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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역 집창촌 ‘트로이목마 작전’ 통했다…60년 만에 정비

중앙일보 2021.04.28 05:01 종합 16면 지면보기
지난 20일 염태영 경기 수원시장과 김원준 경기남부경찰청장이 수원역 집창촌을 점검하고 있다. 수원시

지난 20일 염태영 경기 수원시장과 김원준 경기남부경찰청장이 수원역 집창촌을 점검하고 있다. 수원시

지난 26일 정오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하철 1호선 수원역 맞은편의 한 골목 입구. ‘청소년 출입금지구역’이라고 적힌 남색 가림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골목 안에는 분홍색과 하얀색 커튼이 내려진 유리문들이 보였다. 일부 업소 앞에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성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수원역 집창촌’의 낮 풍경이다. 업소 관계자는 “요즈음 손님이 없다. 영업을 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소 입구엔 “앞으로 성매매업소 운영하지 않겠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폐업하겠다며 붙인 것이다. 
 

성매매거리 안에 사무소 전격 설치
시, 2년간 설득해 업소 절반 철수
이달 초 ‘여성안심구역’으로 지정

수원시의 ‘흉물’로 불리던 수원역 집창촌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영업에 치명타를 입은 뒤 업주와 종사자들이 자발적으로 문을 닫거나 수원시의 보상 제안 등을 받아들이면서다. 업주와 종사자들은 지난 3월 성매매업 관계자들의 모임인 한터 전국연합회 수원지부에서도 모두 탈퇴했다.
 

60년 만에 사라지는 수원역 집창촌  

수원역 집창촌은 1960년대 수원역과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던 팔달구 고등동과 매산로 1가에 성매매업소들이 들어서면서 조성됐다. 한때는 서울이나 충청지역 등에서 ‘원정’을 올 정도로 붐볐다. 2001년 시외버스터미널이 권선구로 이전하고 2004년 성매매 방지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규모가 줄긴 했지만, 지난해 말까지 110여 곳이 영업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철거된 수원역 집창촌 성매매업체수원시

철거된 수원역 집창촌 성매매업체수원시

집창촌은 수원역 개발의 걸림돌이었다. 하루 평균 유동 인구가 40만명에 이르는 역 주변엔 2000년 이후 백화점 등 대형 쇼핑시설과 호텔, 먹거리촌 등이 생겼다. 이런 ‘노른자위 땅’에서 대낮에도 ‘호객 행위’가 벌어지자 시민들은 피해서 지나다녔고, 상가는 빠져나갔다.
 
수원시의 개발 추진은 번번이 실패했다. 나서는 민간개발업체가 없었고, 낡은 건물 등을 보수하는 도시환경정비사업은 토지주와 성매매업소들이 반대했다. 집창촌 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는 거세졌다. 이종희 수원역 성매매 집결지 폐쇄 지역주민연대 대표는 “집창촌 바로 옆에 들어선 4000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곧 입주를 시작하는데 집창촌 때문에 주민들이 가까운 길을 두고 멀리 돌아서 다녀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직격탄’, 수원시 ‘설득’, 경찰 ‘단속’

민원이 이어지자 수원시는 다시 집창촌 일대 정비에 나섰다. 낡은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화재 위험 등이 높은 집창촌 안에 소방도로를 만들기로 했다. 일부 업소를 폐쇄해 기존 폭 2m인 도로를 6m로 늘리는 사업이라 업주들의 동의가 필요했다. 수원시는 2019년 1월 수원역 가로정비추진단을 신설하고 사무실을 아예 집창촌 안에 차렸다. 담당 공무원들은 매일 집창촌으로 출근해 업주와 종사자들을 만나 소방도로의 필요성과 보상 규정을 알리며 설득했다.
 
간곡한 호소가 이번에는 먹혀들기 시작했다. 소방도로 부지에 포함된 업소와 인근 업소들이 자진 폐업 의사를 밝혔다. 수원시는 자진 폐쇄를 약속한 업주와 성매매 종사자들에게 생계비와 주거비 등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수원시 관계자는 “코로나 여파로 안 그래도 줄어들던 이용객 수가 대폭 감소했고, 집창촌 폐쇄 민원이 쇄도하면서 업소들도 부담을 느끼던 차였다. 시가 적극적으로 설득하자 업소들이 폐쇄로 입장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단속의 고삐를 조였다. 최근 집창촌 안에서 3~4개 성매매업소를 운영하던 일가족을 적발해 불법 수익 62억원을 몰수 보전했다. 지난해 말 110여곳이던 수원역 집창촌 성매매 업소 수는 50곳으로 줄었다.
 경찰과 수원시민들이 지난 15일 수원역 집창촌에서 성매매 근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수원시

경찰과 수원시민들이 지난 15일 수원역 집창촌에서 성매매 근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수원시

집창촌은 이달 초엔 ‘여성안심구역’으로 지정됐다. 경찰이 집중 순찰하고 수원시는 CCTV 13대를 설치하고 LED 벽부등·도로표지병 등으로 골목을 환하게 꾸몄다. 그러자, 집창촌 골목엔 새 이름이 생겼다. ‘은하수 마을’이다. “밤에 환하게 빛나는 은하수처럼 빛나는 동네가 됐으면 좋겠다”고 주민들이 상의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수원시 관계자는 “수원역 집창촌이 완전히 정비돼 모든 시민이 편안하게 통행할 수 있는 거리가 되도록 지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광규 경기남부경찰청 생활질서계장은 “현재 문을 닫지 않은 업소들도 5월 말까지 자진 폐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라며 “수원역 집창촌에 이어 평택에 있는 쌈리 집창촌도 대대적으로 단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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