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경환 曰] 주류 정당 대마불사 아니다

중앙선데이 2021.04.24 00:28 733호 30면 지면보기
한경환 총괄 에디터

한경환 총괄 에디터

16년 만에 물러나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후임을 선출하게 될 독일 총선이 오는 9월 26일 치러진다. 독일을 대표하는 ‘터줏대감’ 주류 정당들인 중도우파 기민·기사연합과 중도좌파 사민당의 두 차례 이어진 좌우 대연정도 8년 만에 막을 내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독일 녹색당, 9월 총선 1위 부상
한국 거대 양당도 장담 못 한다

총선을 5개월 앞둔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정당은 단연 녹색당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녹색당은 줄곧 사민당을 3위로 멀찌감치 따돌리고 2위로 선두 기민·기사연합을 턱밑까지 맹추격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난 20일 발표된 포르자 여론조사에서 녹색당은 28%로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기민·기사연합은 21%로 2위로 밀려났고 사민당은 13%로 3위에 그쳤다.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게르하르트 슈뢰더 같은 걸출한 총리를 배출한 사민당은 이제 좌파의 중추 역할에서 밀려나고 있다.
 
1970년대 말 창당 당시만 하더라도 녹색당은 집권을 노리기보다는 친환경 이슈 확산을 목표로 한 정치운동단체 성격이 짙었다. 녹색당은 사민당 슈뢰더 총리 시절 이른바 적록 연정의 주니어 파트너로 연방정부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지금처럼 자신들이 스스로 수권정당임을 표방하는 주류로 올라선 적은 없었다.
 
지난 19일 녹색당은 아나레나 배어보크(40) 공동대표를 창당 후 41년 만에 첫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수권정당으로서의 가능성 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 정치평론가는 총선이 끝나면 녹색당이 차기 정부를 이끌든지, 아니면 연정 파트너로 참여하든지 주축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녹색당은 독일 16개 주 중 11개 주의 정부를 구성하고 있으며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는 2016년 이후 제1당으로 주 정부를 이끌고 있다. 총선에서 녹색당-사민당-좌파당의 좌파 연정이 성립될 경우 배어보크 대표는 메르켈에 이어 다시 여성 총리가 될 수도 있다.
 
녹색당이 이처럼 독일 정계의 주류로 부상한 데는 그들 스스로 책임 있는 정당으로 변신한 것과 함께 기존 주류 정당들의 지지도 추락이 한몫했다. 한때 극단적인 환경·경제·외교 정책으로 소수 정당에 머물렀던 녹색당은 반기업 정서를 줄이고 국제·국내 정치의 현실을 인정하는 등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선회했다.
 
유럽에서는 21세기 들어 주류 정당의 교체 현상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선 당시 집권당이었던 중도좌파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과 중도우파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후보가 각각 5위와 3위를 차지해 1차 투표도 통과하지 못하는 참변을 당했다. 사회당은 같은 해 6월 총선에선 하원 577석 가운데 겨우 30석을 얻은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중도를 지향하는 신생당 ‘앙 마르슈’(En Marche·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과 극우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맞붙는 진귀한 일이 벌어졌다. 2017년 이탈리아 총선에선 중도좌파 민주당과 우파연합이 신생 포퓰리즘·극우 정당인 오성운동과 동맹당에 패퇴했다. 이 밖에도 스페인의 국민당과 사회노동당, 그리스 사회주의 정당인 파속 등 오랫동안 대표적 지위를 누려왔던 정당들도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할 처지다.
 
한국에서도 양대 정당인 좌파 더불어민주당과 우파 국민의힘이 정계를 양분하는 시대가 계속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민주당은 4·7 재보궐선거에서 큰 타격을 입었으며 국민의힘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두 자릿수 지지율을 보이는 변변한 후보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 이하 여성 유권자들의 소수정당·무소속 ‘기타 후보’ 지지율은 15.1%에 달했다.
 
정치에서 ‘영원’이란 없는 모양이다. 거대 정당들이 대마불사만 믿고 있다가는 큰코다칠지도 모를 일이다.
 
한경환 총괄 에디터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