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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하다 목재값도 치솟는다 "대공황 전 '광란의 20년대' 흡사"

중앙일보 2021.04.26 16:27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광란의 20년대(Roaring ‘20’s)'가 다시 살아날 조짐이다. 주식과 암호화폐 뿐만 아니라 주택과 심지어 목재까지 각종 자산의 가격이 무서운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거품 붕괴' 우려에도 투자금은 몰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금처럼 다양한 자산 가격의 동반 상승이 100년 전 ‘광란의 20년대’(Roaring ‘20’s)와 비슷하다"고 할 정도다. 광란의 20년대는 1929년 뉴욕 증시 대폭락으로 시작된 세계 대공황 발생 직전의 상황이다. WSJ은 "IT 기술주가 폭등하는 건 20년여 전 ‘닷컴 버블’이 떠올려진다"고 덧붙였다.
 

실물 자산부터 가상 자산까지 동시 급등

시장에 흘러넘치는 유동성이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심지어 목재값까지고공행진하며 최근 역대 최고 가격대에 머물고 있다. 연초 대비 목재 가격은 57.2%나 상승했다. WSJ은 목재값 상승의 원인을 미국에서 불고 있는 민간 주택 건설 붐에서 찾는다. 
 
부동산 시장도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의 주택 매매 건수는 200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06년은 세계금융위기를 초래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바로 직전이다. 부동산 시장의 과열은 미국의 현상만은 아니다. 영국과 캐나다, 스웨덴, 뉴질랜드 등 세계 곳곳이 주택 가격 급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도 부동산 가격의 급등으로 인해 정권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 
코스피가 3220.70을 기록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로 마감된 지난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이날 코스피 종가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코스피가 3220.70을 기록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로 마감된 지난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이날 코스피 종가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주식 시장은 신기록 행진 중이다. 뉴욕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와 다우존스 지수는 올해 들어서만 신고점을 각각 23번, 21번이나 갈아치웠다. 프랑스와 호주 등 각국의 대표 주가지수도 사상 최고 기록을 새롭게 쓰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7일 3000시대를 연 코스피 지수는 이달 20일 3220.70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스닥 지수도 지난 12일 20년 7개월 만에 1000선을 돌파했다.
 
IT주의 폭등세도 '닷컴 버블'의 트라우마를 떠올린다. 팩트셋 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 주가는 주가수익비율(PER)의 1130배에 거래되고 있다. 엔비디아도 86배에 거래되고 있다.  
 
암호화폐의 상승세도 무섭다. ‘맏형’ 비트코인은 이달 중순 개당 6만 5000달러(약 7233만원)까지 육박했다. 25일 기준으로 보면 올해 초 대비 66.5%나 높다. 2013년 미국 소프트웨어 개발자 2명이 장난삼아 만든 도지코인은 지난 16일 개당 45센트까지 오르며 연초(0.47센트)와 비교해 9500% 넘게 폭등했다. 
과열되는 자산 가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과열되는 자산 가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美 재정·통화정책이 거품 투자 부추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자산 시장 과열에 따른 거품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문제는 거품의 양상이 과거와 다르다는 데 있다. 제러미 그랜섬 GMO 공동창업자는 “과거의 거품은 경제 여건이 완벽해 보일 때 나타났지만 이번에는 경제가 상당한 타격을 받은 시점부터 자산 상승세가 시작됐다"며 “과거에 겪었던 거품 현상과 아주 다르다”고 평가했다. 그랜섬은 1980년대 일본의 자산 거품 붕괴와 2000년 닷컴 거품 붕괴를 예측한 인물로 유명하다.
 
이런 변화를 야기한 바탕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 정책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과거 Fed는 금리를 올려 시장의 과열을 막는 데 앞장섰지만 Fed는 자산 가격 상승을 방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WSJ은 “Fed는 ‘저금리가 자산 거품을 키운다’는 개념 자체를 부인한다”고 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미국의 물가 상황이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2023년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할 방침이다. 
 
거품을 부추기는 건 통화정책만이 아니다. 경기 부양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는 정부도 가세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1조9000달러의 ‘미국 구제계획’과 2조3000억 달러의 ‘미국 일자리 계획’ 등 천문학적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구사하고 있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의 바이런 빈 부회장은 “이러한 재정·통화 정책으로 인해 사람들이 거품 붕괴 위험에도 투자에 면역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자산 가격이 상당 기간 더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투자에 나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커지는 거품붕괴 공포

지난 22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모습. [AP=연합뉴스]

지난 22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모습. [AP=연합뉴스]

시장도 다가오는 위험을 느끼는 분위기다. 최근 온라인 증권거래 사이트 ‘이(E)*트레이드’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 투자자의 70%는 “시장이 완전한 거품 상태이거나 상당한 거품이 낀 수준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WSJ은 “역사적으로 거품 낀 시장은 대개 비관론자의 생각 이상으로 가격이 오른 뒤 무너졌다”며 “상당수의 투자자가 자산 가격 하락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랜섬은 “(자산 시장에 대한) 확신을 잃는 상황이 오면, 모든 부문이 동시에 충격을 받을 것”이라며 “특히 실물 부분의 타격이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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