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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2차 소송 '각하' 속뜻은…"천동설→지동설로 돌아간 것"

중앙일보 2021.04.24 05:00
 
일제 강점기 위안부 피해자와 그 후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법원이 ‘국가면제(특정 국가를 다른 나라의 법정에서 판단할 수 없다는 국제법 원칙)’를 들어 배척했다. 최근 과거사 판결의 물줄기를 정반대 방향으로 튼 것이다.

[판결 다시보기]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부장 민성철)는 이용수 할머니와 고(故) 곽예남 할머니 등이 제기한 위안부 손배소 2차 소송에 대해 소 각하 판결을 내렸다. 지난 1월 “일본 정부가 원고들에게 1억원씩 지급하라”는 같은 법원의 다른 재판부(민사34부ㆍ이하 1차 소송)와도 상반된 결론이었다.
 
2018년 10~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강제징용 피해자 승소 판결을 비롯해 사법부는 과거사 소송 원고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잇따라 내렸다. 그랬던 흐름에 제동이 걸린 건 불과 몇주 전부터다. 2차 소송 결과에 앞서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부장 김양호)는 전임 재판부가 원고 승소로 확정지은 1차 소송 결과에 대해 “일본 정부에 강제집행을 하는 건 국제법 위반”이라는 결정을 추가로 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사법부 안팎으로는 연일 놀랍다는 반응이 나온다. 정의기억연대(전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지난 23일 “원고인 피해 당사자들은 절망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역사뿐 아니라 세계 인권사에 커다란 오점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크게 반발했다. 그렇다면 2차 소송 재판부는 왜, 어떤 논리로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을까. 일종의 ‘판결 해설서’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①위안부 문제는 국가면제에 해당하는 사안인가=“그렇다”

위안부 소송이 강제징용 소송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이었다는 점이다. 2차 소송 재판부는 한국 정부가 일본 법원의 민·형사상 판결을 따라야 할 의무가 없듯이, 일본 정부에 대해서도 한국 사법부가 판단할 수 없다는 ‘국가면제’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봤다. 소송의 문턱(요건)을 넘지 못했기 때문에 위안부 피해의 불법성(본안 판단) 여부도 따질 수 없어 각하한 것이다. 
 
이 국가면제론도 종전에는 모든 경우 국가면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절대적 관점에서, 최근에는 외국에서 행한 임대차ㆍ근로계약 등 상업적 행위의 경우 국가면제를 제외해 사법적 판단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제한적 관점으로 변화했다. 대법원의 1998년 판례도 이 같은 제한적 국가면제론을 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2차 소송 재판부는 “위안부 차출ㆍ위안소 운영은 일본 정부·군이 공권력을 동원한 것으로, 상업적 행위가 아닌 주권적 행위에 해당한다”며 “그렇다면 국가면제 원칙에 따라 한국 법원이 책임을 물릴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위안부 차출 행위와 관련해선 “무력은 한 국가가 가장 강한 형태로 주권을 표현하는 방식”이고 “국가에 의한 공권력의 행사가 잔혹한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해서 주권적 행위로서의 성격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고 밝혔다. 일견 불합리해 보이지만, 이런 사안의 성격 때문에 국가면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게 현시점의 국제 질서라는 것이다.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서울 서초동. 김성룡 기자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서울 서초동. 김성룡 기자

  

②국제법 판례를 바꾸면 안 되나?=“아직 안 된다”

국제관습법이나 판례도 변할 수 있다. 원고들의 변호인이 “국제 판례는 형성해 갈 수도 있는 것”이라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반발하는 배경이다.
 
실제 1월 원고 승소 판결한 1차 소송 재판부는 “주권적 행위라도 중대한 인권침해는 국제법상 강행 규범 위반으로 보고 국가면제에서 제외, 배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이는 2012년 ICJ에서 맞붙였던 이탈리아 대 독일 사건에서 이탈리아 측의 핵심 법리를 따른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독일 나치 정부에서 강제노역을 했던 이탈리아 시민 페리니가 독일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탈리아 법원이 독일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자, 양국은 ICJ로 이 사건을 가져갔다. 
 
그런데 ICJ는 2012년 “무력분쟁 상황인 법정지 영토 내에서 외국국가에 의해 일어난 불법행위에 대해선 국가면제를 적용해야 한다”며 독일 손을 들어줬다. 반대로 말하면, 원고 승소 판결한 1차 소송 재판부가 ICJ 패소 법리를 따랐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재판부는 “한반도는 (이탈리아와 달리) 무력분쟁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안이 다르다”는 식으로 차이를 설명했다.  
 
