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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 "경제" "공정" "환경"…중도를 묻자 野주자들 답 달랐다

중앙일보 2021.04.28 05:00
조조와 유비가 한중(漢中)에서 크게 맞붙는 장면은 『삼국지연의』 명장면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한중을 틀어막아 유비를 서촉에 가두려던 조조, 한중을 교두보로 중원을 겨누려던 유비로선 피할 수 없는 한 판 승부였다. 두 세력은 오랜 기간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유비의 사후엔 유지를 계승한 제갈량이 출사표까지 올리며 끊임없이 중원을 도모했다.

②야권 주요 인사들이 말하는 '중도'의 실체

 
최근 한국 정치판에서도 중원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중원, 그러니까 정치 영역에서 중도의 영역이 결정적 공간이란 점은 연의와 꼭 닮았다. 선거 때마다 연전연패한 국민의힘이 4·7 재보궐선거에서 압승한 배경엔 중도층 표심을 야권이 가져갔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실제 과거보다 중도와 개혁을 지향하는 이들이 야권에 많다. 왕이 되려는 자이든, 왕을 만들려는 자이든 중도·개혁 세력의 대표 주자를 자임하고 유권자들에게 어필하려 든다. 그런데 막상 누가 가장 신망이 높고 유력한지에 대해선 뾰족한 답을 내기 어렵다. 상황이 이럴진대, 대선까지는 남은 시간은 10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중원을 차지하려는 야권 유력 정치인들 간의 합종연횡이 횡행하고, 더 뜨거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원 둘러싼 야권 합종연횡.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중원 둘러싼 야권 합종연횡.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중도층 공략=대선 승리’라는 공식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의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이른바 ‘집토끼’로 불리는 지지층을 견고히 한 뒤 중도 지대, 즉 중원을 선점하면 이긴다는 간단명료한 공식이다. 이를 두고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전국 단위 선거인 대선은 이른바 ‘3:4:3 법칙’(보수·중도·진보 비율)이 작동하는 승부처”라며 “지난 보궐선거를 제외하고 보수 진영이 각종 선거에서 연패한 건 중도 선점에 실패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국민의힘 원내 사령탑을 노리는 4인방도 최근 출사표를 던지면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외연 확장을 간판으로 내걸었다. “중도 합리의 시대를 열겠다”(권성동), “우파 결집보단 중도우파, 중도좌파에게 득점”(김기현), “영남 독식은 외연 확장에 도움 안 된다”(김태흠) “세대·지역·가치 면에서의 외연 확장”(유의동) 등이다.

 
이처럼 중도 공략과 외연 확장은 야권 정치인에게 필수 카드가 됐지만, 이들이 말하는 중도란 대체 무엇인지가 명확히 드러난 적은 없다. 중도를 단순히 진보와 보수 사이에 낀 중간지대나 무당층으로 인식하는 등 중도를 바라보는 시선이 애매모호한 건 사실이다. 대선을 10개월 남짓 앞두고 중원 쟁탈전에 뛰어든 야권 인사들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중도의 개념과 중원 공략을 위한 비책이 무엇인지 직접 들어봤다.

 

안철수 “진영논리 배격” 유승민 “결국은 경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왼쪽)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중앙포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왼쪽)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중앙포토

 
국민의힘과의 합당을 눈앞에 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7일 중앙일보에 “중도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과학적이고 실용적 사고로 합리적 개혁을 추구하는 집단”이라고 말했다.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한 비책으론 “이념과 진영논리를 배격하고 전문성을 갖춘 유능한 정부를 수립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에서 무너진 헌법 정신과 법치·정의·공정·상식 등 가치와 규범도 회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패와 불공정이 정치 불신을 야기하는데, 사회 비리와 부패를 척결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중도층의 마음도 움직인다. 대선은 결국 약 20~30%의 중도층에 좌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중도에 대해 “이념에 구애받지 않고, 옳고 그름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이라며 “정치적으로는 스윙 보터(swing voter·이슈와 상황에 따라 투표하는 이들)이고, 사회적으로는 시대 정신을 반영하는 그룹”이라고 설명했다.
 
경제통으로 손꼽히는 유 전 의원은 중도층의 표심을 얻을 가장 중요한 화두로 경제와 공정을 꼽았다. 그는 “코로나 시대 이후 경제를 어떻게 살려내느냐, 또 중도층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자리, 부동산 등 이슈를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관건”이라며 “넓게 보면 공정이라는 가치도 일자리·비정규직·복지 등 경제 문제와 깊이 연관이 돼 있다”고 강조했다.
 

원희룡 “현실의 삶 개혁” 김동연 “금기 깨는 게 중도”

원희룡 제주지사. 중앙포토

원희룡 제주지사. 중앙포토

 
또 다른 야권 대선주자인 원희룡 제주지사는 “중도를 단지 중간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매 순간 합리적이고 옳다고 생각하는 걸 선택하는 정치적 태도를 갖고 있으며, 고정된 틀에 박히는 걸 거부하는 게 중도”라면서다.

