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대통령의 ‘백신 약속’조차 이젠 못 믿겠다

중앙일보 2021.04.23 00:10 종합 30면 지면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을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하기 위해 유영민 비서실장과 함께 상춘재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을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하기 위해 유영민 비서실장과 함께 상춘재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정부가 지난해 코로나19 백신 전략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백신 정책이 갈수록 꼬이면서 미로에 갇힌 형국이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설익은 대책을 쏟아내지만 해결은커녕 오히려 더 허우적거리는 모양새다. 국민은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신뢰 추락으로 이제는 대통령의 백신 관련 발언조차 믿기 어렵게 됐다.
 

정부, 백신 계획 아니면 말고 식 남발
혼란만 커져…정확한 실상 공개 시급

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을 초청한 청와대 오찬 자리에서 “백신 수급에 대한 불안보다 접종 속도를 못 내는 것이 더 문제”라고 말했다. 마치 백신을 넉넉히 쌓아놓고 있는데 의료계가 현장에서 접종을 신속하게 진행하지 못한다는 질책으로 들린다. 하지만 이는 실상과 거리가 먼 발언이다.
 
‘백신 거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부가 당초 공언한 백신 도입 계획에 잇따라 차질이 빚어져 수급에 비상이 걸린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예컨대 대통령이 “2분기에 2000만 명분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지난해 12월 직접 화상회의까지 열어 발표했던 모더나 백신은 사실상 하반기로 도입 시점이 늦춰졌다. 얀센 백신도 구체적 도입 시기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20일 “미국과 백신 스와프(맞교환)를 진지하게 협의 중”이라고 내세우더니 바로 다음 날 관훈토론회에서 “미국도 국내 사정이 아직 매우 어렵다고 한다”며 꼬리를 내렸다. 정 장관의 오락가락 발언은 정부 불신만 키웠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계약이 확정되지 않았다면서도 “추가로 상당한 물량을 확보했다”고 말해 김칫국부터 마셨다.
 
아니면 말고 식 발언도 잦다. 범정부 백신 도입 총괄팀장은 지난 15일 “국내 제약사가 해외에서 승인된 백신을 오는 8월부터 국내에서 대량 위탁생산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으나 계약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발표로 혼란을 일으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내에서 위탁 생산 중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수출 제한 언급도 자칫 역풍을 부를 위험한 발상이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백신 사령탑을 자처해 최근 미·일 정상회담에서 화이자 백신을 대량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그제야 “러시아 백신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질병관리청·식품의약품안전처·복지부·외교부·국가정보원 등이 그동안 수수방관했다는 직무유기 고백이 아니고 무엇인가. 급기야 문 대통령은 정치 편향과 부정확한 방역 자문 논란을 일으킨 기모란 교수를 청와대 방역기획관으로 임명해 정책 혼선을 키웠다. 이제라도 문 대통령은 백신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설익은 대책을 양산해 혼란과 불신을 키울 때가 아니라 정확한 백신 정보를 내놔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역할을 다하길 촉구한다.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