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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만루포, 잠자던 LG 타선 깨웠다

중앙일보 2021.04.26 00:03 경제 6면 지면보기
27년 만에 우승을 노리는 LG의 ‘라커룸 리더’ 김현수. [연합뉴스]

27년 만에 우승을 노리는 LG의 ‘라커룸 리더’ 김현수. [연합뉴스]

프로야구 LG 트윈스 선수들은 올 시즌 특별한 단체 세리머니를 만들었다. 결정적인 활약을 한 뒤, 왼쪽 손목을 오른손으로 감싸 쥐면서 기쁨을 표현하는 동작이다. 일명 ‘롤렉스 세리머니’다.
 

시즌 4호, 한화전 8-0 승리 이끌어
홈런 친 뒤 선수단 시계 세리머니
고 구본무 회장 우승 염원 담아
오승환은 KBO리그 첫 300세이브

LG 주장 김현수(33)도 그랬다. 그는 25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서 결승 만루홈런을 쳤다. 0-0으로 맞선 6회 초 1사 만루에서 한화 선발 닉킹험의 체인지업이 한가운데로 높게 몰리자 놓치지 않고 걷어 올렸다. 타구는 야구장을 정확히 반으로 가르며 130m를 날아 담장을 넘어갔다. 김현수의 시즌 4호 포이자 개인 통산 9호 그랜드슬램이었다.
 
김현수의 만루포로 팽팽하던 0의 균형이 깨졌다. 베이스를 가득 채웠던 주자 3명이 차례로 득점했다. 홈런의 주인공 김현수는 마지막으로 홈을 밟으면서 왼쪽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왼쪽 팔목을 가리키면서 먼 하늘을 바라봤다. 더그아웃에 있던 LG 선수들은 그 모습을 보고 더 큰 환호를 보냈다. 김현수도 비로소 활짝 웃으며 동료들의 하이파이브 세례 속으로 뛰어들었다.
 
LG 선수들이 ‘시계’를 상징하는 세리머니를 만든 데는 사연이 있다. 2018년 5월 작고한 고(故)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유품을 올해는 꼭 세상에 꺼내 놓겠다는 각오 때문이다. 1990년 LG 야구단 창단을 주도한 구 전 회장은 생전 야구단에 남다른 애정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구단주를 역임하는 동안 매년 수차례 야구장을 찾아 직접 LG 경기를 봤다. 매년 초에는 일본 스프링캠프를 방문해 감독과 선수단을 격려했다. 경남 진주 대곡면 단목리에 있는 외가로 LG 선수단을 초청하는 ‘단목 행사’를 열어 우승 기원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지금 LG 구단 사무실 금고에는 고인의 애정을 보여주는 유산 하나가 22년째 잠들어 있다. 구 전 회장이 1998년 해외 출장을 갔다가 LG의 세 번째 우승을 기원하면서 산 롤렉스 시계다. 당시 가격이 8000만원쯤 하는 고가시계다. 고인은 이 손목시계를 구단에 전하면서 “다음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게 이 시계를 선물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끝내 이 시계를 LG 선수의 손목에 채워주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LG는 올해 1994년 이후 첫 통합 우승에 도전한다. 우승 트로피 없이 27년이 흐른 사이, 1994년 신인왕 류지현이 LG 사령탑에 올랐다. 류 감독은 구 전 부회장이 가장 아끼던 선수 중 한 명이다. LG가 오랫동안 기다리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이다. 또 지난해 포스트시즌에 올랐던 전력은 여전히 탄탄하다. 앤드류수아레즈라는 특급 외국인 투수도 영입했다. 모기업도, 야구단도, 선수들도 우승을 믿는다.
 
선수 모두 ‘롤렉스 시계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뛴다. 단순히 ‘비싼’ 시계를 원하는 게 아니다. LG 야구단의 역사와 전통이 서린,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물을 손에 넣을 기회다. 외국인 타자 로베르토 라모스도 “지금껏 롤렉스 시계를 산 적이 없고, 앞으로도 살 생각이 없다. 오직 LG의 한국시리즈 MVP가 받는 ‘그 롤렉스’를 차고 싶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LG 라커룸 리더인 김현수도 유력 후보다. 그는 이날 만루홈런으로 잠자던 LG 타선을 깨웠다. 5회까지 한 점도 뽑지 못한 LG는 8-0으로 완승했다.
 
KBO리그 역대 첫 300세이브를 달성한 삼성 오승환의 역투. [뉴스1]

KBO리그 역대 첫 300세이브를 달성한 삼성 오승환의 역투. [뉴스1]

한편, 삼성 라이온즈는 광주 KIA 타이거즈전에서 3-2로 이겼다. 삼성 마무리 오승환은 9회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KBO리그 역대 처음으로 통산 300세이브 고지를 밟았다. 역대 최소 경기 100세이브, 최소 경기·최연소 200세이브에 이은 또 하나의 대기록이다. 오승환은 이 세 가지 기록을 모두 KIA전에서 세웠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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