 “로맨스 스캠은 SNS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개인 SNS에는 범행에 사용될 수 있는 개인정보 노출을 자제해달라”며 “범죄자들이 보내는 사진은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사진이 대부분이므로 SNS로 접근해오는 낯선 이성을 본다면 포털사이트에 ‘해외 군인’ ‘해외 의사’ 등을 검색해 대조해보는 것도 피해 예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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