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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지킨 외딴섬서 쫓겨난다…伊 '로빈슨 크루소'의 눈물

중앙일보 2021.04.27 13:35
부델리섬을 1989년부터 관리해온 마우로 모란디(81). [모란디 페이스북 캡처]

부델리섬을 1989년부터 관리해온 마우로 모란디(81). [모란디 페이스북 캡처]

#1989년 작은 보트로 남태평양을 항해하던 탐험가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선박 고장으로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중 하나로 꼽히는 이탈리아 부델리섬에 발을 들였다. 때마침 이곳에 있던 섬 관리인이 곧 은퇴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탐험가는 항해를 포기하고 아예 이 섬에 눌러앉았다.
 
이탈리아의 '로빈슨 크루소'란 별명을 가진 부델리섬 관리인 마우로 모란디(81)가 섬 정착 30여년 만에 이 섬을 떠나게 됐다고 2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그는 이 섬의 유일한 주민으로, 생태와 환경을 보호하는 일을 도맡아왔다.
 
면적 1.6㎢가량인 부델리섬은 사르데냐섬 북단 해안가에 있다. 넓게 펼쳐진 핑크빛 백사장으로 유명한 천혜의 명소다. 64년 이탈리아 영화의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만든 '붉은 사막'의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모란디는 지난 32년간 이 섬의 해변과 길을 청소하고, 여행자들에게 섬에 서식하는 새와 나무 등 생태환경을 알려주던 지킴이였다.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중 하나로 꼽히는 이탈리아 부델리섬. [모란디 페이스북 캡처]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중 하나로 꼽히는 이탈리아 부델리섬. [모란디 페이스북 캡처]

부델리섬의 해안 풍경. [모란디 페이스북 캡처]

부델리섬의 해안 풍경. [모란디 페이스북 캡처]

 
그가 30여년간 가꿔왔던 섬을 떠나게 된 건 라 마달레나 해상 국립공원 측의 끈질긴 요구 때문이었다. 이 섬은 2013년 원소유주인 밀라노의 부동산 회사가 파산하며 경매 매물로 나왔다. 뉴질랜드 백만장자가 사들였지만, 이탈리아 정부가 선매권을 주장하며 법정다툼이 벌어졌다. 결국 지난 2016년 법원 판결로 라 마달레나 해상국립공원 측이 인수하게 됐다. 이들은 이 섬을 생태·환경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모란디가 섬에서 기거하던 오두막의 구조변경을 요구하고, 응하지 않으면 섬에서 나가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모란디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책을 읽는 사진. [모란디 페이스북 캡처]

모란디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책을 읽는 사진. [모란디 페이스북 캡처]

모란디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개한 부델리섬 풍경. [모란디 페이스북 캡처]

모란디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개한 부델리섬 풍경. [모란디 페이스북 캡처]

 
모란디는 이미 지쳐있었다. 그는 "32년이나 살았는데 슬프다"며 "그들을 상대로 싸우기를 포기했다"고 밝혔다. 인근의 큰 섬에 있는 소형 아파트로 거처를 옮겨 여생을 보낼 계획이다.
 
모란디가 섬을 떠나게 되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탈리아에선 온라인 청원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가 부델리섬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가꾸는데 일등 공신이었던 만큼 섬에 계속 머무를 수 있도록 돕자는 것. 네티즌들은 "지상낙원의 파괴가 이제 곧 시작될 것" "모란디가 없는 부델리섬을 상상할 수 없다. 저항해야 한다"며 모란디의 이주에 반발하고 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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