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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도둑' 산속 움막집의 기적…15년만에 모친에게 절했다 [영상]

중앙일보 2021.04.22 05:00
 
지난 3월 5일 오전 2시쯤 대전시 서구 주택가에 있는 떡집에 한 남성이 침입했다. 어둠을 틈타 골목길로 들어선 남성은 떡집 출입문 위쪽의 작은 창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남성은 쌀(포대)과 떡을 훔쳐 달아났다. 범행에 걸린 시간은 채 5분이 되지 않았다.

대전서부경찰서, 떡집 침입한 남성 검거
검찰 협의 '불기소 의견' 송치, 후견 역할

 
남성의 범행이 밝혀진 건 같은 날 오전. 전날 고객이 주문했던 떡을 확인하기 위해 아침 일찍 문을 열었던 주인은 물건이 없어진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가게 한쪽에 보관 중이던 쌀도 사라진 상태였다. 도난을 확신한 주인은 곧바로 신고했다.
지난달 5일 새벽 대전시 서구의 한 떡집에서 떡과 쌀을 훔친 40대 남성(노란색 원)이 산골마을 시내버스 종점에서 내려 이동하는 모습. [사진 대전서부경찰서]

지난달 5일 새벽 대전시 서구의 한 떡집에서 떡과 쌀을 훔친 40대 남성(노란색 원)이 산골마을 시내버스 종점에서 내려 이동하는 모습. [사진 대전서부경찰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대전서부경찰서 형사들은 전형적인 야간침입사건으로 판단, 떡집 주변과 인근 방범용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확보했다. CCTV를 통해 절도범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시내버스에 오른 사실을 확인하고 사고 주변을 오가는 시내버스 블랙박스도 모두 분석했다.
 

떡집 주변 CCTV·시내버스 블랙박스 영상 분석 

경찰은 CCTV와 시내버스 블랙박스 영상에서 떡집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동일한 남성이 대전시 서구의 한 시골 마을 시내버스 종점에서 내리는 모습을 확인했다. 이 남성이 종점 인근에 거주할 것으로 예상한 경찰은 주변 농가주택 11가구를 모두 조사했다. 하지만 남성의 소재를 발견하지 못했다. 사건 발생 다음 날인 지난달 6일 오전이었다.
 
경찰은 시내버스 종점이 농가 지역인 데다 낮은 야산에 둘러싸인 특징을 고려, 절도범이 산속에서 생활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주변 야산을 수색하던 형사들은 사건 발생 11일 만인 지난달 16일 산속 움막에 숨어 있던 한 남성을 발견했다. 한밤중 떡과 쌀을 훔친 A씨(45)였다.
지난달 5일 새벽 대전시 서구의 한 떡집에서 떡과 쌀을 훔친 40대 남성(노란색 원)이 움막을 찾은 경찰에게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고 있다. [사진 대전서부경찰서]

지난달 5일 새벽 대전시 서구의 한 떡집에서 떡과 쌀을 훔친 40대 남성(노란색 원)이 움막을 찾은 경찰에게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고 있다. [사진 대전서부경찰서]

 
A씨를 검거한 경찰은 범행 동기와 움막에서 살게 된 경위를 들었다. 40대 중반인 그는 1년 전부터 움막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가족과는 15년 전부터 연락을 끊은 상태였다. 전기 관련 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15년 전 알코올 중독으로 일자리를 잃고 가족과 헤어졌다. 남은 돈을 유흥비로 써버린 그는 신용불량으로 취업마저 어렵게 되자 아예 산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15년 전 가족과 헤어져…산속에서 움막 짓고 혼자 살아

