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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여성 얼굴에 '칙~'···새벽 홍대 비명소리 울렸다

중앙일보 2021.04.27 05:00

"눈이 너무 아파요. 어떡해요."

지난 25일 새벽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의 거리. 갑자기 한 여성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길가던 시민들의 얼굴을 향해 누군가 호신용 스프레이를 뿌린 것이다. 근처 CCTV에는 고통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찍혔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급하게 물로 얼굴을 씻어냈다고 한다.
 
스프레이를 뿌린 20대 남성은 현장에서 피해자 3명 중 한 명인 남성에게 제압됐다. 그는 특수폭행 혐의로 입건돼 마포경찰서에서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가해 남성과 피해자들은 일면식 없는 사이이며 피의자는 만취 상태였다. '묻지마 범죄'로 추정되는 상황이나 구체적인 범행 동기는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경찰서. 연합뉴스

서울 마포경찰서. 연합뉴스

190cm 남성, '눈 마주쳤다'고 70대 폭행 

지난 22일에는 20대 남성이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앞에서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70대 남성을 폭행해 중상을 입혔다. 피해자는 안구 주변이 함몰되고 팔 여러 곳에 상처를 입은채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손자들을 돌보기 위해 아들 집에 들렀다가 봉변을 당했다고 한다. 키가 190㎝로 건장한 체격의 가해 남성은 피해자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피해자 가족 측은 지난 23일 마포경찰서에 이 남성을 살인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묻지마 범죄’에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정모(28·여)씨는 “뉴스를 접하고 나서 주위를 더 살피게 됐다. 밤낮 상관없이 길을 걷다가 갑자기 공격당할까 무서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세 딸을 키우고 있는 임모(56)씨는 “딸 가진 부모로서 묻지마 범죄가 벌어질 때마다 더욱 걱정되고 불안하다”고 했다.
 

매년 50건 이상 발생 ‘묻지마 범죄’

폭행 일러스트. 중앙포토

폭행 일러스트. 중앙포토

이같은 묻지마 범죄는 매년 50건 이상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18년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3~2017년 사이 입건된 사람은 매년 50~57명이었다. 지난 1월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묻지마 범죄에 대한 처벌 기준이 강화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무서워 말도 못하고 피하는 일이 언제까지 반복돼야 하나요? 왜 강력 범죄에 대한 형이 이렇게 가볍습니까?”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이 묻지마 범죄를 가중 처벌하는 내용의 법안(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현행법에는 묻지마 범죄 유형을 가중처벌하는 별도 조항은 없다. 
 
김범한 변호사(법무법인YK)는 "상습범이나 재범에 대한 가중처벌은 있지만, 묻지마 범죄 관련 가중 처벌은 없다. 일반 형법을 적용한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과실이나 책임이 없는 피해자가 받는 심적 고통은 크다. 묻지마 범죄 범행 동기에 있어서 참작 사유가 없기 때문에 법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죄질에 따라 양형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 전체가 병을 겪고 있는 것”

경찰 로고. 뉴스1

경찰 로고. 뉴스1

묻지마 범죄는 딱히 형사정책적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묻지마 범죄는 가해자와 같은 시간과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불특정 다수가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예방조치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정 사안이나 집단에 대한 잘못된 오해로 내면적인 증오에서 비롯된 경우들이 많고, 여성이나 노인 등 취약자를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특성이 있다. 제압이 쉬워 범행을 저지르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형벌 강화의 효과는 미미하다. 사회적 증오의 수준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형사 정책 차원보다도 사회 복지 분야의 정책과 정신 건강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묻지마 범죄는 실업 상태가 장기화하거나 집콕족이 늘고 사회적 관계망이 약해지면서 생긴 문제"라며 "사회 전체가 병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형사 사법기관의 처벌 강화로만 문제를 풀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회 규범이 약화된 상태에서 불공정에 대한 불만이 쌓인 것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일상생활에서 공정성을 확보하는 등 입체적인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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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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