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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남길 업적 없으면 이야기라도…글쓰기 공부하는 이유

중앙일보 2021.04.28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89)

내 나이 만 60세가 되던 해에 그동안 꿈꾸어왔던 대학생이 되었다. 담쟁이덩굴처럼 학우들 따라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졸업반이다. 올해는 논문 제출도 있어 가슴이 벌렁거린다. 또 60세 축하기념으로 세상과 만나는 글 자리를 마련해준 그 일도 습관보다 더 중요한 약속처럼 지키며 나를 관리한다. 내가 목표한 200회가 눈앞에 보인다. 내 인생의 가장 청춘기를 꼽으라면 지금이다. 목표가 있으니 눈을 감았다 뜨면 하루가 간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사지선다의 외워야 하는 공부가 아닌 즐거운 소풍 같은 학습이다. 누군가는 성공의 척도를 돈과 재물로 말하지만 나이 들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건강하면 최고의 성공이다. 돈이 나를 불러도 내가 외면할 뿐이다. 하하.
 
내가 힘들 때 위로가 되어 준 것은 일기다. 그날의 일상을 쓴 한 줄이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내가 힘들 때 위로가 되어 준 것은 일기다. 그날의 일상을 쓴 한 줄이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그해엔 지역 콘텐츠진흥원에서 시나리오 쓰기, 영화 만들기 수업도 받았다. 회원의 절반 이상이 정년퇴직을 했거나, 앞둔 사람이었다. 나도 ‘내 인생을 영화로 만들어보기’, ‘자서전쓰기’ 등의 수업에 참여해보라고 주위에 권한다. 의욕이 있으니 늦은 저녁 수업에도 열강이었다. 그때 수업을 주관한 하원준 감독은 꾸준하게 글을 쓰려면 스토리 클럽을 만들어 함께 쓰고 활동하는 거라 했다. 그래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소수정예 클럽을 만들어 활동한 지도 벌써 3년째이다. 회원 중엔 나이만 자랑하는 나와, 유명방송 극작가와 등단하신 분, 또 젊은 사회부 기자도 있다. 서로 멘토가 되어주며 격려한다. 한 달에 한 번 모여 살아가는 이야기만 풀어도 위로가 되고 밤을 새울 기세라 헤어짐이 늘 아쉽다.
 
어쩌면 우리에게 클럽을 만들어 활동하라고 알려준 젊은 감독이 보면 한심하고 우스운 짓거리라 할지 모른다. 상금을 향해 도전해야 글이 잘 써진다고 농담했으니 말이다. 좋은 글은 돈이 되고, 밥벌이해야 하는 절박한 글은 어쩌면 더 생생하고 우리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다. 그래도 소재를 모으고 진열하다 보면 실속 없이 힘들어도 재미있어 매번 참석률은 100%다. 기승전결에 대한 묘미를 더 배워야 하지만, 그건 공부 삼아 온갖 장르의 영화를 많이 볼 수 있는 핑계도 되고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거리다. 기회가 오면 공동작품으로 써놓은 것 중 하나를 쓱 빼내 풀 먹이고 다듬질해 공모전에 내보는 것도 소박한 꿈이고 목표다.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각자가 살아온 시간이다. 나이가 들면 세상의 모든 일상과 이야기 속에 내가 주인공이 되어 있다. “저땐 내가 더 아팠어”, “나도 그렇게 살았는데”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힘들 때 위로가 되어 준 것은 일기다. 그날의 일상을 쓴 한 줄이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만들어 주었다. 살기 힘들다고 말하지만 한 줄 일기라도 꼭 남겨놓자. 우리는 전쟁 같은 이 시각의 주인공이다. 어떤 위로도 보탬이 안 되는 지금의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살다 보면 훗날 자서전의 이야깃거리가 된다.
 
기차 안에서 숙제가 시작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차에 대한 추억을 짧은 두세 줄로 로그라인을 만든다. 우리의 지친 삶을 안아주면 업적은 안 남아도 이야기는 남을 것이다. [사진 pixabay]

기차 안에서 숙제가 시작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차에 대한 추억을 짧은 두세 줄로 로그라인을 만든다. 우리의 지친 삶을 안아주면 업적은 안 남아도 이야기는 남을 것이다. [사진 pixabay]

 
엊그제는 주제가 '기차'에 대한 것이라 회원들과 안동역에서 만나 기차 여행을 다녀왔다. 원주에 도착해 박경리 문학관과 재래시장을 돌며 맛있는 점심을 먹고 사람 사는 세상을 기웃거렸다. 코로나로 텅 빈 재래시장이 마음 아팠다.
 
기차 안에서 숙제가 시작된다. 자신의 삶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기차에 대한 추억을 짧은 두세 줄로 로그라인 만든다. 웃음과 눈물,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모두 모아 합치면 타인의 이야기는 풍경이 되고, 조연이 되고, 내 이야기는 주인공이 되어 여러 장르의 이야기 몇 개가 뚝딱 만들어진다. 이번 모임에서는 각자의 스토리를 읽고 거기에 들어갈 양념 같은 조언을 받아 글을 더 감칠맛 나게 다듬는 작업이다. 돈 버는 일도 아닌, 돈을 써가며 하는 일인데도 재산이 쌓이듯 보람 있다.
 
실적과 실속은 없지만 꾸준하게 글쓰기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채찍은 “죽어 업적을 남길 게 없다면 이야기라도 남기자”고 말한 작가의 글에 자극을 받아서다. 우리의 지친 삶을 잘 안아주면 업적은 안 남아도 이야기는 남을 것이다. 뉴스엔 보이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일상이 다시 조여온다고 한다. 지겹다.
 
“코로나야, 너의 이야기는 졸업 논문으로 써 줄 테니 이제 그만 떠나라. 제에발.”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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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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