움막에서 겨울을 보낸 A씨는 먹을 게 떨어지자 5~6㎞쯤 되는 도심까지 걸어가 떡과 쌀을 훔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이 A씨를 검거할 당시 움막 안에는 작은 냉장고와 전기밥통 등이 설치돼 있었다. 전기 관련 자격증을 가진 A씨가 인근에서 전깃줄을 연결, 가전제품을 사용하던 상황이었다. 훔친 떡은 이미 다 먹었고 쌀은 그대로 보관 중이었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A씨 신병처리 여부를 고심했다. 한밤중 떡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친 A씨에게는 ‘야간주거침입절도’ 혐의가 적용된다. 이 혐의는 징역 5년 이상의 중대한 범죄다. A씨에게는 특별한 전과가 없었다. 경찰은 여러 차례 검찰과 협의, A씨에게 사회로 돌아올 기회를 마련해주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지난달 5일 새벽 대전시 서구의 한 떡집에서 떡과 쌀을 훔친 40대 남성(노란색 원)이 사는 산속 움막을 찾은 형사들이 라면상자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대전서부경찰서]

지난달 5일 새벽 대전시 서구의 한 떡집에서 떡과 쌀을 훔친 40대 남성(노란색 원)이 사는 산속 움막을 찾은 형사들이 라면상자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대전서부경찰서]

 
다행히도 떡집 주인 B씨(57·여)도 A씨의 딱한 사정을 듣고 그를 용서해주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그가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먹을 것도 지원해주겠다며 소매를 걷고 나섰다. 경찰은 이런 내용을 검찰에 모두 전달하며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다. 검찰도 A씨에 대해 ‘기소 유예’를 결정했다. 풀려난 A씨는 경찰과 함께 떡집을 찾아 B씨에게 큰 절로 감사 인사를 대신했다.
 

남성 딱한 사정 들은 떡집 주인 용서…검찰 '기소유예'

임태혁 강력4팀장과 형사들은 라면과 쌀 등 먹을 것을 사 들고 다시 A씨가 사는 움막을 찾았다.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경찰을 만난 A씨는 “오래전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자신이 사라진 뒤 잠 못 이뤘을 어머니를 생각해서였다. 경찰의 도움으로 수소문 끝에 가족을 찾은 A씨는 어머니를 만나자 큰 절로 인사하며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기소유예 처분으로 다시 세상으로 나온 A씨가 직면한 현실은 먹고 사는 문제였다. ‘후견활동’을 자처하고 나선 대전서부경찰서 임태혁 강력4팀장 등은 충남 논산의 토마토농장에서 직원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현장까지 찾아갔다. A씨가 면접을 보는 내내 옆을 지키며 “성실하게 일한다고 다짐했으니 믿고 고용해달라”고 부탁했다. 토마토농장 주인은 면접 당일 흔쾌히 A씨 고용을 결정했다. A씨가 묵을 공간도 마련해줬다.
지난달 5일 새벽 대전 서구의 한 떡집에서 떡과 쌀을 훔친 혐의로 검거됐다 풀려난 40대 남성(노란색 원)이 15년 만에 상봉한 어머니에게 큰절을 하며 용서를 구하고 있다. [사진 대전서부경찰서]

지난달 5일 새벽 대전 서구의 한 떡집에서 떡과 쌀을 훔친 혐의로 검거됐다 풀려난 40대 남성(노란색 원)이 15년 만에 상봉한 어머니에게 큰절을 하며 용서를 구하고 있다. [사진 대전서부경찰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A씨는 하루에 한 번씩 임태혁 팀장과 형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열심히 살고 있다. 감사하다. 꼭 사회에 보답하겠다”며 자신의 일상을 전해오고 있다. 그는 운전면허시험도 준비 중이다. A씨가 산속에 움막을 짓고 살기 전 일했던 전기 관련 업체는 경찰을 통해 그의 딱한 사정을 듣고 “같이 일하자”며 제안했다고 한다.
 

경찰 "죄를 지으면 처벌, 사회복귀 기회 마련도 우리 역할"  

대전서부경찰서 장병섭 형사과장은 “A씨 사건을 수사하면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 피해를 보고도 오히려 감싸준 떡집 주인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죄를 지으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사회로 돌아올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도 경찰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대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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