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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변방 1만2500㎞ 대장정서 힘 키워 중원 장악

중앙선데이 2021.04.24 00:21 733호 26면 지면보기

중국 기행 - 변방의 인문학

마오쩌둥과 중앙홍군이 대장정 기간 사투를 벌이며 지나갔던 쓰촨 다구빙산. [위키피디아, 사진 윤태옥]

마오쩌둥과 중앙홍군이 대장정 기간 사투를 벌이며 지나갔던 쓰촨 다구빙산. [위키피디아, 사진 윤태옥]

황태자는 중원의 궁궐에서 출생하지만, 창업군주는 변방에서 태어나 중원을 점령함으로써 제위에 오른다.  
 

상하이서 창당한 중 공산당·홍군
장제스 국민당군에 쫓겨 변방 도피

장시성 위두서 산시성 우치까지
죽음의 행군 거치며 세 불려 승리

시진핑 부친, 종착지서 마오 맞아
중국 최고 권력 변방서 만들어져

현재의 중국도 강골로 성장한 것은 변방이었다. 중국 공산당이 창당된 것은 대도시인 상하이였다. 그러나 1927년 4월 장제스가 4·12쿠데타를 일으켜 공산당원과 진보인사를 무차별 살해하면서 대도시에서 공산당을 완전히 축출하다시피 했다.  
 
마오쩌둥은 장시성의 징강산(井岡山)이란 변방으로 도피했고 이곳에서 토지혁명과 유격전을 전개하면서 세력을 키웠다. 그리하여 1931년 11월 장시성 남부 루이진(瑞金)에서 마오쩌둥을 수반으로 하는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을 선포했다.
 
자금성은 중원의 중점, 변방의 정점
 
습지대에 빠져 희생된 중앙 홍군을 기리는 기념상. [위키피디아, 사진 윤태옥]

습지대에 빠져 희생된 중앙 홍군을 기리는 기념상. [위키피디아, 사진 윤태옥]

공산당이 부활하자 1930년 12월 장제스의 토벌이 다시 시작됐다. 4차까지 잘 막아냈으나 장제스가 총력을 기울인 5차 토벌전에서 질식상태까지 몰렸다. 그들은 혁명의 수도 루이진을 포기하고 탈주하기로 했다. 1934년 10월 시작하여 변방에서 오지로, 오지에서 변방으로 죽음의 행군을 계속했다.
 
마오쩌둥과 홍군이  장시성 위두에서 시작한 1만2500㎞의 행군, 그들 말로 ‘장정(長征)’을 끝낸 곳은 산시(陝西)성 북부의 우치(吳起)라는 또 다른 변방의 황토고원이었다. 척박한 변방에서 다시 살아난 마오쩌둥의 공산당과 홍군은 새 혁명수도 옌안(延安)을 발판으로 삼아 결국에는 1949년 10월 1일 천안문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 변방에서 힘을 키워 집중포격한 끝에 중원을 통째로 점령한 것 아닌가.
 
변방 이야기가 윈난에서 쓰촨으로 건너가는 시점에서 중국 현대사를 꺼냈다. 다시 쓰촨 지역에서의 장정으로 돌아가 보자.  
 
마오쩌둥의 홍군이 윈난에서 창강을 건너 쓰촨에 첫발을 내디뎠다. 여기서 지역군벌과 이족(彛族)을 만났다. 군벌들은 친분이 있는 류보청(劉伯承)을 보내 협상 끝에 전투 없이 통과했다. 이족 지역도 영악한 외교적 제스처가 성공했다. 류보청은 각 민족을 존중한다는 명분으로 노예제 추장과 형제의 결의를 맺고는 길안내까지 받아 통과했던 것이다.
 
중앙홍군이 국민당군과 전투를 벌였던 루딩교. [위키피디아, 사진 윤태옥]

중앙홍군이 국민당군과 전투를 벌였던 루딩교. [위키피디아, 사진 윤태옥]

그다음엔 다두하(大渡河)에서 가장 극적이라고 손꼽는 루딩교(瀘定橋) 전투가 있었다. 다두하는 강폭이 100m 전후로 넓지만 물살이 워낙 거세기 때문에 교각을 세울 수가 없었다. 루딩교는 열세 가닥의 쇠사슬을 양쪽에 연결하고 상판으로 나무판을 깐 다리다. 국민당 군대는 상판의 판자를 걷어 내고 동쪽 끝에 기관총 진지를 설치해 지키고 있었다. 이른 새벽 루딩교에 도착한 홍군은 자원자 22인으로 돌격대를 조직하고는 주저 없이 공격에 나섰다. 나무판으로 총알을 막으면서 쇠사슬에 발판을 하나씩 깔아갔다. 돌격대가 기관총 진지에 다가가서는 국민당 수비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여 진지를 탈취했다.
 
루딩교는 지금도 도보전용 다리로 남아 있다. 내가 다리를 걸어 봤다. 사람이 저 건너편까지 쇠사슬을 타고 기어가 전투를 벌여서 승리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마오쩌둥(오른쪽)과 장궈타오. [위키피디아, 사진 윤태옥]

마오쩌둥(오른쪽)과 장궈타오. [위키피디아, 사진 윤태옥]

루딩교에서 북상한 마오쩌둥의 중앙홍군은 1935년 6월 자진산이라는 설산을 힘겹게 넘은 다음 드디어 장궈타오(張國燾)의 제4방면군과 합류했다. 양측의 선발대는 서로를 확인하고는 얼싸안고 춤을 추었다.  
 
