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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방에 서울대급 국가 중추대학 2~3 곳 육성하자

중앙일보 2021.04.28 00:26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재영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이재영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지방대 생존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지방대 몰락이 지역 경제의 붕괴, 지역 문화의 단절, 인구 유출 가속화 등 지방 몰락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경종도 울렸다. 이미 원인 분석이 다각도로 진행됐으니 지금이라도 국가가 문제 해결을 위해 즉각 행동에 나서야 한다.
 

지방 국립대 위기부터 해결해야
지방 거점 아닌 국가 중추 돼야

사립대는 설립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국가가 마음대로 관여할 수도 없고 관여해서도 안 된다. 따라서 국가는 지역 국립대 붕괴 위기부터 해결해야 한다. 국립대 존립과 번영에 대한 궁극적 책임은 국가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국립대는 의사결정 과정이 상당히 관료화·보수화돼 있어 위기 타개책을 적시에 내놓기 어렵다는 저간의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다만 대학의 자율성을 국가가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국가는 지역 소재 국립대를 재편해 ‘국가 중추대학(core university)’을 만들 필요가 있다.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방안 등 국립대 재편 논의가 다양하게 제시된 지는 이미 꽤 됐다. 다만 기존 논의는 ‘서울대 대 지방 국립대’라는 구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보니 재편 후에도 서울대급 국가 중추대학은 여전히 하나만 있게 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새로운 구도를 짜야 한다. 핵심은 ‘지방 거점’이 아니라 ‘국가 중추’다. 한국처럼 세계 10위권 경제력과 국제적 문화 역량을 갖춘 나라 중에서 서울대급 국가 중추대학이 달랑 하나만 있는 나라는 없다. 신장된 국력을 온전히 뒷받침하고 미래 지향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서울대급 국가 중추대학이 적어도 두 곳은 더 있어야 한다.
 
때마침 부·울·경 통합 논의가 한창이다. 통합된다면 비유컨대 서울대급 국가 중추대학을 품을 만한 몸집이 갖춰진다고 할 수 있다. 광주와 전남, 세종과 대전의 통합 논의도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대단위 행정 구역이 만들어지면 그곳에 국가 중추대학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지역 국립대 위기 타개를 위해 얼른 시행할 수 있는 조치는 그것대로 먼저 시행해야 한다. 가령 지역 국립대의 등록금을 폐지하는 방안을 고려해 봄 직하다. 이와 함께 지자체와 대기업 등이 지역 인재를 확대 선발하는 제도를 병행한다면 지역 인재 유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국립대에 양질의 기숙사를 신설하고 확충해 원하는 학생에게 무상으로 거주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인재를 배려한다는 상징성이 있을 뿐 아니라 주거 걱정을 줄임으로써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여지를 키운다는 점에서 효과가 기대된다.
 
지역 국립대의 교수 수를 획기적으로 늘릴 필요도 있다. 부족한 교수 수는 학문과 교육의 품질 저하를 초래하고, 대학 졸업 후의 제1 직업 수행 역량의 저하를 초래해 결국 지역 국립대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지역 기반 산·학·관 협력의 부실을 야기해 대학이 지역의 경제·문화적 거점 역할을 수행할 능력을 잃게 한다. 학과 교수 정원 확충은 기존의 국립대 교수 정원 충족률 증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할 조치다.
 
조선 시대 국가의 학문과 교육을 관장하던 홍문관의 수장 대제학은 문형(文衡)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문형은 ‘문명의 저울’이라는 뜻이다. 학문과 교육 등의 인문(人紋)은 문명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국가의 저울추라는 통찰을 담고 있는 명칭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국립대 위기 해법은 단순한 지방 거점 대학이 아니라 국가 중추대학 육성이다. 중장기적 안목으로 지방에 국가 중추대학을 적어도 두세 곳은 구축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나라 대학은 21세기 디지털 문명 시대에도 문명의 저울 역할을 명실상부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재영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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