반면 2차 소송은 ICJ 판례가 있었던 2012년부터 올해까지 이런 국제적 관점을 변경할 만한 사정이 없다고 봤다. 한국 법원이 독자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이를 두고 한 국제법 전문가는 “1차 소송 재판부는 한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를 바라보는 ‘천동설’의 시각에서 판결했다면, 2차 소송 재판부는 국제사회를 중심으로 한국을 본 ‘지동설’의 관점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2차 소송 재판부는 국가면제론의 주류 법리를 바꿀 만한 사정이 있는지도 상세하게 살폈다. 국가면제에 관한 법률을 두고 있는 건 미국ㆍ영국ㆍ일본 사례와 함께  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 정부를 상대로 배상 청구를 했던 그리스ㆍ프랑스ㆍ폴란드ㆍ슬로베니아 대법원의 사례와 벨기에ㆍ브라질의 하급심도 검토했다. 
 
재판부의 결론은 “이들 사례에서 국가 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던 건 이탈리아와 한국의 1월 1차 소송 사례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2차 소송 재판부는 “어떤 나라가 국제적으로 확립된 규범을 홀로 벗어나려면, 변화에 상응하는 ‘일반적인 국가들의 관행’ , ‘법적 확신’ 등의 요건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 사안은 거기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더해 “우리 헌법이 정한 국제법 존중주의라는 헌법상 가치에도 맞는다”고 밝혔다.
 
수원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독일 평화의 소녀상 건립 건립추진위원회'가 지난 2017년 세운 '평화의 소녀상'에 안점순 할머니가 어루만지고 있다.   [사진 수원시]

수원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독일 평화의 소녀상 건립 건립추진위원회'가 지난 2017년 세운 '평화의 소녀상'에 안점순 할머니가 어루만지고 있다. [사진 수원시]

 

③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됐나=“아니다”

원고 대리인단은 “위안부 피해자들은 이미 미국ㆍ일본 법원에서 패소했기 때문에 한국 법원이 최후 구제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2차 소송 재판부는 이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들은 어린 시절 피고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었고, 기나긴 법적 쟁송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면서도 “국제법상 국내 재판으로 문제를 해결할 권리는 제한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피해자들의 일본에 대한 실체법적 손해배상청구권(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피고에게 국가면제의 법리를 방패막이 삼아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배상을 회피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소송으로 해결할 수 없는데 어떻게 실질적인 손해배상청구권을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해법도 재판부는 내놨다. “사법적 방법이 아닌 외교ㆍ정치적 방식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정책적 의사결정이 없는 상황에서 사법부는 매우 추상적인 기준밖에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계를 털어놓기도 했다.
 
정의기억연대 출신 더불어시민당 윤미향 당선인에 대한 수요집회 기부금과 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 논란이 불거진 지난해 5월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빗물이 맺혀 있다. [연합뉴스]

정의기억연대 출신 더불어시민당 윤미향 당선인에 대한 수요집회 기부금과 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 논란이 불거진 지난해 5월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빗물이 맺혀 있다. [연합뉴스]

 

④강제징용 판결과 연결되는 개별 배상청구권 판단 부분

재판부는 한일 청구권협정(1965년)과 고노 담화(1993년), 한ㆍ일 위안부 합의(2015년) 등 지난 한·일 정부의 협상을 통한 해법을 상세히 설시했다. 한국 법원이 아무리 일본 측 책임을 인정하더라도 일본 정부에 강제집행을 할 수 없는 현실적 제약이 있으니, 사법부의 틀 밖에서 일본과 국제사회 움직일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진정한 사죄=법적 배상’ 구도는 실은 1990년대부터 위안부 문제의 해법을 모색해 온 정대협 등 시민단체들이 주도해왔다. 고노 담화 이후 1993년 아시아여성기금이나 2015년 위안부 합의의 결과 만들어진 화해치유재단 기금을 둘러싼 논쟁도 이 같은 ‘법적 배상’이 아니라는 비판에 직면해 사실상 좌초한 것이었다. 물론 시민단체들이 법적 배상을 강조했던 배경에는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듯한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망언'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전후 국제질서는 “무력분쟁 중 발생한 손해배상은 피해자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개별 소송에 의하지 않고 관련국 사이의 일괄 협정(lump sum agreement) 방식으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굳어졌다고 밝혔다. 이 판단 부분은 대법원의 2018년 10월 강제징용 판결과도 연결돼 있다. 대법원이 과거사 문제에 대한 피해자들의 개별 배상청구권을 처음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2차 소송이 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되면 이에 대한 판단도 재차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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