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 오늘의 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중앙일보 2021.04.27 00:26 종합 30면 지면보기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법원이 각하 결정을 내린 것을 보도한 신문에 실린 소녀상 사진이 가슴을 에게 합니다. 비를 맞은 소녀상의 모습이 마치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번 판결은 올 1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번째 소송 1심 판결과는 엇갈린 결론입니다. 피해자들의 고통만 가중시킨 결과가 됐습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너무 너무 황당하다. 국제사법재판소에 꼭 가겠다”며 끝내 눈물을 보였습니다. 원고 20명 중 살아 있는 분은 이제 4명입니다. 현 정권이 2015년 박근혜·아베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부정하고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해버린 업보라고 할 것입니다.
 

오염수 해양 방류는 일본의 오만
『만엽집』은 향가와 같은 표기
대륙과 해양 선택이 한민족 운명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도 한일 관계의 새로운 걸림돌입니다. 이의 원인은 이웃 나라에 설명과 이해도 구하지 않은 오만함입니다. 일본 언론은 “지난 1월 후쿠시마 앞바다의 수심 37m 어장에서 잡힌 우럭에 방사성 물질인 세슘이 검출돼 출하가 금지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해 일본 정부의 여론조사에서도 일본인의 70%가 “오염수 방출은 신체에 위험하고 유해하다”고 우려했습니다. 방출 반대 시위가 이어지는 등 자국민도 납득하지 못하는 결정을 어떻게 강행할 수 있습니까? 코로나 창궐 속에 열겠다는 도쿄 올림픽은 과연 아무 문제가 없을까요? 미국과 IAEA, IOC가 일본 편에 서는 것도 우리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이웃으로 살아오면서 수천 년 동안 애증(愛憎)이 엇갈리는 사이였습니다. 고대 문자 해독가인 김영회씨는 일본인의 정체성으로 일컬어지는 『만엽집(萬葉集)』이 신라 향가와 똑같은 방법으로 쓰여졌다는 논증을 최근 저서 『만엽집은 향가였다』에서 펴 놀라움을 안겨줍니다. 향가의 한자들은 당시의 소리 표기가 아니라 뜻글자로 기능하며, 문자의 배열은 한국어의 어순을 따르고 있다고 김씨는 주장합니다. 향가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기원(祈願)이 담긴 공연 대본이라는 해석입니다.
 
서기 660년 8월, 백제 수도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 함락되자 이듬해 1월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과 합세해 백제 수복 전쟁을 준비하던 제명천황(齊明天皇)이 지은 노래가 만엽집 8번가입니다. 이 노래의 일본식 해석은 이러합니다.
 
“니키타츠(熟田津)서 배를 출발시키려 달 기다리니 조수도 밀려왔네. 지금 저어 나갑시다.”
 
뜻으로 푼 김씨의 향가 해독법에 따르면 이렇게 됩니다.
 
“그대가 곡식이 익은 밭 나루터에서 저승배에 오른다.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데 밀물이 나란히 소로 밀려 들어온다. 이제 그대가 편안히 저승에 가시기를 빌리라.”
 
죽음을 각오하고 전선에 나서는 심경과 전장에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추모의 정이 엿보입니다. 그러나 663년, 왜와 백제 부흥군은 백촌강 하구에서 대패합니다. 본토 공격을 두려워한 왜는 667년에 수도 나라(奈良)를 내륙 근강(近江)으로 옮기고 국호도 왜국(倭國)에서 일본(日本)으로 바꾸었습니다.
 
만엽집 제1권의 마지막 작품인 84번가에 ‘고야(高野)’라는 이름이 나타납니다. 이 노래에 대한 일본식 해독은 이러합니다.
 
“가을이 되면 지금 보시는 듯이 아내 그리는 사슴 우는 산이네. 타카노(高野) 들판의 위는.”
 
김씨의 향가식 해독은 이렇습니다.
 
“가을이 가니 지금에야 나타남이여? 그대를 그리워했다. 사슴이 장차 울게 될 산 고야원(高野原)의 집에 그대를 모시리.”
 
이 노래에 나오는 고야는 백제 무령왕의 후손인 고야신립(高野新笠)입니다. 수필가 오카베 이츠코(岡部伊都子)는 저서 『일본의 경(京)』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도래 문화가 화려하게 꽃핀 헤이안(平安) 시대는 백제 출신 어머니를 둔 환무천황(桓武天皇) 때부터 비롯되었다···고야는 제49대 광인천황(光仁天皇)의 황후였다.”
 
일본의 만엽집이 신라 향가와 똑같은 방식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직접 해독해 입증했으니 여기에 대한 일본 학계의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급변하는 세계정세는 한일관계의 재정립을 요구합니다. 세계 2강으로 굴기하는 중국과 러시아라는 대륙 세력 그리고 세계 최강 미국과 일본으로 연결되는 해양 세력 사이에서 우리가 있어야 할 위치가 한민족의 미래를 결정짓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지금은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쿼드 체제에서 코로나19 백신 확보가 화급한 시점입니다. 백신을 자체 개발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지요.
 
유자효 시인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