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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세금 미뤄 달라” 요구에 궁지 몰리는 기획재정부

중앙일보 2021.04.27 16:27
작년엔 ‘동학개미’가, 올해는 ‘코인개미’가 조세 정책을 펼치는 정부 당국을 코너로 몰아세우고 있다. 개인 주식 투자자의 입김에 밀려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고 정책을 수정해야 했던 지난해 기획재정부의 ‘대주주 논란’이 재발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가상자산도 주식처럼 과세해 달라”

26일 오전 서울의 한 가상화폐 거래소의 시세 전광판에 실시간 비트코인 가격이 표시된 모습. 연합뉴스

26일 오전 서울의 한 가상화폐 거래소의 시세 전광판에 실시간 비트코인 가격이 표시된 모습. 연합뉴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암호화폐 세금의 공제 금액을 증액해주시고 과세 적용 기간을 더 미뤄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은 27일 오후 4시 현재 약 4만8000명의 동의를 받았다. 주식과 가상자산에 차이를 두지 말고 같은 조세 혜택을 부여하라는 게 청원의 핵심이다.
 
청원인은 “아직 암호화폐 관련 제도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시점에 과세부터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투자자 보호장치부터 마련한 뒤 세금을 징수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암호화폐 관련된 과세는 (소득) 5000만원 이상부터 과세하고, 주식과 같이 2023년부터 적용되는 걸로 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내년 1월 1일부터 가상자산을 팔아 얻은 ‘기타소득’이 연 250만원을 넘으면 20%(지방세 포함 시 22%)의 세율로 분리 과세하기로 했다. 예컨대 2022년 한해 비트코인 등을 팔아 350만원을 벌었다면 2023년 5월 종합소득세 신고 시점부터 250만원의 공제액을 뺀 100만원의 20%를 소득세로 내야 한다.
 
1년 동안 여러 가상자산에서 낸 소득과 손실을 합산해 세금을 매기는 손익 통산을 적용한다. 그러나 연간 손실액을 다음 해의 손익과 합산해 계산하는 이월공제는 적용하지 않는다. 가상자산 세금과는 달리 주식의 경우 2023년부터 기본 공제액 5000만원이 넘는 소득에만 세금을 매긴다. 여기에 손익 통산과 이월공제도 5년간 적용한다.
 

홍남기 사의 부른 대주주 논란 데자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가상자산을 주식과 비슷한 투자 자산으로 바라보는 투자자는 이를 과세 차별로 받아들이고 있다. 게다가 최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까지 정부에서 다 보호할 수는 없다”며 “(가상자산은) 인정할 수 없는 화폐”라고 말하며 ‘코인 민심’에 불이 붙었다. 정부가 가상자산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세금만 떼어가려 한다는 반감이 커지며 은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국민청원 참여 인원은 이날 현재 13만8000명을 돌파했다.
 
기재부는 일단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는 기존 방침을 유지할 계획이다. 가상자산 등 기타소득에 적용하는 250만원의 기본 공제액은 주식 외에 다른 자산과 형평을 맞춘 것이므로 가상자산의 공제액을 높이는 것은 특혜라는 게 정부 입장이다. 또 주식 투기성이 강한 가상자산 투자와 기업 주식 투자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보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가상자산을 주식이나 채권처럼 민간의 자금을 생산적으로 모을 수 있는 자산으로 어렵다는 게 금융위의 의견”이라며 “과세는 그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가상자산의 가격 등락 폭이 너무 크고 심해서 리스크가 큰 자산”이라며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결국 투자자의 판단이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와 달리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에선 가상자산 과세 관련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책위원회 차원에서 별도 특위 설치를 검토하고 있고, 국민의힘은 가상자산 제도를 연구할 태스크포스(TF) 팀을 출범하기로 했다. 양향자 민주당 의원은 26일 “가상화폐 과세 유예가 필요하다”며 “준비 없이 과세부터 하겠다고 하면 시장의 혼란만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과 여론이 가상자산 과세 정책을 다시 논의해야 하는 쪽으로 기울면 정부는 지난해 대주주 논란 당시처럼 기존의 정책 방향을 틀어야 할 수도 있다. 기재부는 지난해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의 기준을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춰 과세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결국 여론을 등에 업은 정치권에 밀려 현행 유지를 선택했다. 당시 정치권의 요구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던 홍 부총리는 현상 유지 결론이 나자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주식 등 금융투자소득의 과세 공제액이 발표 당시 2000만원에서 최종 5000만원으로 올라간 데도 개인 투자자의 여론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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