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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와인 즐긴 프리드리히 대왕, 궁전에 포도원 만들어

중앙선데이 2021.04.24 00:21 733호 24면 지면보기

와글와글

프리드리히 대왕(테이블 맨 왼쪽에서 다섯째)이 포츠담에 있는 상수시궁전(아래 사진)에서 철학자 볼테르(맨 왼쪽에서 셋째)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프리드리히 대왕(테이블 맨 왼쪽에서 다섯째)이 포츠담에 있는 상수시궁전(아래 사진)에서 철학자 볼테르(맨 왼쪽에서 셋째)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구한말 지식인 유길준은 1885년 2월쯤 독일을 방문한 뒤 그 소감을 『서유견문』에 남겨 놓았다. 그것은 한국인 최초의 독일 여행기로, 베를린을 백림(伯林) 그리고 포츠담을 포주담(布朱淡)이라 쓰면서 방문기를 적고 있다.
 

프랑스 문화 심취,예술·학문 장려
포츠담 상수시궁에 와인셀러까지
140년 만에 고급와인 발견돼 화제

유길준 ‘서유견문’에도 황궁 등장
반려견 애지중지, 11마리와 합장

“황궁은 강기슭을 따라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세워져 있다. 휘황한 문체와 굉장한 규모는 사람의 재주나 힘으로 이러한 지경까지 이룰 수 있을까 하고 의심케 할 정도다. …황궁 문 앞에는 유명한 후례두익(厚禮斗翌) 선왕의 말 탄 동상을 세워 놓고 있는데 그의 남다른 위풍과 맹렬한 기상은 엄연히 살아 있는 사람과 같다.”
 
그가 보았던 곳은 베를린의 세종로 격인 운터덴린덴과 훔볼트대학 앞의 기마상 그리고 슈프레강 옆에 있는 왕궁이었다. 그러면 유길준이 언급한 ‘후례두익’은 누구인가? 그의 정식 이름은 프리드리히 2세다. 한낱 유럽의 변방에 불과하던 베를린과 프로이센을 세계사의 전면에 등장시켰던 그의 업적을 기려 후대 사람들은 그를 대왕이라 부른다. 그는 끔찍한 부자 관계로 유명하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아버지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인데 ‘군인왕’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아버지는 평소 군복 착용을 좋아했고 국가를 군대처럼 운영하고자 했다. 거인 수집 습관도 있어 위병대를 거인들로 장식하기를 좋아했고 도시민의 5분의 1을 ‘사랑스러운 푸른 아이들’이라 부르는 군인으로 채웠다. ‘독일병정’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 사람 때문에 생겼다. 매우 권위적이었던 반면에 그가 주도한 예산 절약과 상비군 운영, 군대 조련 등의 조치가 없었다면 후대의 부국강병도 불가능했다는 게 후대의 평가다.
 
반면 아들 프리드리히 대왕은 거의 모든 면에서 아버지와 달랐다. 병정놀이 대신 책과 예술을 가까이하고 플루트 연주를 좋아했다. 그런 아들이 유약하다며 야단치거나 심지어 체벌도 서슴지 않았다. 이를 견디다 못한 왕세자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국으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그만 붙잡히고 만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지만, 중신들의 만류로 감형하는 대신 탈출을 함께 모의한 친구가 사형당하는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게 만든다.
 
포츠담에 있는 상수시궁전 [중앙포토]

포츠담에 있는 상수시궁전 [중앙포토]

마침내 아들이 왕에 오른 1740년 5월 31일, 46년간의 프리드리히 2세 시대가 시작됐다. 취임 직후 “국가의 최고지도자는 국가의 첫 번째 종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재판과정에서 고문을 근절하며 종교에 대한 관용정책을 펼쳐서 계몽군주라는 평판을 얻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버지는 군인왕이라는 별명과 달리 재임기간 전쟁을 한 일이 거의 없는 반면, 아들 프리드리히 대왕은 취임 직후부터 전쟁터를 누비게 되는데 기발한 전략으로 연전연승을 거둔다.
 
아버지는 근검 검약을 모토로 전통 독일적인 가치를 좋아했고 맥주를 즐겼지만, 아들 프리드리히 대왕은 평소 프랑스어로 말할 정도로 프랑스 문화에 심취한 군주였다. 심지어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도서관 사서에게는 더 많은 급료를 줄 정도였다. 조국 프랑스를 떠나 유럽을 떠돌던 볼테르를 측근으로 불러 장시간 철학적 담론을 나눌 정도로 박식했고 프로급 플루티스트에 작곡까지 남겼다. 아버지가 즐기던 맥주가 아닌 포도주 그리고 커피를 애용하여 삭막했던 베를린과 포츠담에는 와인과 커피 문화, 정원문화 등 세련된 문화가 유입된다. 예술과 학문을 장려한 덕분에 베를린은 ‘북쪽의 아테네’란 별명을 얻기에 이른다.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재현, 그 꿈을 구현한 곳이 포츠담의 상수시궁전이다. 프랑스어로 ‘근심 없는’이란 뜻으로 본인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궁전의 이름도 지었다. 전쟁의 포연과 정치의 모략에서 벗어나 이제는 예술과 문화에 몰두하고 싶다는 인간적 소망이었다. 로코코 양식으로 지어진 상수시궁은 웅장하지 않은 대신 6단계의 멋진 테라스가 유명하다. 계단마다 만들어 놓은 169개의 유리격자 안에는 유럽 각지에서 가져 온 포도나무와 이국적 작물을 심었다. 그러나 포도의 수확량이 시원치 않자 1770년부터 1772년 사이에 상수시공원 안의 벨베데레 건물이 있는 클라우스베르크 남쪽 경사면을 아예 포도원으로 만들었다. 그의 사후에도 계속 포도원으로 운영되다가 2차대전이 끝나고 소련군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한동안 황폐해졌다가 최근 포도재배가 재개됐다. 이곳에서 수확된 포도주로 프리드리히 대왕 와인 축제가 개최되기도 한다. 대왕이 상수시궁전 동쪽 윙에 만들었던 와인셀러와 그곳에 넣어 두었던 고급와인들이 2004년, 140년 만에 발견돼 대중들에게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독일 라인헤센 지방에서 생산된 피노그리 품종, 프랑스 보르도 부근의 베르쥬락, 헝가리의 토카이, 남아공의 콘스탄티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와인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철학자로 살아온 것처럼 그렇게 소박하게 묻히고 싶다.”
 
그는 생전에 스스로 준비한 상수시의 한 모퉁이에 묻어 달라고 했지만, 조카인 후임 왕은 다른 곳에 그를 묻었다가 독일통일 뒤 비로소 소망대로 지금의 자리에 이장됐다. 대왕의 무덤에서 특이한 것은 두 가지. 하나는 그의 무덤 위에 놓인 감자인데, 그가 열성적으로 감자보급을 한 덕분에 식량 위기를 이겨 낸 것을 기리기 위함이다. 또 다른 하나는 11개의 돌 위에 쓰여진 이름들, 그것은 그가 사랑했던 11마리의 반려견들이다.  
 
많을 때는 상수시궁전에 50~80마리의 반려견들이 뛰어다녔다고 한다. 그중 가장 사랑했던 반려견은 비슈(biche),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역사상 가장 반려견을 사랑한 왕으로 기록된다. 와인과 글이 만나고, 반려견이 늘 짖어댔으니 그의 인생은 문자 그대로 ‘와글와글’하였다.
 
손관승 인문여행작가 ceonomad@gmail.com
MBC 베를린특파원과 iMBC 대표이사를 지낸 인문여행작가.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me,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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