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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만원 널뛰는 코인…정부 4년간 방치했다

중앙일보 2021.04.26 00:02 종합 1면 지면보기

대책 없는 암호화폐 

암호화폐 시장이 돈의 블랙홀이 됐다.
 

국내 하루 28조 거래, 코스피 추월
여권 2017년 규제법 냈지만 폐기
암호화폐 난립·작전·환치기 무방비

자금과 투자자를 무섭게 빨아들이고 있다. 지난 2월 말 기준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빗썸, 업비트, 코빗, 코인원)의 실명확인 계좌 수는 250만1769개다. 같은 기간 투자자 예탁금은 4조6191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5배 늘었다. 업비트와 제휴한 인터넷 전문은행 케이뱅크에는 올해 1분기에만 180만 개 계좌가 신규 개설됐다. ‘코인 벼락거지’가 되지 않으려는 투자자의 행렬에 거래는 폭증하고 있다. 지난 24일 국내시장에서 하루 거래금액만 28조원에 달했다. 코스피 거래액(23일 기준 15조6533억원)을 넘어섰다. 코스닥(13조6727억원)까지 합한 거래액과 맞먹는다. 지난 1분기 4대 암호화폐 거래소의 거래금액은 1486조2770억원을 기록했다.
 
시장은 위태롭다. 비트코인 거래소인 빗썸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2018년 1월 6일 2598만8000원까지 올랐다가 그해 12월 15일 358만원으로 급락했다. 올해에는 3156만원에 거래를 시작했지만 이후 급등해 4월 14일 8147만7000원까지 올랐다. 하지만 25일에는 603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투자자 보호는 요원하다. 법과 규정, 제도가 전무하다. 과열 조장 우려에 당국이 손을 놓은 탓에 관리감독은 동네 구멍가게 수준도 안 된다. 인정할 수 없지만 방치할 수도 없는 ‘암호화폐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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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시장을 규제 사각지대로 만든 건 정부다. 암호화폐 관련 법은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과 소득세법이 유일하다. 특금법은 자금세탁 방지에, 소득세법은 가상자산 거래 수익에 세금을 거두는 내용이다. 투자자 보호에 대한 법은 없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7년 암호화폐 거래소 인허가 제도 도입과 불공정 거래 처벌조항 등을 담은 관련 법안을 냈지만 별다른 논의 없이 폐지됐다.
 
이렇다 보니 암호화폐의 상장부터 거래까지 거래소의 자체 판단에 따라 진행된다. 업계 관계자는 “거래소도 나름의 검증을 거치지만 법에 따른 규제가 없는 데다 서류만으로 거르기 힘든 부분도 많다”고 말했다.
 
상장 폐지도 빈번하다. 지난해만 해도 230개 암호화폐가 신규로 상장됐고, 97개가 상장 폐지됐다. 올해에도 2월 말까지 46개 코인이 신규 거래됐고, 10개 코인은 거래가 중단됐다. 한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된 암호화폐가 다른 거래소에서 거래될 수 있다.
 
작전도 벌어진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코인을 상장시킨 후 자전거래를 통해 가격을 상승시킨 후 대량의 시세차익을 보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정부, 코인거래소 숫자도 제대로 모르는데 개선책 나올지 의문”
 
거래소마다 공시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법적 규제는 없다. 검증은 전무한 수준이다. 김형중(암호화폐연구센터장)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특임교수는 “해외에는 상장 시 제출한 백서를 분석해 불량 코인을 걸러내는 커뮤니티가 활발한 반면, 한국은 그렇지 않아 불량 코인을 상장한 뒤 거액을 챙기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난립하는 암호화폐 거래소 실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2일 “가상화폐 거래소가 200개 있는데 등록이 안 되면 다 폐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시행된 특금법에 따라 오는 9월 24일까지 실명 확인 입출금 계정 등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무더기 폐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은 위원장이 언급한 200곳도 민간 컨설팅 업체 등의 추산에 따른 것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그동안 법적 근거가 없었던 데다 개·폐업이 잦아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소장은 “공식 통계도 없는데 어떻게 적절한 제도적 개선책을 낼 수 있겠냐”고 비판했다. 한국의 암호화폐 가격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차익거래를 통한 환치기(불법 외환거래)로 수백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지만 금융 당국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13일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에서 중국으로 송금한 금액은 9759만7000달러(약 1090억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월평균 중국 송금액(929만 달러)의 10배가 넘는다. 반면에 같은 기간 중국 외 국가로의 송금은 1억5428만 달러로 오히려 43% 줄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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