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헌옷이면 어때, 명품도 득템" 1조5000억짜리 보물창고 떴다

중앙일보 2021.04.22 05:00
미국 스타트업 스레드업은 중고 의류를 판매하는 플랫폼으로, 지난달 나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사진 스레드업

미국 스타트업 스레드업은 중고 의류를 판매하는 플랫폼으로, 지난달 나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사진 스레드업

중고나라·당근마켓·번개장터 등 국내 중고거래 플랫폼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수익 모델이 뚜렷하지 않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미국에선 중고 거래 플랫폼의 한계를 극복하고 e커머스의 강점을 살린 스타트업이 뜨고 있다. 바로 ‘중고 의류업계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스레드업(thredUP)’이다.  
 
미국 경제매체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스레드업은 지난달 26일 나스닥 기업공개(IPO) 첫날 43% 상승해, 시가총액 13억 달러(약 1조4541억원)를 기록했다. 명품 구찌에서부터 중저가 의류 갭(GAP)까지 하루 평균 10만벌이 넘는 헌옷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년 내 구매 이력이 있는 회원 수는 120만명으로, 1년 전과 비교해 24% 늘었다. 매출은 2018년 1억2960만 달러에서 지난해 1억8600만 달러(약 2081억원)로, 매년 15~25%씩 증가하고 있다.  

“헌 옷도 팔릴만하게 만들어라” 

스레드업 매출.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스레드업 매출.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스레드업이 중고품인 헌 옷으로 경쟁이 치열한 e커머스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중고 의류를 ‘팔릴만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헌옷은 팔기도 사기도 어려운 상품이다. 판매자는 제품 사진을 찍고, 가격 책정을 하고, 세탁까지 책임져야 한다. 사는 사람은 입어보지 못한 채 판매자가 제공하는 사진만 보고 돈을 내야 한다.  
 
이러한 소비자 불편을 덜기 위해 스레드업은 판매자가 보낸 헌 옷을 받아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을 고른 뒤 세탁하고, 가격을 붙여 홈페이지에 등록하는 일을 대신해 준다. 이후 물건이 팔리면 수수료를 받는다.  
 
아울러, 스레드업은 ‘패션계의 넷플릭스’로 불리는 스티치 픽스의 비즈니스 모델을 헌옷에 적용했다. 스티치 픽스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개인 맞춤형 스타일링 업체다. 소비자에게 어울리는 옷을 여러 벌 보내면, 소비자는 마음에 드는 것만 구매하고 나머지는 반품하는 방식이다. 스레드업의 ‘구디박스’도 비슷한 서비스다. 고객이 사이즈, 좋아하는 색상, 스타일 등을 입력하면 인공지능(AI)과 패션 전문가가 옷 10벌을 골라 보내준다. 배송된 옷은 일주일동안 입어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AI의 옷 추천에 고객 지갑 열려  

스레드업의 구디박스를 이용하면 AI가 좋아할만한 옷을 골라 보내준다. 사진 스레드업

스레드업의 구디박스를 이용하면 AI가 좋아할만한 옷을 골라 보내준다. 사진 스레드업

스레드업은 구디박스를 도입하고 고객의 평균 지출액이 30% 증가했다. 중고 의류에 대한 신뢰가 낮았던 이들이 실제로 옷을 받아보고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제임스 라인하트 스레드업 공동창업자는 “옷에 하자가 있을까봐, 또는 찝찝하다는 이유로 중고 의류 구매를 망설이는 사람이 많지만, 이런 문제만 해결하면 중고 의류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신은 스레드업이 아마존처럼 중고 의류 시장에서 ‘모든 걸 팔겠다’는 전략으로 시장 규모를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CNBC는 “스레드업은 백화점, 마트보다 다양한 브랜드를 취급하는 패션 보물창고”라며 “한정판에서 명품까지 없는 것이 없다”고 전했다.  

MZ세대 40% 헌 옷 사봤다 

중고 시장 주도하는 MZ세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중고 시장 주도하는 MZ세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스레드업의 주요 고객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다. 이들은 환경오염과 자원 낭비가 심한 업종인 의류 산업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한다. 이 때문에 헌 옷의 재활용을 가치있게 여긴다. 스레드업 조사에 따르면 미국 MZ세대의 30~40%는 중고 의류를 구매한 경험이 있다.  
 
실제로 의류 쓰레기는 패션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목된다. 매년 미국에서 버려지는 옷은 767만t에 달한다. 특히 지난 10년간 SPA로 불리는 패스트패션의 급성장은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의류 쓰레기를 만들었다. 스레드업 측은 “버려진 옷의 73%는 매립되거나 소각되지만, 실제로 95%는 재사용할 수 있다”며 “환경 보호에 민감한 MZ세대가 빠르게 유입되면서 의류 중고 시장은 조만간 SPA패션 시장을 추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고거래는 개성 드러내는 행위  

성수동의 밀리언아카이브의 매장에서 고객들이 중고 의류를 고르고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성수동의 밀리언아카이브의 매장에서 고객들이 중고 의류를 고르고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국내에서도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중고 의류 매장이 늘어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성수동의 밀리언아카이브는 사전 예약한 고객만 받고, 문을 열 때마다 수십명이 줄을 서서 입장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빈티지 원피스만 판매하는 ‘원피스숍’,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니트를 판매하는 ‘크리스마스 스웨터숍’, 옷의 무게를 달아 판매하는 ‘키로키로 마켓’ 등으로 나눠져 있다.    
 
전문가는 MZ세대에게 중고 거래는 개성을 드러내는 행위라고 분석했다. 소비자 심리학 전문가인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구매만큼 처분이 중요해지면서 안 쓰는 물건은 팔고, 남이 쓰던 물건을 사는게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며 “물건이 귀해 소유욕을 부리던 기성세대와 다르게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란 MZ세대는 소유에 대한 집착이 덜하고 남이 어떻게 볼지에 대한 의식도 적다”고 설명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