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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1호 수사 아직도 못정한 공수처…수사 정의 따르면 이성윤이 1호 사건

중앙일보 2021.04.20 00:02 종합 10면 지면보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19일 진용을 갖추고 명실상부한 수사 기관으로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 지난 1월 21일 출범한 지 88일 만이다. 이에 따라 이른바 ‘1호 수사’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선 1호 수사뿐 아니라 2호 수사까지 이미 진행됐다는 견해도 있다. 검찰로부터 넘겨받아 피의자 조사 또는 기록 검토를 해온 이성윤 서울지검장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긴급 출국금지(출금) 의혹 수사 중단 외압 의혹 사건과 이규원 검사의 ‘윤중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의혹 사건을 지칭하면서다.
 

김진욱 “1호 사건 우리가 정한다”
검사 13명 첫발, 정원 미달 논란엔
“최후의 만찬 13인이 세상 바꿨다”

김진욱 공수처장도 지난 14일 이규원 검사 사건을 공수처가 수사 중인 것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수사 중이다. 가서 수사의 정의를 한 번 보라”고 강조했다. 그 말에 따라 형사소송법 교과서를 뒤져봤더니 수사의 정의는 이랬다. ‘범죄 혐의 유무를명백히 하여 공소의 제기와 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범인을 발견·확보하고 증거를 수집·보전하는 수사기관의 활동.’ 이 정의와 법조인들의 해석에 따르면 공수처의 이 검사 사건 기록 검토는 공소의 제기와 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것으로 수사 행위에 해당한다. 피의자 조사까지 진행됐던 이 지검장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공수처 관계자는 김 처장 발언과 관련해 “직접 수사나 수사를 개시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록을 검토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결이 다른 설명을 했다. 아직 1호 수사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이에 대해 한 법조계 관계자는 “기록을 검토하고 있는 건 ‘간접 수사’란 말이냐. 공수처가 ‘1호’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공수처는 출범 후 줄곧 각종 논란에 휩싸이며 외풍에 흔들렸다. 상당 부분은 ‘유보부 이첩’ 주장이나 이 지검장 ‘황제 조사’ 등 공수처가 자초한 일이다. 이날로 공수처 조직의 윤곽이 갖춰진 만큼 검찰 등 다른 수사기관과의 영역 다툼은 그만두고, 진정한 1호 사건을 스스로 발굴해 신뢰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우리가 1호 사건으로 규정하는 사건이 1호 사건이다. 떠넘겨 받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김 처장의 이날 발언대로 말이다.
 
김 처장은 이날 공수처 검사 정원(처장·차장 제외 23명)에 못 미치는 13명으로 첫발을 떼는 데 대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언급하며 “무학에 가까운 갈릴리 어부 출신을 포함한 13명이 세상을 바꾸지 않았느냐”고 의미를 부여했다. 세상을 바꾸는 것까지 기대하진 않지만, 이제는 어설픈 신생 국가기관이 아닌 전문 수사기관의 면모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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