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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까지 닮은 쌍둥이…형은 한국 육사서 ‘아제르 대통령’ 꿈꾼다

중앙일보 2021.04.23 05:00
지난 2019년 6월 아딥(왼쪽)과 그의 쌍둥이 동생(왼쪽에서 두번째)이 아제르바이잔 군사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아딥 제공

지난 2019년 6월 아딥(왼쪽)과 그의 쌍둥이 동생(왼쪽에서 두번째)이 아제르바이잔 군사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아딥 제공

“고국에서 대통령 하게 해주세요”

22일 충남 안면도에서 소원을 빌며 돌탑을 쌓는 외국 청년의 표정은 진지했다. 어눌한 한국어에도 딱딱한 군인 특유의 말투를 숨길 수 없는 그는 한국 육군사관학교에 재학 중인 아딥 알리예프(19)다. 아제르바이잔 국적인 그는 지난해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육사 수탁 생도에 선발돼 한국 땅을 밟았다. 지난 21일 첫 휴가를 나온 그는 “힘들지만 한국 육사에 온 건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삼촌처럼 나라 지키겠다’는 약속

아딥(뒷줄 오른쪽)과 육군사관학교 같은 분대 동료들. 사진 육군사관학교

아딥(뒷줄 오른쪽)과 육군사관학교 같은 분대 동료들. 사진 육군사관학교

아딥의 꿈은 10여 년 전 쌍둥이 동생과의 약속에서 시작됐다. 아제르바이잔은 주변국과 분쟁이 잦았다. 쌍둥이의 숙부는 형제가 태어나기 전 전쟁터에 세상을 떠났다. 형제는 어린 시절 군 장교가 돼 숙부처럼 나라를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정복을 입고 발맞춰 걷는 아제르바이잔 국군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상위권 성적으로 군사고등학교를 졸업한 형제는 약속대로 각각 아제르바이잔 육군사관학교와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어느 날 육사 1학년생 아딥에게 솔깃한 소식이 들렸다. 한국 육사에서 외국 수탁 생도를 뽑는다는 소식이었다. 2018년부터 한국 드라마와 K팝으로 한국에 관심이 높았던 그에겐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군사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기에 성적엔 자신이 있었다. 주경야독으로 한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체력검정과 한국어 검정시험을 통과한 그는 수탁생도로 최종 선발됐다. 지난해 2월 선망하던 한국에 도착했다. 이천 국방어학원에서 1년간 한국어 교육을 받으면서 한국어 실력을 키웠다. 육군 화랑 기초훈련을 거쳐 육사 81기 생도가 됐다.  
 
아딥에게 오전 6시에 일어나 오후 11시까지 칼같이 짜인 내무생활은 어렵지 않았다. 고국에서 군사고등학교 3년과 육군사관학교 1년을 보낸 그였다. 하지만 한국어 실력이 발목을 잡았다. 열정만으론 일반학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타향살이다 보니 의지할 곳도 적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방학 때 고국으로 가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후원인 자처한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22일 문영숙 이사장은 아딥에게 자신이 쓴 책을 선물했다. 사진 문영숙 이사장

22일 문영숙 이사장은 아딥에게 자신이 쓴 책을 선물했다. 사진 문영숙 이사장

고국에 그리움이 커지던 그에게 최근 한 줄기 빛이 비쳤다.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이 후원인으로 나선 것이다. 육사는 외국 수탁 생도를 위해 민간 후원인을 선발한다. 가정 초청, 문화유적지 견학 등으로 수탁 생도의 한국 적응을 돕기 위해서다. 지난 9일 문 이사장이 육사를 찾아 아딥과 결연식을 맺었다. 문 이사장은 “과거 안중근 홍보대사를 함께했던 지인에게 아딥에 대해 듣게 됐다”며 “최재형 선생과 관련해 중앙아시아에 관심이 높다 보니 아제르바이잔에서 온 아딥에도 애정이 가서 후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아딥은 지난 21일 첫 휴가를 나오자마자 동료 로얄 옌과 함께 문 이사장을 찾았다. 문 이사장과 함께 충남 안면도를 방문해 딸기농장, 소나무문학의집, 바닷가를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아딥은 “문 이사장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할머니 같은 분”이라며 “부모님께서도 매번 감사하다고 한다”고 했다.
 
 지난 2018년 아딥(오른쪽)과 가족들. 사진 아딥 제공

지난 2018년 아딥(오른쪽)과 가족들. 사진 아딥 제공

아딥은 4년간 육사에서 공부한 뒤 졸업증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간다. 그는 국방무관(외교 공관에 배속된 주재관 중 하나)이 돼 한국에서 복무하고 싶다고 했다. 타국과 달리 현재 주한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에는 군무 장교가 없다. 최초로 한국과 아제르바이잔을 잇는 외교 장교가 되겠다는 게 그의 뜻이다. 그렇게 가교역할을 하며 고국과 제2의 고국인 한국에 모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한국 육사에서 배운 것을 고국에서 잘 살려서 훌륭한 장교가 될 거예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대통령이 돼서 한국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죠.” 멋쩍게 웃는 육사 꿈나무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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