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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안의 시선]오세훈의 '광화문 광장' 딜레마

중앙일보 2021.04.26 00:28 종합 28면 지면보기
오세훈 시장 취임식이 열린 지난 22일 오후 광화문 광장 공사장 가림막에 기존 광화문 광장이 진짜 광장이 된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오세훈 시장 취임식이 열린 지난 22일 오후 광화문 광장 공사장 가림막에 기존 광화문 광장이 진짜 광장이 된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모두가 의아하게 생각한 광화문 광장 공사의 실체가 선거 이후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시가 멀쩡한 광장을 뜯겠다고 선언했을 때 다들 서정협 시장 대행을 맹비난했다. 새 광장이 숙원이던 박원순 전 시장조차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이던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전방위의 반대로 감히 땅을 파지 못한 사업이다. 박 전 시장이 생전에 지시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더 괴이했다. 서 대행은 지난 23일 이임했다. 보름 전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이 당선되면서 예정된 일이다. 그런데도 광장의 공사는 계속됐다. 오 시장 당선 다음 날에도, 취임식을 한 지난 22일에도 포크레인들은 광장을 활보했다.  
 

시장 돼도 '박원순 광장' 공사중
홈피엔 '오세훈 광장' 폄훼 문구
돈 쓰는 '파괴 네거티브' 끝내야

이 공사가 서 대행 작품이 아니라고 단언한 사람은 오 시장이다. 지난달 31일 관훈클럽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그는 “한 건축가의 노욕”이라고 말했다. 승효상 전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을 겨냥한 발언이다. 그럴 만한 정황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남고 동창인 승 전 위원장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문 대통령과 박 전 시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함께 펴낸 책『그 남자 문재인』에 문 대통령이 고교 때부터 남달랐다는 내용을 썼다. 이 책에 참여한 사람 중엔 LH 사태로 물러난 변창흠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비롯해 현 정부에서 중책을 맡은 인물이 여럿이다. 승 전 위원장은 박 전 시장 취임 후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로 발탁됐다. 광화문광장 국제 설계 공모의 심사위원장도 그였다.
 
오 시장 발언 직후 "지금의 공사는 나와 무관하다"고 반박했던 승 전 위원장은 선거 뒤 경향신문 기고문에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새 광화문 광장의 소망이, 청와대가 광화문 시대의 이행을 중지하겠다며 공약 포기를 발표하면서 이뤄지지 못했고, 박 전 시장의 돌발적 죽음으로 오래된 소망을 지웠다고 밝혔다.
 
오세훈 시장 취임식이 열린 지난 22일 오후 광화문 광장 공사장 가림막에 기존 광화문 광장이 진짜 광장이 된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오세훈 시장 취임식이 열린 지난 22일 오후 광화문 광장 공사장 가림막에 기존 광화문 광장이 진짜 광장이 된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렇다면 왜 공사가 강행됐을까. 광장을 돌아보니 의도가 읽힌다. 광장은 가림막 성벽에 둘러싸였다. 그 벽은 오 시장이 만든 광장을 폄훼하는 문구로 장식됐다. ‘광화문 광장에 진짜 광장을 심다.’ 오 시장의 광장은 가짜라는 선언이다. ‘사람이 중심인 진짜 광장.’ 기존 광장은 사람이 뒷전이라는 함의다. 서울시 홈페이지도 그렇다. 새 광장 홍보 콘텐트엔 광화문역에서 오 시장의 광장으로 가는 데 15분이 걸렸다는 내용이 담겼다. 광화문역에는 광장으로 이어지는 9번 출구가 있다. 이번 공사로 막아놨을 뿐이다. 횡단보도로 건넌다 해도 15분이 걸린다?  
 
행정은 자신이 해온 일을 헐뜯지 않는다. 자가당착을 무릅쓰면서 서울시 시설의 가치를 부정하는 행태는 이 공사가 행정이 아닌, 정치 영역의 프로젝트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주역으로 지목됐던 사람들을 지우고 나니 여당 소속 시의원들의 깃발만 펄럭인다. 5개월 만에 주변 도로를 개조하고 광장 표면을 발라낸 속도전에 투영된 여당의 의지가 선명하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인호 시의회 의장은 "이미 250억원은 집행된 상태"라며 "원상 복귀하는 데만 150억원 이상 든다"고 주장했다. ‘대못질’ 논리다. 광장에 놓인 안내판엔 이 공사가 내년 2월 28일에 끝난다고 적혀있다. 대통령 선거 9일 전, 서울시장 선거 석 달 전이다.  
 
국민의힘 뿐 아니라 정의당도 비난한 공사다. 당장 멈추라고 소송을 낸 시민단체들은 지난주 오 시장에게 공개 질의를 던졌다. 오 시장은 앞으로 500억원 이상 투입해 ‘박원순 광장’을 완성할지, 150억원을 들여 ‘오세훈 광장’으로 돌아갈지 기로에 섰다. 제3의 길도 있다. 지금 파헤친 서쪽 도로에서 문화재가 나온다. 조선 시대 육조거리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차가 다니는 동쪽 도로 밑에도 문화재가 숨었을 가능성이 크다. 손을 댈 바엔 시간이 걸려도 제대로 하는 편이 낫다. 공사와 선거 사이에 가림막을 치는 길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과거 정부의 성과물을 큰돈 들여 해체하는 ‘파괴의 네거티브’를 중단하는 여야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번 공사에 책정된 791억원은 종로구 전체 가구에 100만원씩 주고도 남는 돈이다. 구조물을 부수는 네거티브는 세금이 든다는 점에서 '생태탕'이나 '도쿄 아파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파괴의 네거티브가 극단으로 치달으면 어떤 분노를 축적하는지는 지난해 6월 건설비만 178억원이 들어간 북한의 개성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폭파 해체로 경험했다.
 
취임사에서 통합을 강조했던 문 대통령은 지난주 오 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모처럼 화합의 의지를 보였다. 남은 1년은 극심해진 대립과 갈등을 치유하는 시간으로 채워야 한다. 야당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4대강을 비롯한 곳곳에서 벌이는 값비싼 파괴의 네거티브를 중단하는 변화가 화해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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