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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미 앞둔 문 대통령, 시진핑 먼저 화상 대면

중앙일보 2021.04.21 00:07 종합 1면 지면보기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개발도상국에 대한 백신 기부와 같은 다양한 코로나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국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날 중국 하이난(海南)성에서 개최된 보아오(博鰲)포럼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다. 보아오포럼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린다. 코로나 상황을 감안해 대면·비대면 혼합 형식으로 진행된 올해의 포럼 주제는 ‘변화되는 세계’다. 부제는 ‘글로벌 거버넌스와 일대일로(一帶一路) 협력의 강화’였다. 일대일로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제시한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 재편 계획을 뜻한다. 그러나 청와대가 공개한 보도자료에는 ‘일대일로’가 포함된 포럼의 부제는 빠져 있다.
 

대통령, 중국 주도 보아오포럼 참석
미·중 반도체 기술패권 전쟁하는데
“신기술 아시아 국가간 협력 강화”

문 대통령 첫 참석, 2년 전 총리 참가
“중국의 백신 기부 높이 평가” 언급
한·미회담 전 중과 의견 공유 모양새
“한국 반도체 기업 운신 폭 축소 우려”

문 대통령은 이날 영상에서 “아시아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아시아 국가들은 보아오포럼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 정신을 실천해 왔다”며 “구동존이는 포용과 상생의 길이며 인류 공동의 위기인 코로나를 극복하는 데도 중요한 가치이자 원칙”이라고 말했다. 구동존이는 시 주석의 외교정책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다.
 
문 대통령은 이어 코로나 대응, 신기술 문제 등과 관련한 발언을 이어갔다. 미국과 중국이 갈등을 빚고 있는 아슬아슬한 주제들인데, 문 대통령의 발언엔 중국의 입장을 배려하는 듯한 내용이 포함됐다. 문 대통령은 백신과 관련, “어떤 나라도 이웃에 대한 배려 없이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며 개도국에 대한 중국의 백신 지원을 높이 평가했다.  
 
바이든, 중국 버릇 고친다는데…문 대통령은 중국 배려 발언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중국에서 열린 보아오포럼 개막식에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중국에서 열린 보아오포럼 개막식에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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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지난 1월 27일 세계경제포럼 화상 연설 때는 “백신 선진국들이 자국민 우선을 내세우며 수출을 통제하려는 이기주의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고 날을 세웠는데, 백신 수출을 통제하는 곳은 미국과 유럽연합이다.
 
문 대통령은 또 “신기술과 혁신 거버넌스 협력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신기술 분야에서 아시아 국가 간 협력이 강화된다면 미래를 선도하고 위기에 대응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한·중·일의 경쟁력을 언급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의 버릇을 고쳐놓겠다고 작심한 신기술 분야에서 한국이 중국을 협력 파트너로 강조한 것처럼 보일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다자간 협력을 중심으로 위기를 이겨내자는 데 방점이 찍힌 문 대통령의 발언은 원칙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미·중이 신기술 분야에서 첨예한 충돌을 빚고 있는 데다 한 달 뒤 문 대통령 방미 시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런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큰 점 등을 고려하면 보다 정교한 메시지 조율이 필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틀 뒤인 22일 바이든 대통령 초청으로 화상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영상이긴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첫 대면 접촉이다. 한 달 뒤인 5월 하순에는 워싱턴에서 첫 한·미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다. 결국 이날 포럼 참석은 한·미 정상 간의 본격적 대면 접촉에 앞서 한·중 정상이 미리 의견을 공유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소지도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포럼 개막 연설을 했다.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포럼 개막 연설을 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1월 26일에도 시 주석과 먼저 정상통화를 했다. 바이든 대통령과는 2월 4일에야 첫 정상통화를 하면서 “동맹에 균열을 자초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영상으로나마 보아오포럼에 참석한 건 취임 후 올해가 처음이다. 지난해엔 코로나로 일정이 취소됐고, 2년 전에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참석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는 “하필 바이든 행정부가 새 대북정책 발표를 앞두고 한국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을 분명히 한 시점에 나온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미국에 큰 오해를 줄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미·중 갈등이 반도체 등 구체적 기술패권 경쟁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중국의 입장을 반영한 발언을 한 것은 향후 한국의 반도체와 첨단기술 기업들의 운신 폭을 축소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지금 미·중은 단순한 싸움을 벌이는 게 아니라 미래 먹거리와 직결되는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새로운 국제질서와 경제질서의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를 두고 전략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전략 경쟁의 본질을 이해하고 한국이 새로운 외교환경에서 어떤 위치에 설 것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이날 문 대통령의 보아오포럼 참석 사실을 이날 오전 9시30분쯤 공지했다. 오전 10시30분 개막식을 불과 1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전날 중국 정부가 외교적 관례를 깨고 문 대통령의 참석 사실을 일방적으로 공개했음에도 청와대는 별도 대응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회담이나 포럼 참석이 아닌 녹화 영상을 전송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사전에 별도 공지 등이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이날 영상 메시지 등으로 고위급이 참여한 국가는 한국과 중국을 비롯해 브루나이·칠레·인도네시아 등인데 대부분 비동맹 국가들로, 미국의 동맹국으로는 한국이 유일하다.
 
유지혜·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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