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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뱀장어 킬러' 끈벌레 극성···한강 어부들은 그물 걷었다

중앙일보 2021.04.21 05:00 종합 16면 지면보기
한강 하구 일대에서 35년째 조업 중인 어부 김홍석(63)씨는 최근 한숨짓는 날이 많아졌다. 연간 어획고의 절반 이상을 올리는 봄철 성어기인데도 이달 들어 일손을 놓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20일 “한강에 끈벌레가 넘쳐나면서 어부들의 봄철 주 소득원인 실뱀장어잡이를 몽땅 망쳐버렸다. 강에 쳐두었던 대형 실뱀장어 그물을 아예 걷어 올려놓고 있다”고 탄식했다.
 
김씨는 “요즘 그물 한 개에 5∼10㎏가량 끈벌레가 걸려 나온다”고 했다. 끈벌레는 지렁이와 비슷한 형태의 20∼30㎝ 길이다. 김씨는 “끈벌레 무더기 사이에 가느다란 실 모양을 한 길이 5㎝ 정도 크기의 실뱀장어 100∼200마리만 섞여 나온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경기도 고양시 행주나루터 옆 풀밭. 실뱀장어 그물에 걸려 올라온 끈벌레(오른쪽)와 죽은 실뱀장어(왼쪽). 전익진 기자

지난달 30일 경기도 고양시 행주나루터 옆 풀밭. 실뱀장어 그물에 걸려 올라온 끈벌레(오른쪽)와 죽은 실뱀장어(왼쪽). 전익진 기자

끈벌레 무더기 속 실뱀장어 95%가량 폐사

끈벌레에서 나온 점액질로 인해 실뱀장어 가운데 95%가량은 폐사한 상태라고 한다. 김씨는 “어민 50여명 중 상당수가 황금 조업기인 실뱀장어 철에 일손을 놓다시피 하는 실정”이라며 허탈해했다. 그는 “끈벌레로 인해 연간 소득의 70%가량을 차지하는 봄철 실뱀장어는 이젠 눈앞에 두고도 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부근 한강 하구에 설치한 그물에 끈벌레와 같이 걸려 죽은 실뱀장어. 행주어촌계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부근 한강 하구에 설치한 그물에 끈벌레와 같이 걸려 죽은 실뱀장어. 행주어촌계

고양시의 어부들에 따르면 한강 하구의 ‘괴생물체’로 불리는 끈벌레는 고양시 행주대교 상류에서 신곡수중보 사이 15㎞ 구간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끈벌레는 2013년 한강 하구에 나타나면서 처음 보고된 신종 유해  바다생물이다.  
지난달 30일 경기도 고양시 행주나루터 옆 풀밭. 실뱀장어 그물에 걸려 무더기로 올라온 붉은색 끈벌레. 죽은 실뱀장어도 섞여 있다. 전익진 기자

지난달 30일 경기도 고양시 행주나루터 옆 풀밭. 실뱀장어 그물에 걸려 무더기로 올라온 붉은색 끈벌레. 죽은 실뱀장어도 섞여 있다. 전익진 기자

어부들 “하수처리장 방류수가 원인 추정”  

심화식(66) 한강살리기어민피해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수년간 한강 하류에서 발생하는 끈벌레 집단 출현은 상류의 한강으로 오염된 방류수가 유입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행주대교 기점으로 한강 상류 6∼7㎞ 지점에 있는 난지물재생센터와 서남물재생센터에서 한강으로 배출하는 오염된 방류수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신곡수중보로 물길이 가로막히는 행주대교 일대에서 끈벌레가 봄철마다 대규모로 출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난지물재생센터와 서남물재생센터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하수·분뇨처리장이다.
경기도 고양시 한강 하구에서 잡힌 등 굽은 물고기. 행주어촌계

경기도 고양시 한강 하구에서 잡힌 등 굽은 물고기. 행주어촌계

어부들은 한강 하구에서 붕어·잉어·숭어 등 기형 물고기까지 속출해 설상가상의 상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심 위원장은 “큰 물고기 10마리를 잡으면 등이 굽었거나 아가미가 없거나, 눈이 튀어나오는 등 기형 물고기가 1∼2마리 발견된다. 7년 전쯤부터 지속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현상은 (신곡수중보로 인해) 물길이 정체되는 행주대교에서 김포대교 사이(2.5㎞) 구간에서 집중되고 있다”며 “이 또한 서울시 하수처리장 2곳의 방류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시 “하수처리장 방류수 깨끗하게 정화”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 하수처리장에서 방류한 물로 인해 끈벌레와 등 굽은 물고기가 출현했다는 어민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고 지나치다”며 “하수처리장에서 방류 중인 하수 수질은 생화학적 산소 요구량(BOD) 농도 10ppm 이하로 매우 깨끗하게 정화된 상태”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심화식 위원장은 “3년 전 고양시의 연구용역에서 ‘높은 염도’ 때문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원인만 추정됐을 뿐 이후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한강이 국가하천인 만큼 정부 차원의 정확한 원인조사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익진·장주영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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