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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해석부터 충돌하는 미국의 진보와 보수

중앙선데이 2021.04.24 00:20 733호 20면 지면보기
미국은 어떻게 망가지는가

미국은 어떻게 망가지는가

미국은 어떻게 망가지는가
벤 샤피로 지음

보수가 바라본 미 분열 원인
연합 VS 분열주의 극한 대립
평등·권리에 대한 견해 달라
한국 진보·보수 대립도 닮은꼴

노태정 옮김
기파랑
 
트럼프냐 반트럼프냐를 놓고 미국은 2016년에 이어 2020년 대선에서도 나라가 두 쪽이 나는 듯한 아귀다툼을 벌였다. 레드(공화당)와 블루(민주당) 간의 분열상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급기야 선거 패배에 불복하는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은 워싱턴 국회의사당에 쳐들어가는 극단적인 사태까지 초래했다. 무엇이 과연 미국을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느냐를 두고 지금도 미국에선 말들이 많다.
 
『미국은 어떻게 망가지는가』는 오늘날 미국 정치의 현실을 뚫어 보는 프리즘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다.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 변호사로 보수적 정치평론가인 샤피로는 현재의 미국을 연합주의자(Unionist)와 분열주의자(Disintegrationist)의 대결 구도로 분석한다. 이 책은 문화·역사·철학 3분야로 나눠 미국 건국 이념을 설명하고 이를 지지하는 연합주의자와 이에 맞서는 분열주의자들의 행태를 비교했다. 인종 차별, 총기 소유 제한, 건강보험 개혁 등 미국 사회의 주요 갈등 유발 요인들을 연합과 분열의 잣대로 들여다봤다.
 
연합주의자들은 미국 독립선언서와 헌법이 미국 정신을 대변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미국이라는 정부가 탄생하기 전에 이미 자유, 생명, 행복 추구에 대한 개인 차원의 자연권이 존재했으며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며 ▶미국 정부는 오직 위의 두 가지 원칙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탄생했다는 것이 독립선언서의 골자다. 이 원칙이 100% 실행된 건 아니지만 미국인들은 동일한 이상을 함께 공유하며 그 이상을 함께 이룰 것을 맹세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6일 미국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건물에 난입한 트럼프 지지자들. 미국 정치의 분열상을 보여주는 최악의 사례였다. [EPA=연합뉴스]

지난 1월 6일 미국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건물에 난입한 트럼프 지지자들. 미국 정치의 분열상을 보여주는 최악의 사례였다. [EPA=연합뉴스]

반면에 분열주의자들은 이러한 미국 철학을 부인한다. 인간이 애초부터 평등하게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 평등의 개념을 단순히 권리의 평등 수준으로 환원시켜 버리면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굴종적 상태 속에 영구적으로 갇혀 있게 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오히려 법 앞의 불평등을 추구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다른 모든 평등을 이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과의 평등을 실현하고 특권을 배분하는 데 매개체로 사용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은 바로 정부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 진영의 미국 문화에 대한 시각도 평행선을 달린다. 연합주의자들은 미국의 특징 중 하나로 ‘권리 문화’를 든다. 법률적 필요조건을 넘어서는 영역에서도 개인의 권리가 폭넓게 적용되며 타인의 권리 행사가 우리의 이해관계와 어긋난다 할지라도 그 권리를 관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독재로부터 자신과 타인의 권리를 보호하려 하는 완고한 의지를 공유해야 하며 정부는 타인으로부터 발생하는 권리 침해로부터 시민 개개인을 보호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열주의자들은 이런 식의 미국 문화관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과거 미국인들은 권리를 생각할 때 정부의 침해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떠올렸다. 하지만 오늘날 분열주의자들은 개인의 권리가 정치권에서 우리의 주인으로 군림하는 사람들이 실현하려는 유토피아적 이상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한다고 샤피로는 주장한다. 법을 통해 혐오표현을 금지한다는 것은 곧 정부에 표현의 자유를 파괴할 권한을 부여한다는 뜻이며, 입법과 정책을 통해 경제적 공정을 보장한다는 것은 곧 정부에게 기업가정신을 파괴할 권한을 부여한다는 뜻이라고 본다.
 
미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연합주의자와 분열주의자들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연합주의자들은 노예제, 야만적인 서부 개척 등 부정적인 측면을 부인할 수 없지만 미국의 건국 이념은 미국을 위대한 국가로 만들었으며 세계를 나치와 공산주의로부터 해방시키는 원동력이 됐다고 본다. 반면 분열주의자들은 미국의 역사가 착취와 탐욕, 가부장제와 학대, 속임수에 관한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미국 민주당 등 진보 진영에서는 이 같은 샤피로의 보수 중심 시각의 이분법적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배경에서 건국됐지만 최근 우리 사회의 정치적·이념적 분열상은 미국의 현실과 많이 닮아 있는 듯하다. 미국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문화·가치관 전쟁’의 배경을 이 책을 통해 잘 살펴본다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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