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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논설위원이 간다] 서소문 순교지에 대형불화, 코로나19 불안을 달래다

중앙일보 2021.04.28 00:31 종합 22면 지면보기
화엄사 괘불 앞에 선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장 원종현 신부(왼쪽)와 김영호 예술감독. 박정호 기자

화엄사 괘불 앞에 선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장 원종현 신부(왼쪽)와 김영호 예술감독. 박정호 기자

전시장은 고요했다. 하지만 울림은 우렁찼다. 가톨릭과 불교가 서로를 껴안으며 시대에 지친 관객들을 쓰다듬었다. 공존과 상생, 위로와 평화의 작은 잔치 비슷했다.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요즘 풍경이다. 한국 가톨릭의 최대 순교지인 이곳에 전남 구례 화엄사의 부처가 나들이했다. 천주교 유적지와 불교 문화재의 미묘한 충돌, 한데 그것은 거친 파열음이 아닌 부드러운 복음, 혹은 설법 같았다.  
 화엄사 부처는 괘불(掛佛)이다. 괘불은 ‘거는 부처’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야외 의식을 위해 그린 불화를 가리킨다. ‘움직이는 부처’ ‘찾아가는 부처’쯤 된다. 현재 내려오는 괘불은 약 120점 정도. 그중 화엄사 괘불은 가장 크면서도(높이 12.08m, 폭 7.69m) 구도 및 색감 등 작품성이 뛰어난 걸작으로 꼽힌다. 국보 제301호로 지정됐다.

가톨릭과 불교미술의 만남 눈길
화엄사 대형 괘불 이례적 나들이
임란·호란 고통 씻어준 국보 유물
시대를 껴안는 종교 역할 일깨워
“우리는 누구?” 현대불교미술전도

 화엄사 괘불은 전시장 한복판에 펼쳐져 있다. 불화 중앙에 부처가, 그 좌우로 석가의 지혜와 실천을 각각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앉아 있다. 또 상하좌우 네 곳에는 세상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이 있다. 부처의 백호(白毫·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가는 터럭)에선 다섯 갈래의 환한 빛이 쏟아진다. 부처가 인도 영취산(고대 마가다국 수도)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영산회(靈山會) 그림이다.
 이 괘불은 서소문박물관 개관 2주년 특별전 ‘현대불교미술전-공(空)’에 출품됐다. 보존 수리 2년을 마치고 바로 이곳으로 옮겨졌다. 원종현 박물관장(신부)과 김영호 예술감독(중앙대 교수)의 대여 요청에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이 흔쾌하게 응답했다.
노상균 작가의 '새로운 끝'. 인간 인식의 불완전함을 보여준다. [사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노상균 작가의 '새로운 끝'. 인간 인식의 불완전함을 보여준다. [사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좋은 것은 함께해야” 종교 간 대화 공감

 ▶원종현 신부=가톨릭 내부의 반대는 없었다. 좋은 것은 누구나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님들이 괘불 앞에서 예를 갖추고 합장을 했다. 제가 십자가 고상(苦像) 앞에서 성호를 긋는 것과 같았다. 스님들이 합장하는 모습을 보고 사제복 단추를 여몄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절대 교류할 수 없을 것이다. 가톨릭이란 이질적 문화공간에 불화를 대여해준 것, 분명 어려운 선택이자 모험이 아닐까 싶다.

 ▶덕문 스님=1년여 전 전시 요청을 받았을 때 즉각 수락했다. 다른 생각을 0.1도 하지 않았다. 천진암·서소문성지 문제로 한때 양 종교 간에 갈등도 있었지만 이번에 서로 진심이 통했다. 서소문은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조선시대 수많은 양민이 처형된 곳이다. 그들의 영혼을 달래고 싶었다. 코로나19가 극성인 요즘, 괘불도 절집을 나와 시대 속으로 외출할 수 있다. 국민에게 종교 간 화합 메시지도 전하려 한다.
이용백 작가의 '피에타-자기증오'. 인간을 닮은 마네킹이 자기가 태어난 거푸집에 폭력을 가하고 있다. [사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이용백 작가의 '피에타-자기증오'. 인간을 닮은 마네킹이 자기가 태어난 거푸집에 폭력을 가하고 있다. [사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종교 간 대화라는 뜻도 깊지만 화엄사 괘불에 내재한 시사성도 크다. 괘불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조선사회에 괘불이 등장한 건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다. 전쟁과 역병에 시달린 백성들의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졌다. 억울하게 숨져간 숱한 민초(民草)들의 원혼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빌어주는 역할을 했다.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조선사회는 양란(兩亂)을 거치면서 무너진 사찰을 중창하고, 불교를 정비하면서 피폐해진 민심을 수습하려 했다. 두 전쟁 기간 승병(僧兵)의 빼어난 활약 등 호국불교의 면모가 한층 강화됐다.
 1653년 제작된 화엄사 괘불도 이런 흐름의 복판에 있었다. 괘불 조성을 주도한 벽암 각성(覺性·1575~1660) 스님은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고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공을 세웠다. 병자호란 때는 인조의 남한산성 파천(播遷) 소식을 듣고 승병 3000명을 모집해 한양으로 진격하기도 했다. 전란 이후 화엄사를 재건하고, 왕실 등의 후원으로 17년에 걸쳐 괘불을 완성했다.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의 극락왕생을 비는 일종의 진혼곡이었다. 실제로 조선시대 사람들은 전쟁에서 숨진 이들의 떠도는 영혼이 기근과 전염병을 일으키고 세상을 어지럽힌다고 믿었다.  
김태호 작가의 '스케이프 드로잉'. 색을 칠하고 칠하며 형상을 지웠다. [사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김태호 작가의 '스케이프 드로잉'. 색을 칠하고 칠하며 형상을 지웠다. [사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김영호 예술감독은 “화엄사 괘불은 균형 잡힌 형태와 다양한 색채, 그리고 치밀하고 화려한 꽃무늬 장식 등 17세기 조선 불화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다”며 “400년 전 조선시대 백성들에게 희망과 평화를 안겨주었던 괘불이 코로나19 재앙으로 고통받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도 적잖은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명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관은 “화엄사 괘불은 대중들에 설법하는 법당 안의 부처를 야외 의식에 맞게 크게 확대한 형태다. 마치 부처가 현실에 내려온 듯한 느낌을 준다”며 “괘불을 모시는 괘불재는 음악·연극적 요소를 갖춘 종합예술과 같다. 조선 후기에 괘불이 성행한 것은 양란 이후 공동체 회복 과정에서 불교의 역할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김기라 작가의 '장님-서로 다른 길'. 세상사 갈등을 영상으로 풀어냈다. [사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김기라 작가의 '장님-서로 다른 길'. 세상사 갈등을 영상으로 풀어냈다. [사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회화·조각·설치로 풀어본 공(空)의 세계

