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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예수와 12사도”란 공수처…1호 수사 소모전 끝내야

중앙일보 2021.04.19 11:48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19일 진용을 갖추고 수사 체제로 전환한다. 지난 1월 21일 출범한 지 88일 만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김진욱 공수처장을 통해 부장검사 2명, 평검사 11명 등 총 13명의 공수처 검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날부턴 접수된 고소·고발 사건(16일 현재 888건)을 각 부서와 검사별로 검토할 계획이다.
 
공수처가 숱한 논란을 뒤로하고 본격 가동되면서 이른바 ‘1호 수사’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김진욱 처장은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1호 사건은 우리가 1호 사건으로 규정하는 사건이 1호 사건이다. 떠넘겨 받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선 “공수처와 언론이 ‘1호’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며 불필요한 논쟁을 벌인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19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공수처 정문(5동 후문)으로 출근하며 안경을 벗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19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공수처 정문(5동 후문)으로 출근하며 안경을 벗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욱 처장은 지난 14일 출근길에 2019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의 ‘윤중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및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명예훼손 혐의 수사 여부를 묻는 말에 “수사 중이다. 가서 수사의 정의를 한 번 보라”고 쏘아붙였다. 이날도 ‘수사에 착수했다고 보면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래도 된다”며 “지난주에 수사 중이라고 말했는데, 수사 중이라고 보면 된다”고 답했다.
 
형사소송법 교과서를 뒤져봤더니 수사의 정의는 이랬다. ‘범죄 혐의 유무를 명백히 하여 공소의 제기와 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범인을 발견·확보하고 증거를 수집·보전하는 수사기관의 활동.’ 이 정의와 법조인들의 해석에 따르면, 공수처가 지난달 17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변필건)로부터 넘겨받은 이규원 검사 사건 기록을 검토하고 있는 건 공소의 제기와 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것으로 수사 행위에 해당한다.
 
이 사건에 대한 검토는 한 달이 넘도록 진행 중이라 김 처장의 말대로 여전히 수사 중인 상태다. 그런데도 공수처 관계자는 김 처장의 “수사 중” 발언을 “직접 수사나 수사를 개시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록을 검토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엉뚱한 해명을 내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기록을 검토하고 있는 건 간접 수사란 말이냐”고 꼬집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 16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공수처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 16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공수처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공수처는 지난달 3일 수원지검 형사3부(부장 이정섭)로부터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2019년 수원지검 안양지청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긴급 출국금지(출금) 의혹 수사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 사건을 넘겨받아 지난달 7일 피의자 기초조사 및 면담을 했다. 그러곤 지난달 12일에 수원지검에 사건을 이첩하면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이성윤·이규원 사건이 각각 공수처의 1·2호 사건인 셈이다.
 
공수처의 ‘유보부 이첩’ 등 공수처법 해석 문제로 갈등 구도에 놓인 검찰에선 “사실상 수사를 마쳐 놓은 2호 사건도 1호 사건처럼 다시 검찰에 넘기고, 공수처는 3호 사건 발굴에 전념해야 한다”(현직 검사)는 주장이 나온다. 수원지검이 지난 1일 이 검사를 김 전 차관 출금 과정의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혐의로 불구속기소 할 때도 검찰 안에선 “서울중앙지검 사건과 병합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기소가 가능한 사안이었는데 공수처가 묵히는 바람에 불발됐다” “수사에도 금도가 있는데, 검찰이 애써 마쳐 놓은 수사의 성과에 숟가락만 얹으려 한다”는 뒷말이 돌았다.
 
공수처가 검찰 조사를 마친 이성윤 지검장 사건에 대한 재이첩을 수원지검에 요구할 경우엔 이 같은 갈등 구도가 심화할 수 있다. 이 검사에 대한 기소 여부를 공수처가 판단할 경우엔 이 검사가 재판부 두 곳을 오가며 재판을 받는 진풍경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지난 16일 임명된 공수처 검사 중엔 여당 의원 보좌관 출신, 특정 로펌 출신이 다수 포진해 공정성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 판단과 다른 결정이 나오면 불필요한 오해를 부를 우려도 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출금) 사건 관련 수사외압 의혹을 받고 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출금) 사건 관련 수사외압 의혹을 받고 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공수처는 출범 후 줄곧 각종 논란에 휩싸이며 외풍에 흔들렸다. 그중 상당수는 ‘유보부 이첩’ 주장이나 이성윤 지검장 ‘황제 조사’ 등 공수처가 자초한 일이다. 이날로 공수처 조직의 윤곽이 갖춰진 만큼 검찰 등 다른 수사기관과의 영역 다툼은 관두고 스스로 발굴할 새로운 사건 수사로 신뢰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김 처장은 이날 공수처 검사 정원(처장·차장 제외 23명)에 못 미친 13명만으로 첫발을 떼는 데 대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언급하며 “무학에 가까운 갈릴리 어부 출신을 포함한 13명이 세상을 바꾸지 않았느냐”고 의미를 부여했다. 세상을 바꾸는 것까지 기대하진 않지만, 이젠 더는 어설픈 신생 국가기관이 아닌 전문 수사기관의 면모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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