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배영은의 야·생·화] 오승환은 전설이 됐지만, 아직 전설이 아니다

중앙일보 2021.04.26 16:24
2012년 삼성의 옛 홈구장인 대구 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KBO리그 통산 최다 세이브 기록을 달성한 뒤 기뻐하고 있는 오승환. 중앙 포토

2012년 삼성의 옛 홈구장인 대구 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KBO리그 통산 최다 세이브 기록을 달성한 뒤 기뻐하고 있는 오승환. 중앙 포토

 
[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대구 시민운동장 야구장.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옛 홈구장이다. '삼성 왕조'가 시작되고 꽃을 피운 그곳에서 오승환(39·삼성)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 시절 삼성이 승리하는 데는 그리 많은 점수가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아슬아슬한 리드라도, 삼성 불펜에 등 번호 21번 투수가 나타나면 경기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삼성의 마지막 수비를 앞두고 그가 마운드에 오를 채비를 하면, 대구구장엔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수업이 다 끝나고 종례를 할 때 온 학교에 울려 퍼지던 바로 그 종소리. '이제 오승환이 나오고, 경기가 곧 끝날 테니, 집에 갈 준비를 해라'는 메시지였다.  
 
그 음악은 홈 관중에게 전율을 안기고, 상대 팀 선수들의 전의를 떨어뜨렸다. 웅장한 박수 소리와 함께 그가 마운드에 오르면, 삼성 팬들은 입을 모아 노래했다. '오승환 세이브 어스'라고.  
 
오승환은 한국 프로야구가 낳은 역대 최고 마무리 투수다. 이 명제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 시즌 최다(47) 세이브, 최다 연속경기(28) 세이브, 통산 최다 세이브(300) 기록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성적뿐 아니라 마운드에서의 실제 위압감도 역대 최강이었다.  
 
2005년 프로에 데뷔한 뒤 이듬해 곧바로 삼성 소방수 자리를 꿰찼다. 2006~08년, 2011~12년 등 총 다섯 차례 구원왕에 올랐다. 9시즌만 뛰고 해외에 진출했는데도, 통산 277세이브를 쌓아 올려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한 시즌 평균 31세이브에 달하는 가공할 숫자다.  
 
그 후 6년(2014~19년)간 일본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에서도 정상의 소방수로 활약했다. 한국보다 한 수 위인 두 리그도 '클로저' 오승환의 능력을 인정했다. 거액의 몸값과 톱 클래스 대우로 그를 맞이했다.  
 
KBO리그 역대 최초로 통산 300세이브를 달성한 뒤 포수 강민호(왼쪽)의 축하 인사를 받고 있는 오승환 [연합뉴스]

KBO리그 역대 최초로 통산 300세이브를 달성한 뒤 포수 강민호(왼쪽)의 축하 인사를 받고 있는 오승환 [연합뉴스]

 
마무리 투수는 어려운 보직이다. 그들 뒤에는 '다음 투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 그가 막지 못하면 팀이 진다. 그래서 불펜 투수 중 가장 외롭고 압박감이 크다. 시속 150㎞ 강속구를 던지는 수많은 투수가 소방수 임무를 받았지만,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두 손을 들었다. 오승환은 그 자리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냈다. 승리를 '만드는' 투수만큼이나 '지키는' 투수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걸 확실하게 입증했다.  
 
무엇보다 오승환은 마무리 투수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인 존재다. KBO리그는 2003년까지 세이브가 아닌 '세이브 포인트(세이브+구원승)'로 구원왕을 시상했다. 세이브 상황에만 등판하는 전문 마무리 투수가 많지 않았던 탓이다. 배짱 좋고 빠른 공을 던지는 신인 투수가 입단하면, 불펜이 아닌 선발로 키우는 게 당연한 공식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승환의 등장 이후 많은 게 달라졌다. 2005년 신인왕과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를 석권한 그는 2년 차부터 본격적으로 소방수 역할을 시작했다. 뒷문을 철벽같이 걸어 잠근 삼성은 오승환과 함께한 9년 중 6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5번 우승했다. '선발 투수가 최고'라는 해묵은 인식에 오승환이 균열을 냈다.
 
오승환의 별명은 '돌부처'다. 마운드에서 감정 변화를 드러내지 않는 투수로 유명하다. 그가 슬쩍 미소를 짓는 장면이 포착되면, 야구팬들은 "오승환이 박장대소했다"며 즐거워하곤 했다. 그런 그가 25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이 끝난 뒤 슬쩍 웃음을 보였다. 삼성의 3-2 승리를 지켜내고 KBO리그 통산 300번째 세이브를 올린 바로 그 순간이다.  
 
누구도 갖지 못한 대기록이 뿌듯해서 웃었을까. 그렇지 않다. 오승환은 경기 후 "최근 등판했다가 실점한 경기가 많았다. 오랜만에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친 게 다행이라서 웃음이 나왔다"고 말했다. '살아있는 전설'이 아닌, '현역 투수' 오승환으로서 그렇게 대답했다.
 
오승환에게 통산 300세이브는 화려한 상장이다. 자랑스럽지만, 이제 고개를 뒤로 돌려 바라봐야 하는 과거다. 반면 앞으로 찾아올 301번째, 302번째, 그리고 그 후의 세이브는 난이도가 높아진 숙제다. 마흔이 다 된 베테랑 투수가 또다시 지켜야 할 미래다. 
 
1982년생 동기들이 여럿 은퇴한 올해, 오승환은 여전히 삼성의 마무리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다. 또 한번 세이브를 올리고, 포수와 하이파이브를 한다. 그는 전설이 됐지만, 그래서 아직 전설이 아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저 단 하나뿐인 '오승환'이다. 
 
배영은 야구팀장 bae.youngeun@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