 특별전에는 한국 현대작가 13명의 작품 30여 점도 나왔다. 현재 국내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이 각기 다양한 조형언어로 풀어본 공(空)의 세계가 펼쳐진다. 전시장 중앙 괘불이 부처라면 현대작가들의 작품은 진리를 향해 함께 정진하는 도반(道伴)쯤 된다. 아니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부처일 수 있다.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게 불교의 가르침이 아닌가. 순교의 피를 머금은 가톨릭 박물관에서 현대 불교미술을 마주하는 재미가 각별하다. 미학적 긴장감마저 감돈다. 회화와 조각, 설치와 영상 등 여러 장르를 아울렀다.
이수예 작가의 '만남'. 수백 개 불상 이미지를 지우고 덧칠했다. [사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이수예 작가의 '만남'. 수백 개 불상 이미지를 지우고 덧칠했다. [사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전시장 초입에 있는 노상균 작가의 ‘새로운 끝’을 보자. 검은색 원 형상이 보기에는 입체 같지만 실제로는 평면이다. 입장·조건에 따라 형상·실체가 달라지는 세상사를 닮았다. 이용백 작가의 ‘피에타-자기증오’는 섬뜩하다. 거푸집에서 나온 로봇 모양의 마네킹이 자신의 모태인 거푸집을 내리칠 태세다. ‘부처를 죽이고 부처가 되라’는 점에서 불교적이지만 로봇에 지배당하는 인공지능 시대의 그늘이 연상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세대 갈등으로도 읽힌다.
 김태호 작가의 ‘스케이프(Scape) 드로잉’ 시리즈도 흥미롭다. 크고 작은 캔버스에 색을 입히고, 또 입히는 덧칠을 반복하며, 심지어 20년을 칠하며 아무런 형상도 없는 화면을 빚어냈다. ‘나는, 세상은 과연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를 묻는 듯하다. 김기라 작가는 실제 순교자의 유해가 묻힌 공간의 사방 벽면에 서로 다투고 욕하는 군상의 모습과 고즈넉한 사찰의 24시간을 찍은 영상을 비춘다. 아귀다툼의 속세와 번뇌가 소멸된 정토 세상의 대비쯤 된다.
 김영호 예술감독은 “한국 사회의 여러 갈등과 반목을 직시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작품들”이라며 “연기·무아·무상·중도 등 불교의 유기적 세계관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종현 관장은 “진리를 구하는 종교와 아름다움을 찾는 예술은 일맥상통한다”며 “서소문박물관도 어느 한 종교에 국한되는 않는 열린 공간으로 키워가겠다”고 했다. 전시장을 나오며 각각 불경과 성경의 지혜를 응축한 두 구절을 떠올렸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 비우고 비우면 또 다른 희망과 비전이 태어날 것이다.
“너는 나다, 나는 너다” 한 노동자의 외침
윤동천 작가의 설치물 '너는 나다'. 우리 사회 노동 현실을 비판한다. [사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윤동천 작가의 설치물 '너는 나다'. 우리 사회 노동 현실을 비판한다. [사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하마터면 못 보고 지나칠 뻔했다. 전시장 지하 3층으로 내려오는 계단 밑 좁은 공간에 윤동천(서울대 교수) 작가의 ‘너는 나다(You are Me)’가 설치돼 있었다. LED 전광판에 ‘너는 나다’ ‘그리고’ ‘나는 너다’ 글자가 번갈아 흐르고, 그 왼편에 컵라면·물휴지·수첩·스마트폰 충전기 등이 놓여 있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의 가방에서 나온 물품을 재현한 것이다. 그 옆에는 택배 상자도 놓여 있다.   
 한눈에 봐도 메시지가 분명해 보인다. 굳이 불교용어로 풀면 ‘너와 나는 둘이 아니다’는 불이(不二)일 터다. 윤 작가는 “장소가 좋았다. 누구도 보지 않는 곳, 우리 사회의 노동 현실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김용균이란 특정 개인에 제한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라고 되물었다. 김영호 예술감독은 “박물관의 가장 외진 공간이라는 역설적 의미가 도드라진다. 최악의 산업재해 사망률이라는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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