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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생계 걱정에 중증 우울감…20대의 ‘코로나 블루’

중앙일보 2021.04.27 13:50
지난해 11월 직장에서 해고된 뒤 강제적 ‘집콕’ 생활에 들어간 A(25)씨는 무력감과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각종 지출을 줄이기 위해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끼니는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때우는 게 몇달 째 이어지면서다. 급격히 늘어난 신용카드 빚은 연체상태다. A씨는 “일하고 있는 동생에게 경제적으로 의존만 하고, 언니로서 버팀목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많이 미안하다”며 “일을 못 하니 소득이 없고, 이에 따른 스트레스로 위축돼 우울감이 지속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청년 노동자를 지원하는 ‘유니온센터’가 소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청년들의 정신적·경제적 피해 사례다. A씨처럼 적지 않은 청년들이 구직난과 생계 걱정으로 우울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의 기간별 우울증 척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대의 기간별 우울증 척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7일 유니온센터가 구직 중인 29세 이하 청년 59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우울감을 우울척도검사(CES-D)로 점수화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평균은 23.2점이었다. 전문가 상담 권고기준(16점)을 웃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CES-D는 16점 이상이면 경증의 우울증상, 21점 이상이면 중등도의 우울증상, 25점 이상이면 중증의 우울증상으로 판단한다.
 
이들의 우울감은 구직 가능성, 경제적 여건 등과 높은 상관관계를 나타냈다. 이들에게 우울함을 주는 스트레스 요인(복수 응답)으로 구직(84.6%)·생계(68.8%) 등이 꼽혔는데, 구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CES-D 수치가 높았다. 6개월 이하는 21.7, 6개월 이상 1년 미만은 23.7, 그 이상의 기간은 25.9였다.
 
학력별로는 상대적으로 취업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대학원 재학 이상과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출신의 지수는 각각 20.3점과 22.6점으로 낮은 편이었고, 취업이 상대적으로 힘든 2·3년제 전문대(25.0)와 경인지역 4년제 대학(24.6)이 높게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유니온센터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적으로 삶을 책임져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 “코로나 실직과 고립 후 우울감에 자살을 한 지인이 있다. 이러한 충격 때문에 정신적으로 타격이 더 크다”, “안정적인 공무원을 했으면 지금 이런 불안을 겪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등의 의견을 밝혔다.
20대 구직자의 스트레스 요인.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대 구직자의 스트레스 요인.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유니온센터는 ‘코로나19와 청년노동 실태’ 보고서에서 “과거 진행한 유사한 연구 결과와 비교할 때, 코로나19로 인한 우울함이 청년 구직자를 완전히 잠식하고 있다”며 “소속감을 가질 준거집단이 없는 상태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사회적 고립과 단절이 심화됐다”고 진단했다.  
 
불안감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불면증이나 강박증 등을 겪다 병원을 찾는 젊은이도 늘고 있다. 취업준비생 김모(28)씨는 지난해 말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 의원을 찾았다. 그는 대기업에 자리잡은 대학 동기들과 비교하면, 1년 넘게 취업의 문만 두드리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고 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유 없이 불안해지는 경우가 잦아졌다.  
 
김씨는 “평소 활발한 성격인데, 코로나19로 대외활동을 못 하게 되자 어느 순간부터 방구석에서 폐인처럼 컴퓨터만 하게 됐다”며 “부모님의 권고로 병원에 가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꾸준히 약을 먹으며 상담을 받았더니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기분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101만6727명) 가운데 20대(17만987명)의 비중은 16.8%로 전체 연령대에서 가장 많았다. 기분장애는 감정 조절이 어려워 비정상적인 기분이 지속되는 질환으로 우울증이 대표적이다.
60대보다 많아진 20대의 ‘기분장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60대보다 많아진 20대의 ‘기분장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전년과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5.6% 늘어났는데, 20대 환자는 20.9%나 급증하면서 처음으로 60대(16만4401명, 16.2%) 환자 수를 넘어섰다. 20대 우울증 환자는 매년 늘고 있는 추세지만, 지난해에는 유독 20대의 증가세가 가팔랐다. 취업 등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노파심 때문에 진료를 꺼리는 점을 감안하면 기분장애를 앓고 있는 청년층은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의료계에서는 젊은 층이 체감하는 코로나19발 정신적 고통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20대는 경제적 자립을 이룰 시기인데 취업난과 시험 실패 등으로 인생의 첫 ‘쓴맛’을 겪으며 다른 연령대보다 더 큰 좌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여기에 주식·부동산 등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과 각종 사회·경제적 불안 요인도 청년층의 불안감을 더욱 부추긴 것으로 풀이된다.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을 지낸 백종우 경희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20대 우울증 환자 급증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다른 연령대와 달리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취업난·실직 위험·경제적 어려움 등이 커진 것에 20대가 받는 정신적인 충격이 크다”라고 짚었다. 백종우 교수는 이어 “한창 활동할 나이에 사회적 거리두기 등에 따라 주변 사람들과 교류가 적어지고, 여가·취미활동 등으로 스트레스를 풀 기회가 적어진 것도 한 원인”이라며 “20대가 타인과 연결감을 느끼고, 자신은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경험을 갖도록 맞춤형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우울증은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다. 초기 완쾌율이 높아 우울증이 의심되면 적극적인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하지만 많은 환자가 인식 부족으로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방치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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