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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다음은 ‘파친코’의 日이민가정...강인한 윤여정 또 통할까

중앙일보 2021.04.27 13:46
25일(현지시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 [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 [연합뉴스]

배우 윤여정(74)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히로인’으로 떠오르면서 차기작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 연기로 한국 배우 최초 연기상(여우조연상)을 받은 그가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 “사악한 상속녀부터 늙어가는 창녀까지 사회에 순응하지 않는 캐릭터를 수십년간 연기하면서 보수적인 한국 사회의 규범에 도전해왔다”(AFP 통신) 등 외신도 그의 범상치 않은 필모그래피에 주목하고 있다.  
 

애플TV드라마서 이민호·정은채와 호흡
1910년 부산부터 89년 도쿄까지
4세대 걸친 디아스포라
재미교포 이민진 소설 원작

일찌감치 애플TV 플러스 8부작 드라마 ‘파친코’ 출연을 확정 지은 윤여정은 바쁜 오스카 레이스 중에도 촬영을 병행했다. 지난해 11월 한국 촬영을 시작으로 지난달 캐나다 로케이션까지 마쳤다. 촬영을 마치고 귀국한 공항에서 아카데미 후보 발표 소식을 접한 그는 당시 “벌써 수상한 기분”이라며 자가 격리를 해야 하니 “혼자 술을 마셔야겠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동안 넷플릭스 드라마 ‘센스8’(2015)의 카메오로 출연하거나 마거릿 조와 함께 ‘하이랜드’(2017) 파일럿을 촬영한 적은 있지만 본격적인 미국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이다. 
 
윤여정은 25일(현지시간)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LA총사영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영어를 못해서 해외에서 러브콜이 들어올 일은 없다”고 말했지만 그는 70대 중반에도 현재진행형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SBS 웹예능 ‘문명특급’에 출연한 그는 독립영화 ‘미나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내가 여기서 정착해서 TV에서 오는 역할 하고 영화에서 오는 역할 하면 지금 내 나이에 대한민국 어떤 감독도 (새로운) 연출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게 매너리즘”이라며 나를 모르는 새로운 곳에 가서는 “연기를 잘해서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센스8’ ‘하이랜드’ 잇는 새로운 도전

2017년 출간된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중앙포토]

2017년 출간된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중앙포토]

‘파친코’에서 윤여정이 맡은 선자는 1910년 부산 영도에서 시작해 1989년 일본 도쿄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쳐 이어지는 한국인 이민 가족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주인공 역할이다. 장애를 가진 훈이와 가난을 피해 결혼한 양진 사이에서 태어난 선자는 선교사 남편 이삭을 따라 일본으로 이주한다.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의 아들 노아와 모자수, 미국 유학을 다녀온 손자 솔로몬의 이야기가 방대하게 펼쳐진다. 일제강점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 해방 후 분단국가가 된 한국 등 격변하는 국제사는 이들의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선자는 조용하지만 강인한 인물이다. 부유한 첫사랑 한수의 제안을 뿌리치고 스스로 고생길을 택하지만 모든 업보를 묵묵히 견뎌낸다. 남편 이삭이 일본 경찰에게 끌려가 고초를 당하고 아주버님 요셉이 병들어 누웠을 때도 그는 형님 경희와 함께 살 방법을 찾아 나선다. 시장에서 사탕 장사를 하고 식당에서 김치를 담그고 농장에서 고구마를 캐며 가족의 기둥이 되는 식이다. 1980년대 미국에서 이혼 후 슈퍼마켓 캐셔로 일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먹고 살기 위해 절박하게 연기했다”는 윤여정의 삶과도 겹쳐지는 부분이다. 그는 아카데미 수상 소감에서도 “아이들이 나를 일터로 떠밀었다”며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라며 두 아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아이들이 나를 일터로” 선자와 닮은꼴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의 이민호와 정은채. ‘파친코’에서도 호흡을 맞추게 됐다. [사진 SBS]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의 이민호와 정은채. ‘파친코’에서도 호흡을 맞추게 됐다. [사진 SBS]

젊은 선자는 1995년생인 김민하가 맡았다. KBS2 드라마 ‘학교 2017’과 영화 ‘콜’(2020) 등에 출연한 신인 배우다. 이외에도 SBS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2020)에서 호흡을 맞춘 이민호와 정은채가 각각 한수 역과 경희 역을 맡는 등 새로운 캐스팅이 공개될 때마다 화제를 모았다. 한국과 일본, 캐나다를 오가며 촬영한 작품인 만큼 안나 사와이, 소지 아라이, 가호 미나미 등 일본 배우들도 출연한다. ‘더 킬링’(2011) ‘더 테러’(2018) 등에 참여한 수 휴가 메인 작가와 제작 총괄을 맡고, 연출은 한국계 미국인인 코고나다와 저스틴 전이 맡았다. 공개 시기는 미정이다.  
 
올해 아카데미를 휩쓴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와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 등 3관왕에 오른 중국계 미국인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처럼 ‘파친코’ 역시 디아스포라적인 특징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정이삭 감독이 겪은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미나리’의 극본을 쓴 것처럼, ‘파친코’는 1968년 한국에서 태어나 7살 때 미국에 이민을 떠난 이민진 작가가 2017년 출간한 소설이 원작이다. 예일대 역사학과와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한 그가 건강 문제로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전향 후 쓴 작품이다.  
 
소설 구상은 작가가 1989년 대학 강의에서 처음 들은 ‘자이니치’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이 작가는 단행본에 실린 감사의 말을 통해 식민지시대에 이민 온 조선계 일본인을 일컫는 ‘자이니치’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3대, 4대, 5대째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에게도 통용됐고, 인종 차별로 목숨을 끊었다는 한 중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후 2002년 단편소설 ‘조국’을 펴냈고, 2007년 일본으로 발령이 난 남편을 따라 4년간 현지에서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파친코’를 집필했다. 장장 30여년에 걸쳐 완성된 소설은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BBC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큰 호평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2018년 3월 번역 출간 후 3년 동안 17쇄를 찍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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