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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슬퍼할 줄 알지만 표현할 줄 모르는 타히티인

중앙일보 2021.04.22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82)

자신이 지금 느끼는 느낌과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면 숫제 새로 개념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눈치 없는 봄꽃’이란 감정을 만들어진다는 시인이 있다. [사진 pixabay]

자신이 지금 느끼는 느낌과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면 숫제 새로 개념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눈치 없는 봄꽃’이란 감정을 만들어진다는 시인이 있다. [사진 pixabay]



눈치 없는 봄꽃

세상에나 노란 유채꽃밭을 갈아엎는다는 슬픔이 제주 옥산로에서 삼척 맹방까지 바이러스처럼 전염되었어 한번 가보마 했던 서쪽의 백만 송이 튤립은 다 피우기도 전에 분노의 제단에서 미래가 잘렸다지 하지만 소식이 유보되었던 동네 텃밭에서는 눈치 없는 봄꽃이 할 말은 해야겠다고 눈총을 받으며 약 올리듯 제 때의 화면을 조정하고 있어
 
들어봤어 에스키모인은 분노라는 낱말의 싹을 잘라 서로 키우지 않고 타히티 사람들 사이엔 슬픔이란 말뜻이 들어설 틈이 아예 없다는 거야 그래 이유를 곰곰이 따져 물었지 억지로, 눈치 없는 봄꽃이 등장할 봄날이 극히 짧다는 거 외엔 아무것도 모르겠더군
 
그들도 슬픔과 분노 대신 잠시 눈살을 찌푸리기는 하겠지 마음이 두근거리는 게 불안이 아니라 설렘일지도 모른다고 이별의 아픔은 허약함이 몸을 떠나는 차원 이동일 수도 있다며 토닥여주고 봄꽃과 네게 혼자만의 무게를 지우지 않는다지 아마
 
해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참으로 미묘하다. 똑같은 대상을 보고도 때와 장소에 따라 반응하는 느낌의 종류와 감정의 색깔이 다르다. 또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주 다양하다. 즉 감정이 움직이는 맥락에 따라 나타나는 양태가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인류는 여태껏 사람들이 갖는 느낌과 감정의 종류가 같거나 최소한 비슷할 거라 유추하였다. 하지만 뇌과학과 인류학이 발전하면서 각자가 느끼는 느낌과 감정은 아주 다르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무지개를 보면서 우리는 7색깔 무지개라고 생각하지만, 러시아인은 6색깔 무지개라고 받아들인다. 실제로 러시아어에는 무지개 색깔 이름이 6개밖에 없으며 그러다보니 러시아인은 파랑과 남색을 잘 구분할 줄 모른다고 한다. 우리말은 특별히 색깔에 예민하다. 예를 들어 노란색을 표현하는 단어도 다른 언어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노르스름하다와 노리끼리의 말뜻도 우리는 분명히 구분한다. 나아가 색깔에다 그 상태까지 표현한다. 노릇노릇하다는 말뜻은 전체 중에 일부분이 노릇노릇 익은 상태를 가리킨다.
 
비를 표현하는 종류도 유난히 많다. 비가 농사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빗속에서도 논밭에 나가 작업하면서 비와 한 몸이 되는 체험을 했고, 언제 그치고 얼마나 내릴지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안개비, 는개, 색시비, 여우비, 먼지잼, 억수, 못비, 떡비, 작달비, 꽃비, 가루비, 날비, 장대비, 보름치, 그믐치, 마른비, 웃비, 우레비, 단비, 소나기, 장맛비 등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즉, 어떤 문화의 필요에 의해서 단어가 생긴 것이다.
 
무지개를 보면서 우리는 7색깔 무지개라고 생각하지만, 러시아인은 6색깔 무지개라고 받아들인다. 러시아인은 파랑과 남색을 잘 구분할 줄 모른다고 한다. [사진 pixnio]

무지개를 보면서 우리는 7색깔 무지개라고 생각하지만, 러시아인은 6색깔 무지개라고 받아들인다. 러시아인은 파랑과 남색을 잘 구분할 줄 모른다고 한다. [사진 pixnio]

 
우리가 흔히 인간의 기본 감정이라고 여겼던 칠정(七情) 중 하나인 분노와 슬픔이란 단어도 사람들이 사는 문화권에 따라 아예 그런 개념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우트카 에스키모인에게는 분노라는 개념이 없으며 타히티인에게는 슬픔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한다. 우리가 슬픔을 느낄만한 상황에서 그들은 아픔, 피곤, 곤란, 시큰둥함 등을 느끼면서 이 모든 걸 싸잡아 ‘페아페아’라고 부른다. 우리가 보기에 얼굴을 찌푸린 정도의 감정을 나타낼 뿐이다. 감정 온도에 차이가 크다.
 
또 감정이라는 단어의 개념도 문화권에 따라 다르다. 서양인은 감정을 개인의 내면에서, 몸 안에서 일어나는 경험이라 인식하나 여러 다른 문화권에서는 감정이 두 명 이상의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태라고 본다. 어떤 정의가 더 우리 개념에 근접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사람에 따라, 세월에 따라 다르게 대답할 것이다. 즉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세월에 따라, 문화권에 따라, 나아가 개개인 상황에 따라 그 강도와 색채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보편적 감정이 있다는 자체가 신화라는 것이다.
 