한숨 돌린 마오쩌둥은 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쑹판을 공격하고 간쑤성을 거쳐 산시성 북부로 진격노선을 결정했다. 그러나 권력에 시선이 꽂힌 장궈타오는 쑹판 공격에 나서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이러는 동안 장제스는 새로운 포위망을 치고 들어왔다. 홍군은 작전을 변경했고 이로 인해 마오의 중앙홍군은 최악의 습지대를 통과해야 했다. 습지를 통과하는 동안 많은 홍군들이 빠져 죽거나 굶어 죽거나 병으로 죽었다. 어처구니없는 희생이었다. 장궈타오는 습지를 건넌 중앙홍군에게 다시 지휘권 문제를 제기했다. 마오쩌둥은 장궈타오를 홍군 총정치위원으로 임명해 군사지휘권을 부여하고, 양 군대의 융합을 위해 지휘관 일부를 맞바꾸면서 내분을 봉합하려고 했다.
 
그러나 장궈타오의 욕심은 그 이상이었다. 공산당 창당시 조직 담당 대의원이었던 그는 말석에 있었던 마오쩌둥이 당 중앙이 돼 있다는 현실을 거부한 것이었다. 그는 산시성으로 북상하기로 한 당의 결정을 묵살했다. 군사지휘권을 발동해 이미 습지대를 통과한 홍군에게 다시 남하하라고 명령했다. 게다가 마오쩌둥이 북상하면 공격하라는 비밀지령까지 하달했다.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장궈타오의 지령을 알아챈 마오쩌둥은 중앙홍군에게 다음날 이른 새벽 조용히 출발하라고 지시했다. 이때 장궈타오 측 사령관이었던 쉬창하오는 ‘북상하면 공격하라’는 장궈타오의 명령 실행을 주저하고 있었다. 부하들의 채근에도 입을 열지 않다가 중앙홍군이 상당한 거리를 가고 난 다음에야 “홍군이 홍군에게 총질하는 도리는 없다!”는 한마디를 뱉었다. 마오쩌둥이 자기 인생에 가장 암흑 같았다고 회고한 것이 바로 이날, 1935년 9월 10일이었다.
 
장정의 목적은 장제스의 대규모 토벌전에 대항하기 위해 지역별 홍군들을 합류해 대항하자는 것이었는데, 중앙홍군과 제4방면군은 합류했다가 다시 갈라서게 됐다. 중앙홍군은 7000~8000의 병력으로 졸아든 채 북상하고, 장궈타오의 8만 군대는 쓰촨으로 남하했다. 위기를 비켜 나온 마오쩌둥은 곧 간쑤성으로 들어갔다.
 
미지의 에너지, 변방 어디선가 축적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위기 다음에 기회인가, 마오쩌둥은 적은 병력에도 불구하고 현지의 국민당 군대를 하나씩 격파하면서 무기와 탄약, 식량과 의복 등을 확보해 나갔다. 마오쩌둥의 중앙홍군은 1935년 10월 최종 목적지인 산시성 북부에 도착하고, 류즈단과 시중쉰이 이끄는 산시·간쑤소비에트정부의 환영을 받았다. 1년 가까이 변방에서 사선을 넘나들다가 드디어 목적지에 착지한 것이다. 루이진에서 옌안으로 혁명의 수도를 옮긴 마오쩌둥은 2차 국공합작으로 대일승전의 지분을 잘 챙겼고, 장제스가 도발한 2차 국·공 내전에서 최후의 역전승을 거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대로다.
 
쓰촨의 고지대 초원과 설산, 험준한 계곡과 강을 건너던 답삿길을 돌이켜 보면서 두 가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어느 산골에 세워진 장정 기념비에는 ‘이 치열한 전투에 2명의 당 영도자, 3명의 국가주석, 1명의 국무원 총리, 5명의 국방 장관, 7명의 원수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1955년 중국 인민해방군은 별 2개 이상의 장군 245명에게 최초의 계급장 수여식을 거행했다. 이 가운데 222명이 장정에서 살아온 홍군 출신이었다는 기록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신중국의 머리와 몸체는 변방의 장정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중국 바깥에서는 마오쩌둥과의 수많은 갈등을 아무리 부각시켜도, 중국의 권력은 ‘마오쩌둥과 장정’이라는 범주 바깥으로 튕겨 나간 적은 없었다. 묘하게도 오늘날 중국의 최고 권력자는 장정의 종착지에서 마오쩌둥을 맞이했던 시중쉰의 아들 시진핑이다. 그렇게 중원은 후계자를 낳았다.
 
윤태옥 중국 여행객
중국에 머물거나 여행한 지 13년째다. 그동안 일년의 반은 중국 어딘가를 여행했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경계를 걷는 삶’을 이어오고 있다. 엠넷 편성국장, 크림엔터테인먼트 사업총괄 등을 지냈다. 『중국 민가기행』 『중국식객』 『길 위에서 읽는 중국현대사 대장정』 『중국에서 만나는 한국독립운동사』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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