 
원 지사는 “중도층이 원하는 건 문재인 정부가 앞세운 이념이나 편 가르기가 아닌 현실적인 삶의 개혁”이라며 “코로나 사태로 야기된 사회 문제들과 양극화, 부동산값 폭등 사태를 해결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정, 공직자의 솔선수범 등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수로 요구되는 공통 가치도 회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대선 주자감으로 평가하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보수와 진보가 각자의 금기를 깨는 것이 곧 중도를 향하는 것”라고 밝혔다. 김 전 부총리는 “보수가 사회안전망의 대폭 확대에 찬성하고, 진보가 안정성을 전제로 노동 유연성에 찬성하는 등 혁신을 해야 국가 개혁과 발전이 가능하다”며 “단순히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가 이런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진보냐 보수냐 하는 이념적 테두리에 머무르지 않는 중간 지대가 중도”라고 설명했다. 김 전 위원장은 “외연 확장은 필요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중도층을 흡입할 수 있는 보수 정당만의 대안부터 갖춰야 한다”며 “애매하게 중간 지대를 노린 정책을 내놓는 것으론 수권 정당의 면모를 보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정·민주·정의·환경 등 민주당의 손아귀에서 부서진 가치들을 보수가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금태섭 전 무소속 의원이 16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회동하는 모습. 뉴시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금태섭 전 무소속 의원이 16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회동하는 모습. 뉴시스

 
제3지대에서 신당 창당에 나설 뜻을 밝힌 금태섭 전 의원은 “진보든 보수든, 이념 색이 있든 없든 서로 인정하고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금 전 의원은 “외연 확장을 하는 길은 결국 일자리 등 민생 경제 분야에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염두에 두고 앞으로 다가올 기후, 환경 재앙 등에 대한 대비책을 제시하는 것도 민심을 얻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총선 패배 이후 보궐선거에서 승리하기까지 약 10개월간 국민의힘을 이끈 ‘김종인 체제’가 핵심 기치로 내건 것도 중도 외연 확장이었다. 김 전 위원장과 가까운 한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아스팔트 우파’라고 불리는 기존 강성 보수층과 결별하고 당 정강·정책에 기본소득과 경제민주화를 명시한 건 모두 중도층 공략의 일환”이라며 “외연 확장을 위해 약자 동행, 민생 회복은 물론 보수 진영의 과오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김 전 위원장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보궐선거 당시 외연 확장의 적임자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오 시장은  “제 지지층은 굉장히 널리 분포돼 있다. 우리 당 지지층이 주축이지만 스윙보터와 일부 민주당 지지층도 저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오 시장을 향한 중도층의 민심은 결국 향후 서울 부동산 공급, 코로나19 방역 등 정책 성패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당 지지율은 ‘박빙’, 정권 교체론은 ‘압도’
여론조사에 숨겨진 중도층 표심
분노는 있는데 담아낼 그릇이 없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민심은 이렇게 요약된다. 한국갤럽이 지난 16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차기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해야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과반(55%)이었고, ‘정권 유지’를 택한 응답자는 34%에 그쳤다.
 
반면, 정당 지지율은 박빙이다. 국민의힘(31%)이 더불어민주당(30%)을 1%포인트 차로 근소하게 앞섰다. 무당층은 26%에 달했다. ‘정권을 바꿔야한다’는 분노가 야당 지지로는 이어지지 않은 셈이다.
 
간극 커진 당 지지율과 정권교체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간극 커진 당 지지율과 정권교체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최근 여론조사에선 이 같은 추세가 확인된다. 20~30%대를 맴도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50%대에 육박한 정권교체 지지의 상승세를 못 따라잡고 있다. 지난해 8월 2주차 여론조사에선 18%포인트(p) 차이였던 국민의힘 지지율(27%)과 정권교체 지지도(45%) 격차는 같은 해 12월 1주차엔 23%p로 커졌고, 지난 16일엔 24%p까지 벌어졌다.(※인용된 모든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전문가들은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중도층이 야당을 아직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면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중도층이 많아진다. 이른바 ‘30%의 법칙’”이라며 “부동산 이슈 등으로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린 중도층은 국민의힘이 문제해결능력이 있는 정치세력인지 지켜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의 정치성향이 강하지 않은 만큼 “국민의힘의 대안, 대선후보, 정부여당의 대처를 지켜보고 마음을 결정할 것(배 소장)”이란 분석이다. 박동원 폴리컴 대표도 “결국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정권교체 열망이 당장 당 지지율로 모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선 대선에서도 각 캠프의 승리를 이끈 요인은 중도층을 공략한 ‘특별한 계기’였다. 16대 대선 한달 전까지 ‘대세론’을 이어가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인터넷 선거운동 등으로 젊은 층을 공략하던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중도층을 업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 극적인 단일화를 이뤄내면서 대선에서 패배했다. 17대 대선에선 이념 대신 실용주의 노선으로 ‘경제대통령’을 외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중도 표를 휩쓸었다.
 
보수색이 강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18대 대선에서 승리한 데도 중도표심을 자극한 영향이 컸다. 당시 새누리당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필두로 ‘경제민주화’ 등 좌클릭을 시도했고, 보수가 결집한 가운데 중도표심을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10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도 “중도층 민심을 잡는 게 캠페인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궁극적 목표(박동원 대표)”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소장은 “대선이 되면 기존 지지층은 ‘미워도 우리편’을 선택한다”며 “결국 중도층을 누가 점하냐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손국희·성지원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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