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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빼고 ‘민주시민’ 넣은 교육법 개정에 교육계 반발

중앙일보 2021.04.21 15:41
음력 개천절인 지난해 11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사직단 내 단군성전에서 개천절 대제전이 엄수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뉴스1

음력 개천절인 지난해 11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사직단 내 단군성전에서 개천절 대제전이 엄수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발의한 교육기본법 개정안에서 우리나라 교육이념의 근간인 ‘홍익인간’을 삭제한 대신 ‘민주시민’을 넣어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사회적 합의 없이 현 정권의 핵심 가치인 ‘민주시민’을 법적으로 명문화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21일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교육기본법 개정안에 교육이념으로 명시된 ‘홍익인간’(弘益人間)을 ‘민주시민’으로 변경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행 교육기본법 제2조는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중략)”라고 돼있다. 개정안은 이를 “모든 시민으로 하여금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민주시민으로서 사회통합 및 민주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으로 수정했다. 
 
개정 이유는 “홍익인간이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 교육지표로 작용하기 어렵고, 1949년 제정된 교육법의 교육이념을 1998년 현행기본법에 그대로 적용해 사회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홍익인간, 교육의 기본철학이자 핵심가치

이에 대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등 교원 단체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신현욱 한국교총 정책본부장은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정신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교육의 핵심가치였다”며 “이를 삭제하는 것은 민주시민교육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신 본부장은 이어 “교육의 핵심가치와 이념은 국회가 바꿀 게 아니라 국민‧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2022 교육과정 개편에 맞춰 이런 법안을 발의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는 새 교육과정에서 인공지능(AI)‧디지털 소양과 함께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할 방침이다. 인천의 한 중학교 교사는 “2022 교육과정 개편 과정에서 민주시민교육 관련 논란이 커질 것에 대비해 법에 명시하려는 것 같다”며 “그렇지 않고서는 학교 현장에서 민주시민교육 충분히 잘 이뤄지고 있는데, 교육기본법을 바꿔 논란을 만드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장이 지난 2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교총 주최로 열린 '일방·편향 교육정책 폐기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장이 지난 2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교총 주최로 열린 '일방·편향 교육정책 폐기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기본법 개정, 사회적 합의 거쳐야

교육학자들도 우려를 나타냈다. 교육계 원로인 윤정일 서울대 명예교수(교육학)는 “홍익인간 이념은 오랜 전통이고, 단군조선부터 내려오는 개념”이라며 “백년지대계인 교육정책이 정권마다 바뀌는 것도 문제인데, 사회의 근간인 교육이념을 국회의원 몇 명이 뜻이 맞는다고 수정하는 것은 횡포”라고 주장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도 “홍익인간 이념은 1949년 교육법제정 당시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고 문제 될 게 없는데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무엇보다 교육의 방향과 목적을 정하는 교육기본법을 바꾸려면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학원과 전국민족단체협의회 등 60여개 단체도 21일 ‘교육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홍익인간은 지난 70여년간 우리나라 교육의 기본 철학”이라며 “단군조선의 건국이념이자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없앤다는 발상 자체가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또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문구가 있고, 임시정부 강령에 우리나라 최고 가치는 홍익인간이라고 명시됐다”며 “교육기본법 개정 발의 시도 자체가 헌법정신을 유린하는 역사 부정행위”라며 개정안 철회를 촉구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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