사람 감정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데 좋은 방법은 각 문화권에서 사용하는 단어를 이해하는 거라고 한다. 각 문화권에서 오랜 관습에 따라 적절한 마음 표현법이 발달하였다. 그런 미묘한 단어 표현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실제 우리가 평상시 잘 몰랐던 감정을 구분해 표현할 수 있게 된다. 혼돈스러워 강하게만 느껴졌던 감정도 어떤 개념 아래 들어가면 옅어진다고 한다. 이를 혼란스런 감정이 제자리를 찾았다고 표현한다. 이른바 ‘정동적 적소’를 찾았다는 새로운 개념이다.
 
예컨대 독일어 감정 단어 ‘샤덴프로이데’는 ‘다른 사람의 불행에서 느끼는 쾌감’을 뜻한다. 이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감정과 정반대 감정이다. 물론 썩 흔쾌히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우리에게도 이런 감정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난처한 상황에서 무언가 감추고 싶고 찝찝함을 느낄 때 ‘샤덴프로이데’ 단어를 사용하면 어색한 감정을 오히려 웃으며 해소할 수 있게 해준다. 무조건 억압하고 감출 때 발생하는 감정의 응어리를 약하게 만들어 주는 이점이 있다.
 
필리핀의 일롱고트족에게 있는 ‘리제트’라는 감정은 ‘다른 집단과 벌이는 경쟁에서 느끼는 열광적 공격성의 느낌’이다. 승패가 갈리고 한쪽이 치명적 피해를 입는 상황에서 느끼는 쾌감이라니 어찌 보면 잔혹하다고 생각된다. 사실 인간에게는 이런 승리의 쾌감이 엄연히 있다. 그리고 이런 ‘리제트’ 감정을 얻기 위해 일부러 집단의식을 고취한다. 회사끼리의 선의의 경쟁도, 각 지방 프로팀의 경쟁도, 각 정당이나 국가의 갈등과 전쟁 상황도 사실은 리제트의 일종이다. 꺼림칙하다고 묻어둘 것만은 아니다. 서로 인정하는 편이 낫다.
 
우리가 세계에 퍼트린 단어도 많다. ‘정(情)’이 대표적이다. 정은 오래된 사람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고운 정 미운 정’으로 풀이된다. 오래된 관계 속에서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게 되어 비록 적은 피해를 입더라도 감내하고 유지하는 게 나을 때 정이 들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인은 우리의 정 비슷한 감정을 ‘허젤러흐’라고 표현한다. 주로 화목한 느낌을 말한다.
 
화병도 우리가 퍼트린 감정이다. 시집살이 등 오래된 관계 내에서 지속적으로 억울한 감정을 느꼈으나 해소하지 못해 흉통, 불안 발작, 심계항진, 불면, 식도염 등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예전에는 정말로 화병으로 내원하는 환자가 많았다. 도리어 화병이란 병명이 인정되고 나니 많이 줄어들었다. 감정이 개념화되면 응결도(입자도)가 약해져 생긴 효과이다. 감추면 병이 되고 드러내면 치유된다는 말과 같다.
 
피자는 그 형태와 맛이 정말 다르다. 그러나 피자라는 이름으로 공통점을 갖는다. 반죽의 두께와 토핑의 종류가 다르다고 피자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의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사진 pxhere]

피자는 그 형태와 맛이 정말 다르다. 그러나 피자라는 이름으로 공통점을 갖는다. 반죽의 두께와 토핑의 종류가 다르다고 피자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의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사진 pxhere]

 
피자효과라는 말이 있다. 피자는 원래 이태리 음식이나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각 지방에서 선호하는 맛과 종류가 다양해졌다. 하와이언 피자와 뉴욕피자, 한국 피자는 그 형태와 맛이 정말 다르다. 그러나 피자라는 이름으로 공통점을 갖는다. 하지만 서로 얼마나 다른지 이해하고 수용한다. 반죽의 두께와 토핑의 종류가 다르다고 피자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의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정말 다르다. 같을 것이라 확신하거나 비슷할 거라 어림짐작하면 오류가 생긴다. 얼굴 표정만으로 상대방 감정을 추측하다가는 실례를 범하기 꼭 알맞다. 확률적으로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겸손하게 상대방의 뜻을 확인해봐야 한다. 늘 느낌을 물어봐야 한다.
 
나아가 자신의 감정도 항상 변한다. 고정 불변하는 감정은 없다. 그러니 우리는 늘 자신의 감정을 해체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감정에 고집부리지 말아야 한다. 감정 입자도 낮은 사람은 짜증, 성가심, 좌절감, 적대감, 격분, 불만 등의 감정을 뭉뚱그려 분노라는 감정에 포함시킨다. 그러면 그는 매사에 불편한 심정을 느끼며 살 것이다. 분노 감정도 평소에 잘게 나누어 해체하면 받아들이기 쉽고 잘 참아진다.
 
자신이 지금 느끼는 느낌과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면 숫제 새로 개념을 만들어 보는 방법도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눈치 없는 봄꽃’이란 감정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황상순 시인이 쓴 시를 읽고 불현 듯 떠올렸다. 코로나 사태로 장기간 집안에 갇혀 지내는 상황에서 창밖을 보니 여전히 찬란한 봄기운을 느낄 때 받는 괴리감을 황시인은 아주 적확하게 표현하였다. 감사하며 답시를 써본다.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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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윤경재 윤경재 한의원 원장 필진

[윤경재의 나도 시인] 시를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쓰기를 어려워들 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이든 아니든 시를 쓰면 모두 시인입니다. 누구나 그저 그런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체험이라면 감정을 입혀 쓰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한의사가 연재하는 시를 보며 시인이 되는 길을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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